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순찰

by 조민성

"가자"


이 말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다섯 마리의 개들은 각자의 개성에 맞게 내 주변을 활보하기 시작한다.



같은 말을 여러 상황에 쓰는데도 그때그때 알아듣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그렇게 동선을 따라 주변을 훑어가면 이내 어느 풀 숲에서 사슴이나 고라니가 불쑥 튀어나와 도망가기도 하고 개들이 한데 모여 짖는 곳에서는 황급히 짐을 챙겨 도망가는 초짜 약초꾼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동물들이 파헤쳐 놓은 꽃밭이나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볼 때면 조금만 더 일찍 올 걸 그랬다고 후회하지만 내가 언제 오든 침입자들은 항상 더 먼저 와있다.


숲에서 내 첫 번째 일과는 늘 한걸음 늦게 시작된다.




순찰


농장 부지 전체를 계산하면 축구장 두 개 넓이를 조금 넘는 정도인데 지형이 길게 늘어져 실제로 걷다 보면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는데 30분 정도 걸린다.


그리 편안한 걸음은 못되고 숲길을 헤치고 오솔길과 급경사를 번갈아 오르는 동안 모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데 천 번도 넘게 걸어본 길이지만 신경 써서 걷지 않으면 이내 부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숲을 돌면서 다음과 같은 부분들을 확인한다.


- 침입자 확인

- 빗물에 망가진 작업로 확인

-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가 있는지

- 꽃들의 변화를 확인하고 기록

- 개들의 컨디션 확인

- 새로운 모종 심을 자리 물색



확인사항 하나하나가 작업 능률과 완성도로 이어지기 때문인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계산을 하고 있을 때가 많은데 가끔 아내가 같이 농장에 올라 개들과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보여주면 실제 당시와는 사뭇 다른 온도에 놀라곤 한다.



사진 속에서 개들과 걷고 있는 내 모습은 마냥 태평해 보인다.


나도 그런 내 사진을 좋아한다.



순찰이라는 단어를 어쩔 수 없이 쓰긴 하지만 단어가 주는 느낌은 왠지 골목에서 시끄럽게 뛰노는 꼬마들의 고무줄을 끊으러 다니는 고집쟁이 영감 같다.


차라리 나사 한두 개쯤 빠져 보이는 그런 사진들이 편안해 보여서 좋다.




그냥 걸어보고 싶다


보통 숲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막연하게 큰 나무들이 둘러싼 어두운 공간을 상상한다.


사슴 가족이 조용히 걷고 나비가 날아다니며 이끼가 많은, 조금 어둡지만 포근한 공간-



현실 속 강원도의 숲은 대개 험준한 산골짜기로 별로 사람에게 친절한 공간은 아니다.


지금의 농장 역시 어느 큰 산 끄트머리에 있는 낙엽송과 참나무로 이루어진 숲인데 평균 경사도가 약 25도(꽤 가파르다)로 매번 다니던 길이 아니면 그냥 걷는 것조차 쉽지 않다.



숲길과 산행이 익숙하지 않았던 초기에는 뭘 해도 평지보다 몇 배는 힘들다는 사실에 감당 못할 일을 저질렀나 싶어 혼자 끙끙거리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막막했는데 요즘은 한결 낫다.


원시적인 불친절함에 치를 떨던 날들이 지나고 언제는 내가 이 공간에 초대받은 적이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보니 숲의 입장에서는 나도 그냥 무단 침입자일 것 같았다. 아주 악질의.


어차피 이왕 침입자라고 생각하고 길을 내 위주로 좀 편하게 내면서 가로막고 있던 나무도 몇 그루 없애고 나니 순찰 동선이 훨씬 편해졌다.


그동안 동선을 제법 정리했고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지겠지만 언젠가 정말 더 손댈 구석이 없어지면 숲길 순찰을 졸업하고 그냥 걸어보고 싶다.




"동경의 대상이 일상이 됐을 때도 계속 반짝거릴 수 있을까?"


얼마 전 서울에서 밤거리를 걷다가 화려한 야경에 감탄하며 내가 언제 여기 살았었나 신기해했었는데 정작 예전엔 테헤란로의 퇴근길을 몇 년 동안 걸으면서도 하루하루가 짓눌리는 기분이었지 야경을 보며 감탄했던 적이 없었다.


순찰이 끝나고 쉬는 동안 가끔 내가 뭘 했나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지금의 숲 풍경이 예전의 서울 야경이 그랬던 것처럼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가지 않을까 불안할 때가 있다.


환한 빌딩 숲 속에서 밤늦게 퇴근하는 바쁜 직장인을 대학시절 내내 동경했었지만 정작 꿈에 그리던 대도시의 밤 속에서 나는 항상 취해있었고 하루하루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지금은 그때의 치열하고 바빴던 내가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불빛들이 지금에 와서야 그렇게 환해 보인다.



마치 여행은 여행이 끝나야만 완성되듯 언젠가는 순찰이 끝나고 그냥 걸어봤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그냥 눈 뜬 장님. 딱 그 정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