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봄이었던가, 도봉산에서 내려와 파전에 막걸리나 한잔 내러 걸어가고 있었다.
언뜻 지나가면서 보니 웬 아저씨 한분이 수레에 싸움 잘하게 생긴 감자 같은 걸 가득 쌓아 팔고 계셨다.
그걸 심으면 거기서 백합꽃이 나온대나 뭐래나.
코 물고 다니던 시절 시장통에서 구경하던 약장수 아저씨의 야바위가 떠올랐었다.
세상이 어지러우니 이젠 꽃으로 사기를 치는구나-
내가 의심하는 표정을 짓기도 전에 아저씨는 노련한 솜씨로 4개 값에 5개를 넣어주며 내 막걸리 값을 털어갔다.
키가 크니 화분을 큰 걸로 써야 된다는 말에 집으로 돌아가며 화분 5개를 따로 샀다.
심은지 하루 만에 무시무시하게 생긴 싹이 올라오는 걸 보며 충격을 받았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백합꽃이 필 무렵, 화분은 스무 개로 늘어있었다.
한때 몇백 개까지 늘었던 화분이 그로부터 다시 수년이 지나 지금은 옥상에 딱 하나만 남았다.
대신 숲이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