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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우챠우
by
조민성
Oct 20. 2019
아내와 아들이 마당 한쪽에 앉아 과일을 솎고 있다.
왜소하고 병약했던 아들은 다행히 건강히 자라 일손이 바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어릴 때부터 일하는 법을 가르쳤더니 드디어 제법 사람 구실을 하게 됐다.
뿌듯한 마음으로 다가간 그의 귀에 아내와 아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흘러들어온다.
"
엄마,
아니 왜 매년 이 짓을 해야 되냐고. 시간 안 아까워?"
그의 걸음이 굳는다.
"이럴 거 같으면 차라리 비행기 값으로 사람을 써요. 나도 어차피 한국 들어오기 싫었어."
"네가 온다며."
"이럴 줄은 몰랐지. 아 그냥 사 먹으면 되는 걸 왜 꼭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냐고."
아직 한 푼도 제대로 못 벌어본 아들 입에서 돈 쓰는 얘기가 너무 쉽게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과수원도 나중에 큰집으로-"
참지 못한 그의 발길질에 아들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과수원 나무들에게 영양제를 줄 때도 아들이 영양제를 몇 개 빼먹는 바람에 다시 해야 했다.
맡겨놓은 부추를 제대로 심지 않는 바람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다 버려야 했다.
마트에 납품하는 산딸기를 죄다 쥐어짜듯 따놓는 바람에 몇 박스를 버렸었다.
그래도 그냥 서툴러서 그랬겠지, 방학 때 쉬지도 못하고 억울했겠지 하고 이해했다.
오늘까지만 과일을 수확해서 농협에 가져다주고 그 돈으로 용돈도 주고 다시 해외로 나가는 날까지 푹 쉬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씨..."
하지만 끼고 있던 장갑을 집어던지고 씩씩거리며 나가는 건 자식이 아니라 머리 검은 짐승이었다.
"박스 당 3천 원이에요."
농협 직원의 입에서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 흘러나왔다.
- 내가 어떻게 키워낸 과일인데.
겨울부터 전정 작업에, 달마다 주는 영양제에, 여름엔 가뭄이 오는 바람에 물까지 끌어다 퍼부었다.
가까스로 수확한 과일들을 어느 해보다 더 컸다.
- 근데 3천 원이라고?
"올해는 그렇게 잡혀서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차라리 트럭에 싣고 시장에 나가 하루만 팔아도 그것보단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박스들을 다시 차에 실으려고 돌아서는 찰나에 눈에 들어온 건 그 와중에도 박스들을 가지고 오며 입이 잔뜩 튀어나와있는 아들이었다.
도랑가에 앉아 있던 아들을 아내가 겨우 달래 농협까지 데려왔었는데 저녁엔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빨리 끝내주기로 약속했다.
카운터를 다 뒤집어엎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우선 가지고 온 박스들만 3천 원씩 받으면서 지난 1년을 고스란히 갖다 바쳤다.
"박스 당 3천 원에 줬다고요?"
아들은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구시렁거리더니 이어폰을 꽂고 창밖만 봤다.
"나가게 용돈 좀 주세요."
과일 40박스를 팔고 받은 12만 원 중 5만 원을 꺼내 아들에게 주자 아들은 고맙다고 작게 웅얼거리곤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은 과일들은 친척들과 지인들에게 한 박스씩 보내면 고맙다고 돌아오는 게 3천 원보다는 더 될 것이다.
어쩌면 나가버린 아들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떠나고 그의 형제들마저 아무 관심 없는 과수원에 이제 무엇이 더 남았을까.
그래도 큰딸이 동생들을 지원해주고 있으니 조만간 천천히 정리하고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은 기술직에 근무하며 평생 연구해온 일이고 남들이 모르는 노하우들도 많다.
우렁이와 오리들이 자리 잡은 논은 이제 더 이상 혼자 하루에 몇 마지기씩 풀을 뽑지 않아도 되고 오래된 트랙터는 관리를 잘해놓은 덕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잘 쓸 수 있었다.
- 조금만 더 준비하면 된다.
그는 아내와 둘이 저녁을 먹으며 생각했다.
"이 녀석이 또!"
어린 아들이 마당 한구석에서 아내에게 또 혼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손자가 망가뜨린 곡괭이 자루를 불에 넣고 계셨고 제수씨는 아들과 뻘밭에 갔다가 엉망이 돼버린 조카들의 옷을 갈아입히고 있었다.
- 오리를 잡고 있었다고 했던가...
농사일을 좀처럼 싫어하는 아들은 잠시만 눈을 떼면 옆집 닭장의 알을 꺼내오거나 연장 자루들을 잘라 목검을 만드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동들을 했다.
친척들은 불안해하면서도 한심한 눈빛으로 아들을 봤고 그도 아내도 그럴수록 아들을 더 크게 혼냈지만 잠시 후에는 더 큰 사고와 함께 돌아오는 아들이 가끔은 마귀 새끼처럼 보였다.
다른 조카들처럼 조용히 일이라도 거들어주면 좋으련만 아들은 친척들이 모두 모여 일하는 과수원에서 혼자 눈칫밥 먹는 걸 싫어했고 이내 그걸 기어이 행동으로 보여냈다.
"와장창!"
혼자 혼나는 게 억울했던지 아들이 아무렇게나 던진 돌에 유리 창문이 맞아 깨졌다.
다행히 주변에 아무도 없어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가 놀라 있는 와중에 결국 그는 아들의 뺨을 때렸다.
악에 받친 표정으로 울며 담장을 넘어가는 아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 곧 또 무언가가 망가질 참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의 딸들은 책임감이 강하게 자라 모두 자립했고 아들은 늦게나마 철이 들어 대학을 일찍 졸업하고 전방에서 복무 중이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정년이 되기 전에 아들에게 말단 지방 공무원 자리라도 하나 알아봐 줄 수 있다면 자식 걱정은 앞으로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밭에서 감자를 심는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지나갔다.
슬슬 몸이 고장 나기 시작하는지 병원에서 의사들을 만나면 하지 말라는 것들이 늘었지만 그는 아직도 일할 수 있었다.
농기계를 다루는 법들도 모두 알고 있고 소작으로 짓고 있는 밭들도 모두 수익이 나오고 있었다.
그동안 괜찮은 품종들을 제법 확보했고 앞으로도 새로 나오는 개량 품종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칠 테니 은퇴 후에 적당히 할 수 있는 소일거리들은 넉넉했다.
자식들에게 좋아하지도 않는 농사를 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농가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지 않으면 굶어야 했던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해 줬다.
어느덧 농사는
그의
습관이자 취미
, 인생이 돼버렸고 이제 그냥 편안히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자신 있었다.
- 그렇게 하면. 그렇게만 하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려다 전화가 먼저 끊어졌다.
복무 중인 아들의 전화였다.
- 다시 걸려오겠지.
그는 아쉬워하다 이내 다시 감자를 심기 시작했다.
"느그 아버지는 훨씬 더 컸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아버지의 친구분들을 간혹 뵈면 아버지 얘길 자주 듣는다.
"니도 농사짓나? 느그 아버지랑 똑같네?"
천만의 말씀을.
그건 극기훈련이었지.
나도 내가 이쪽 길을 업으로 삼을지 몰랐고 가끔 아버지 생각이 날 때도 있지만 다시 같이 일하라고 하면 때려죽여도 못할 것 같다.
몸무게는 비슷하지만 체격에 비해 뼈가 얇은 나와 달리 아버지는 그 큰 체격으로 하루 종일 일하셨는데 일정한 동작으로 묵묵히 일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일하는 내내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 요령 껏 해라.
- 손동작이 잘못됐다.
- 드는 자세가 따로 있다.
- 삽질이 왜 그러냐.
- 그런 건 모아서 한 번에 해라. 등등.
마주 보고 일하는 게 너무 싫어 느긋한 성격의 고모부와 같이 작은 방에 숨어 땡땡이치기도 하고 못 찾게 경운기 밑에 숨어있던 적도 있다.
지금도 괭이질이나 삽질을 할 때마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들려서 귀가 아프다.
정말 농업에는 여러 갈래가 있는데 그쪽 카테고리는 나름의 추억들도 있고 이미 그 길을 걸오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업 농업인이 아닌 누군가 앞으로 그런 쪽의 농업으로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극구 말리고 싶다.
당시 아버지는 어땠을지 모르나 나는 아직도 그 기억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권하고 다니고, 나도 물론 취미로 대할 순 없겠지만 트라우마로부터 회복하는 느낌으로 농사의 주파수를 맞추는 중인데 농사는 딱 우리 고모부처럼만 적당히 즐기면서 할 때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뭐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데 농사가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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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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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서 야생화를 가꾸고 있습니다. 5.6헥타르의 숲 속에서 생기는 사람과 식물,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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