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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Apr 14. 2023

13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올해의 앨범보다 더 좋은 보통의 신보

 최근 즐겨 듣는 음악 중 하나는 보이지니어스(boygenius)의 <the record>(2023)이다. 보이지니어스는 피비 브리저스(Phoebe Bridgers), 줄리엔 베이커(Julien Baker), 루시 데이커스(Lucy Dacus)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팀이다. 이 셋은 지금 미국 인디씬(Scene)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세 명의 뮤지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 EP <Boygenius>를 내고 한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올해 드디어 정규 1집 <the record>가 나왔다. 들어보니 ‘과연 2023년 올해의 앨범 후보로 꼽을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좋았다. 아직 2023년은 한참 남았지만, ‘이보다 좋은 음악이 얼마나 더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보다 더 자주 손이 가는 앨범이 있다. 바로 콘(Korn)의 정규 14집 <Requiem>(2022)이다. 전성기가 한참이나 지난 콘의 새 앨범은 그야말로 보통의 신보였다.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나락의 시절에 비하면 훌륭하다고 할 수 있으나 한창때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럼에도 손이 간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올해의 앨범 후보를 제친 콘의 신보보다도 더 자주 듣고 있는 음반이 있으니 바로 린킨파크(Linkin Park)의 <Meteora>다. 이 앨범은 심지어 신보도 아니고 20년 전 음반이다. 올해 20주년 기념판이 나왔고, 그 기념으로 듣게 되었는데, ‘아, 바로 이 음악이다’ 싶다. 이 늙은 음악을 자꾸만, 계속, 듣게 된다. 나는 왜 이럴까?


 ‘음악적 향수(musical nostalgia)’라는 개념이 있다. 어른이 되어 들은 그 어떤 명곡보다 10대 시절 좋아했던 노래가 더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있고 세월이 흘러도 유지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12세에서 22세 사이의 뇌는 급속한 신경 발달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이 시기에 좋아하게 되는 음악은 각별한 애착관계가 형성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시기는 인격이 형성되는 기간이기도 하기에 그 노래들은 감정적인 기억들과 단단히 묶이게 되고, 이로써 자기 정체성이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이를 의식적으로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당신이 10대 때 듣던 음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 <직썰>, 2018.06.18.(수정: 2020.08.19.) 참고.]


 나의 학창 시절을 지배했던 음악은 누메탈(Nu Metal)이었다. 그 시절 멜론탑백은 길보드차트 테이프이거나 소리바다에서 다운로드한 mp3 혹은 그걸 구운 CD였는데, 그 목록의 밖에는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조성된 공원을 나와 숲으로 데려간 이는 다름 아닌 서태지였다. 문화대통령이었던 그는 훌쩍 떠났다가 2000년에 사악한 음악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 장르가 누메탈이었다. 물론 이 장르는 그 당시 세계적으로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장르다. 하지만 국내 가요계는 그렇지 않았다. 


 조성모와 GOD, 핑클을 듣던 또래 친구들에게 같이 듣자고 권할 때마다 까이기 일쑤였고, 그럴수록 소수의 신자들끼리 모여 길보드를 조소하며 우리의 신앙을 예찬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불킥 할 만한 일이지만, 우린 진지했다. ‘이것이 탄압받는 선교사의 삶인가! 먼저 깨인 자의 숙명인가? 영성은 핍박 속에서 자란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내가 되지도 않는 힙스터 흉내를 내며 맨날 ‘피치포크(Pitchfork)’나 ‘AOTY’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있어 보이는’ 음악을 찾아 헤매는 것은 그때 받은 상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웹진들이 가장 후지다고 평가했던 장르가 ‘누메탈’이었다. 


 누메탈이 글로벌 음악씬에 큰 파격을 주던 시절은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다. 그 시기를 주름잡던 밴드들도 하나 둘 저물었고, 이젠 낡을 대로 낡은 장르가 됐다. 하지만 나는 이 장르가 좋다. 국내적으로는 ‘있어 보였던’ 누메탈은 알고 보니 글로벌하게는 ‘개구리다’고 평가받던 음악이었다. 그걸 알게 됐지만, 뭐, 그래도 좋다. 이 장르의 대부인 콘의 새 앨범, <Requiem>. 들어보니 정말이지 보통이었다. 그런데 그 보통이 좋았다. 그 보통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제는 알기에 더 반갑고 고마웠다. 


 힙스터들 사이에서 ‘누메탈’을 좋아한다는 고백은 ‘음알못’으로 취급되기 딱 좋다. 그래도 나는 이미 뇌이징이 되었고, 그게 나의 일부가 됐다. 맛없는 나이를 계속 먹다 보니 요즘에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싶다. 부끄러웠던 10대 시절에 듣던 음악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깊이 잠수하여 심해의 생물체들과 헤드뱅을 하고 싶다. 그러니 올해는 올해의 앨범보다 어제의 구린 음악과 함께 하겠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그런 삶을 살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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