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버블 경제

여름

by 조민성

평소에도 울폐도가 높았던 농장의 숲은 긴 장마를 만나 거대한 버섯 농장으로 변해버렸다.

실내나 화분에서 키우는 꽃들에게 긴 장마는 재앙과도 같지만 숲은 흐린 날씨 속에서 훨씬 더 오랜 날들을 견딜 수 있다.

이번 장마기간 동안 식물들이 쑥쑥 자라는 걸 넘어서 거대해졌다.

숲 속의 식물들은 빗물로부터 양분을 전달받는데다 일조량이 적어 웃자라는 바람에 단기간에 쑥쑥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숲이 가진 양분을 생각 없이 다 써버리면 그 후의 감당은 오롯이 혼자서 마주하게 된다.

인과관계와 유기체의 개념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경우에는 식물들이 잘 자라면 일단 좋은 거 아닌가 싶을 수 있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팔다리가 두 개 정도씩 더 생겼다고 상상해보면 된다.


당장 옷 입는 것부터 시작해 일상이 박살 나지 않을까.

흔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미묘하게 어긋난 상식 중 하나가 바로 빗물인데, 빗물이 그 자체로는 단순히 선(good)이 아니라는 걸 이번 계절이 오랫동안 질리도록 보여주고 있다.

빗물은 토사나 산사태처럼 같은 눈에 크게 보이는 피해도 가지고 오지만 이 정도의 물리적인 피해는 수목들이 충분히 감당해낸다.

문제는 빗물을 따라 빠르게 빠져나가는 양분들이다.

어떻게 여겨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늘에서 막 내려온 빗물 자체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양분은 딱히 없다.

다만 운동속도가 높아 수돗물보다는 흡수율이 빠르다는 것, 그리고 곳곳에 산재한 양분들을 옮겨준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숲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표면의 부엽층이 실제 양분으로 전환되는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느리기 때문에 이번처럼 장기간 비가 계속되면 분해되어있던 양분은 금방 고갈된다.

몬순에 적응한 열대우림이라면 모를까 사계절을 모두 준비해야 하는 한국의 숲은 이런 빠른 템포의 양분 순환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 따위가 숲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 농장 구석구석마다 못 보던 버섯들이 우후죽순처럼 피어 올라오고 있는 걸 보니 숲이 변속 기어를 한단 올린 듯하다.

우리가 버섯이라고 부르는 결과물은 숲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발 밑 아래에 거대하게 펼쳐진 균들의 건축물이다.

숲 속의 비교적 분해하기 쉬운 식물들의 사체부터 분해가 힘든 목질까지 기어이 분해하고 그 대가로 식물들로부터 급여를 받으며 같이 숲을 확장시켜나간다.

고온다습한 공기와 그늘진 환경을 초석으로 동남아의 열대우림 속처럼 균들이 빠르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금 분해하지 않으면 빗물에 다 떠내려갈 판이니 선택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일거리가 많으니 균들은 한 건 끝낼 때마다 식물들에게 받는 품삯으로 또 새로운 투자를 한다.

그게 우리가 아는 버섯이라는 형태로 솟아올라 또 새로운 균을 퍼뜨린다.

좋게 말하면 이쪽은 경기가 좋아 자회사를 마구 늘리는 중이다.

가끔 나나 개들이 무심코 툭툭 발로 차는 바람에 자회사 몇 개가 무너지긴 하지만 원체 경기가 좋으니 곳곳에서 또 생겨난다.

조금은 슬픈 이야기지만 얘네의 호황은 딱히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하다못해 먹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독버섯이 아니더라도 사실 인간에게는 버섯을 온전히 소화해낼 능력이 없어서 버섯을 먹어도 크게 이로운 점은 없다.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다는 점 외에는 완전한 타인인 셈이다.

다 좋으니, 그저 내 수선화들이 먹을 양분만 조금 남겨 놓아주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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