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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Nov 11. 2021

본전 생각

책 vs 미디어

홈스쿨을 하게 된 크고 작은 이유 중 하나가 아이의 책 사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책을 집어 들고 몰입한 아이가 학교에 가기 위해 멈추기를 어려워하는 날이 반복되면서 그대로 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홈스쿨을 시작하고 아이는 자라 갔고, 환경은 많이 변했다. 아이의 책 읽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핸드폰이나 태블릿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슬슬 홈스쿨 본전 생각이 났다. 부모가 꾸준히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그 영향은 미디어에 비해 턱없이 힘이 약했고, 책을 좀 더 읽으라는 잔소리가 조금씩 쌓여갔다. 


잔소리가 큰소리가 되었던 다음 날, 아이는 아침을 먹으면서 어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이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갈등이 있었던 상황을 오래 생각하는 것도, 빨리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도 나였다. 아이는 평소 10분이면 아무 일 없었던 표정이 되었다.- 어제 자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해봤노라 했다. 그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갔다. “엄마는 책을 좋아하니까 나랑 좀 생각이 다른 것 같아. 나는 솔직히 이제 책 보다 미디어가 훨씬 재미가 있어. 그 두 가지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야.” 이 말을 듣고 놀라기도 했지만 금방 수긍이 되었다. 나도 똑같으니까. “엄마도 책 보다 핸드폰 보고 태블릿 보는 게 더 좋아”라고 했더니 아이는 정말 놀란 표정이었다. 몰랐다고, 엄마는 책이 좋아서 읽는 줄로만 알았단다. 그 말에 나는 설명을 덧붙였다.


“엄마에게 책 읽기는 숙제인 것 같아. 늘 읽을 책이 밀려있거든. 근데 시작하기는 싫어도 막상 시작하고 또 끝내고 나면 하길 잘했다 생각되는 그런 숙제야. 그러고 보니 집안일이나 다른 숙제들에 비해서는 좀 더 좋아하는 숙제인 것 같기도 하네.”

아이는 숙제라는 단어에서 시간이 좀 필요한 듯싶더니 “아, 엄마 말이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아. 그럼 나도 좀 노력해볼게”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대화는 잘 마무리된 듯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가 밀려왔다. 책 읽는 시간을 충분히 주고 싶어서 홈스쿨을 시작했던 본전 생각에, 아이에게 예전 ‘그 아이’ 그대로 있으라고 말한 격이 되어버렸다. 잔소리를 들을수록 하려던 일도 하기 싫어지듯, 책 읽으라는 잔소리에 책 읽기가 더 싫어져 버리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괜히 주워 담아보려는 마음에 “엄마 이제 책 읽으란 잔소리 안 할게”라고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홈스쿨을 준비하고 시작할 무렵의 ‘그 아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 아이는 그대로일 줄만 알았다니...

부모 세대보다 변화에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잘 반응하는 아이들 세대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또 한 번 지적받은 기분이다. 여전히 미디어 사용에 대한 고민은 있지만, 오히려 한 번 흠뻑 누리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남편의 생각에 반기만 들 일은 아닌 것 같다.     


우선, 본전 생각부터 미련 없이 흘려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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