질문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겨울이 서서히 멀어지면서 잠들었던 우리의 걷기도 깨어났고 덩달아 질문 시간도 다시 깨어났다.
화: 서로의 공격성을 보거나 느꼈던 적이 있는지 말해볼까?
출처가 기억나지 않지만 최근에 어디서 듣고 머릿속에 남아있던 공격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한 번도 이야기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 나올 것 같아서 잠깐 질문을 망설였지만, 그래서 또 이야기해 보고 싶은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질문을 받은 직후에 남편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지만, 곧 한 장면이 생각났다며 나에게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대답을 할지 예측하지 못했기에 남편의 그 물음을 가볍게 넘겼다. 그리곤 곧바로 후회했다. 남편이 기억하는 나의 공격성은, 우리의 관계가 위기였던 그 무렵 싸우는 장면이었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로 서로 언성을 높이다가 내가 소리를 질렀는데,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답답해! 답답하다고!”였던 것 같다고. 울면서 가슴을 치기까지 해서 많이 놀랐다고.
남편의 대답은 짧았지만, 듣고 있기가 어려웠다. 질문하기 전 잠깐의 망설임은 하지 말라는 어떤 사인이었을 텐데 왜 사인을 무시했냐고 속으로 자책했다.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의 거친 감정까지 떠올리는 것은 괜찮지 않다는 것을 몰랐다.
나도 그 장면이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았다. 아니, 남편이 설명해 주는 만큼 생각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감정적으로 무너져 있어서였는지 기억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짐승처럼 울었다는 모습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의지적으로 지웠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싸우면서 느꼈던 그 감정만큼은 생생하게 떠올라 힘들었다. 미안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만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남편도 곧바로 그러자 했다. 나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대답을 하면서 본인도 힘들어졌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걸음에만 집중하며 걸었다. 3월 아침의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모자를 쓰고 나올 걸 그랬나?” 아무것도 아닌 남편의 이 한 마디에, 묵은 감정이 신기하게도 가볍게 날아가버렸다. 인기척을 느낀 참새처럼 호로록. 모자와 외투 이야기로 다시 가볍게 대화가 오갔다. 그러면서 남편은 내가 괜찮아졌다고 느꼈는지 본인에게선 공격성을 언제 느꼈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내가 대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신혼 시절에 살았던 동네의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아이를 임신한 시기에 우리에겐 차가 없었다. 임신 초기였던 어느 주말, 함께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일어섰는데 우리 앞에 한 남자가 술에 취해 서 있었다. 버스가 정차하고 내리려는데 그가 대뜸 뒤를 돌아 술냄새를 풍기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너무 놀랐고, 남편은 순간 그 남자를 끌어 버스에서 내렸다. 그의 멱살을 잡고 있던 남편을 말리지 않으면 큰 싸움이 날 것 같아 겨우 설득하고 달래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20여 년을 살면서 남편의 공격성을 본 것은 딱 한 번, 이때뿐이었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답변을 찾아내고 보니, 나의 공격성은 내 안에 답답함을 느낄 때 드러났고, 남편의 공격성은 가족에게 해를 입히는 타인에게 드러났다. 그 원인도, 방향도, 형태도 판이하게 달랐다. 누구의 원인이 옳고, 누구의 방향이 그르다 할 수는 없지만, 괜스레 남편에게 미안해졌고 고마워졌다.
나는 가능한 감정 표현을 하며 살아왔고, 남편은 가능한 감정 표현을 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달랐던 우리가 조율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지만, 그럼에도 감정 표현을 하는 쪽이 옳다는 확신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답답하다 생각했고 내가 옳다 여기는 쪽으로 끌어오고 싶었다. 서로의 공격성을 목격한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일차원적인 잣대로 판단하고 있었던 나를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감정을 발현하는 다양함이 있기에,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의 표현하지 않는다 해서 시비를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거나 표현하지 못해서 생기는 내면의 부대낌은 내가 알 수 없는 세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