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에세이] 신이 보낸 악마 서태지

-중졸의 음악

by 최우주

[음악 에세이] 신이 보낸 악마 서태지

-중졸의 음악



<1> 안녕, 드래곤볼


나는 꿈이랄 게 없었다. 태양 너머의 광활한 우주를 알고 나서 장래희망 칸에 ‘과학자’라고 쓰긴 했지만, 뭐든 써야 했기에, 쓴 것에 가까웠다. 물론 내가 수학이나 과학을 잘 해서 진짜 그것이 가능한 꿈이 됐다면, 전혀 다른 회고를 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꿈이랄 게 없었던 것으로 하는 편이 낫다.


여하튼 그 칸에 뭘 써도 달리 관심 가지던 사람이 없던 시기에는 그냥저냥 제출용일 뿐이었다. 뭐, 그래도 괜찮은 시절이었고, 나 역시 다른 친구들이 뭘 쓰든 관심 없었다. 우리를 맡은 담임선생님과 우리의 부모들은 달리 생각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꿈의 당사자들은 그랬다. 우리는 꿈보다는 매주 발매하는 아이큐점프(주간 만화 잡지)에 수록된 드래곤볼의 다음 내용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러고 있었는데, 어느새 좋던 시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중학생 예비 학교에 가서 중학 교과서를 잔뜩 가지고 돌아온 날, 엄마는 나의 보물 1호이자, 우리의 보물 0호인 드래곤볼 단행본을 리어카에 실어 우주로 보냈다. ‘상의도 없이 이렇게 마음대로 해도 된단 말인가? 동지들이여 기립하라! 드래곤볼을 다시 찾자!’


그런데,

친구들은


“좀 너무하네.”

“돈 아깝다.”

“만화대여점에서 빌려보면 되지.”


라는 태평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경건한 마음으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탐독했던 드래곤볼, 악착같이 모았던 드래곤볼 카드, 전투력을 따지며 밤을 지새우던 나날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혁명의 동지라고 믿었던 친구들은 반혁명의 세력이 되었고, 왕정의 품에 안겼다. 아니다. 다시 십시일반 용돈을 모아보자! 하지만 애들은


“그러냐?”


할 뿐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시큰둥한 운동화가 된 친구들은 각자의 학원으로 흩어졌고, 나는 세상을 모르는 아이가 되어, 땡땡이를 쳤다. 다음 날 왕당파 친구 한 놈이 “정신 차려라!”라고 했고, 나는 그놈이 왜 엄마가 됐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동네에서 같은 교복을 맞췄고, 그날부터 꿈은 잘 때 꾸는 게 아니라, 깰 때 이루는 것임을 알아야 됐다.



<2> 내 마음속에 있다는 내 꿈을 찾습니다!


꼬꼬마 시절에 같이 뽑기를 하고 퐁퐁(방방)을 뛰고 살구(공기놀이)를 하고 무궁화꽃을 피우던 아이들이 하나둘 현실의 꿈을 찾아갔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용신을 부르던 사성구 드래곤볼이 영원히 빛날 터였지만, 굳이 밖으로 꺼낼 이유는 없었다. 대한민국은 이제 새 나라가 아니었고, 우리 역시 더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리움이었다. 그 그리움은 나만의 것은 아니겠지만, 시절의 문턱을 넘는 발에는 시차가 있었다. 나는 머물렀기에, 서운했는데


알고 보니, 꿈이 있었다.


구슬치기의 달인이던 녀석은 자동차 엔지니어를 꿈꿨고, 개발로 유명해서 편 가를 때 기피 대상이던 약골이는 기자가 될 꿈에 빠졌다. 매번 재수가 없어서 동네 골목 형들에게 담뱃값을 상납하던 친구는 경찰이 될 참이었다. 그뿐 아니라, 누구는 수학 선생이 또 누구는 야구 선수가 또 누구는 ‘나는 마 그런 거는 모르겠고, 무조건 서울대!’를 꿈꿨다. 그런 선언들이 동네방네 돌 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런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만약 드래곤볼 다 모으면 무슨 소원을 빌 거야?”를 물으며 봉창 두드릴 따름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같이 야구 스티커 모으기에 혈안이었던 애들이 갑자기 지구의 중력을 느끼며 걷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형들은 무서웠고, 나도 그런 교복을 입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제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라고 선언했고, 나는 도대체 그 꿈은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청소년의 꿈은 어린이의 꿈과는 체급이 달랐다. 나는 꿈도태아가 되어 골목을 서성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얼빠진 놈의 호주머니는 행님들도 털지 않았다. 꿈 선언은 자기 확신과 비례하여 강력해졌으므로 미친놈이 될수록 좋은 것이었다. 가까웠던 친구들부터 미친놈이 되었기에 더 간절했다.


“찾습니다! 나를 미치게 할 그런 꿈을 찾습니다! 내 마음속에 있다는 내 꿈을 찾습니다!”



<3> 신이 보낸 천사, 서태지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돕는다고 누가 그랬냐?


나의 기도는 수신거부 상태였고, 우주는 침묵했다. 각자의 항성에서 꿈을 내려받은 친구들은 거침없이 제 갈 길을 갔고, 그 덕에 나는 외로웠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스타크래프트를 했고, 같은 처지의 루저들과 담배 연기 자욱한 PC방을 쏘다녔다.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자니 엄마가 미칠 지경이었다.


엄마는 나를 기도원에 데려 갔고, 그곳의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너의 마음속에 있다.” 모르겠다고 하니, 산 기도에 오르자고 했고, 오르니 그곳의 나무와 씨름을 하라고 했다. 씨름은 했으나 뽑을 수는 없었다. 물론 진짜 뽑는 게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만, 알긴 뭘 알까. 성스러운 신자들은 마음으로 나무를 뽑았다고 간증했고, 나는 마음이 어떻게 나무를 뽑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알 수 없는 상태의 나날을 보내던 2000년의 추석이었다. 나는 사촌형누나와 티브이를 보다가 신이 보낸 천사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세상에, 서태지였다.



<4> 신이 보낸 악마, 서태지


서태지의 성도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었고, 나도 거기에 새 신자가 되어 합류했다. 그곳의 주류 성도들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 개척을 함께 한 이들이었고, 나 같은 새삥은 그리 많지 않았다.


뭣 모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신성모독을 하여, 교회에 염탐을 온 신천지 취급을 받곤 했다.


“서태지 음악은 외국에서 이미 유행하고 있는 장르를 수입해온 건데, 새로운 창조자라고 예찬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아니, 아니, 이건 제 주장이라기보다는 서태지 본인도 그렇게 얘기했다니까요?”

“지능형 안티라뇨?! 저 신실한 팬입니다!”


아이들 시절의 동료를 잃었던 상처받은 영혼도 많았던 터라, 신앙의 선배들은 예민했다. 내가 선을 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네티즌의 예절을 배워가며 적응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악마 숭배자 서태지를 어떻게 대적할 것인가?”


무슨 말인가?

‘서태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아니었나?’


목사님은 6집 앨범의 재킷 분석을 시작으로 그의 악마성을 해설하기 시작하셨다. 분석이 되면 될수록 뒤통수가 따가웠는데, 교회 친구들은 내가 서태지 팬이 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교의 막바지에 목사님은 ‘교실이데아’를 거꾸로 돌린 소리를 들려주셨다. 이것은 서태지가 악마와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를 보여주는 명징한 자료였다.(알고 보니, 아니었음)


나는 내가 만난 천사가 루시퍼라는 걸 알게 됐고, 회장 형은 자신도 왕년에 록 음악에 심취했는데, 회심하고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는 간증을 해주었다.


팬덤에서는 간첩으로, 교회에서는 악마숭배자로 낙인 찍혔고, 그 때문에 장대한 흑역사가 나의 10대를 지배했다. 하지만 그 흑역사 덕분에 평판과 상관없이 나만의 길을 걷게 된다. 심지어 악마와의 계약서였던 ‘교실이데아’는 내 인생노래가 됐다.


교회를 때려치웠냐고? 놉! 오히려 임원, 찬양대원, 성가대원, 선교부원, 중등부 교사가 되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자아는 분열적이고, 단일한 정체성은 환상이다.



<5> 교실이데아


나를 매료시킨 서태지 정신은 단연 ‘자퇴’다. ‘꿈을 위해 공교육으로부터 독립한다!’라는 발상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이탈이었다. 방구석 여포는커녕 간손미도 되지 못했던 나는, 키보드도 두드리지 못한 채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교실이데아’가 특별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꾸에엑!!!”(<교실이데아>)


꿈을 위해 획일화된 공교육 제도와 손절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서태지가 놀라웠다. 놀란 만큼 부러웠고, 그보다 더 부끄러웠다. 알고 보니 나라는 인간은 허접한 키보드 워리어였고, 방구석 여포 옆에 붙어서 조잡한 깃발을 흔들며 불평만 하는 족속이었다.


서태지는 내가 국딩 시절에 이미 예언적 메시지를 전한 바가 있었다. “시간은 그대를 위해 멈추어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고 그대는 방한 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무엇을 망설이나? 되는 것은 단지 하나뿐인데,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환상 속의 그대)


다른 아이들과 같은 명징한 꿈, 직업으로 명명할 수 있는 그런 꿈은 십 대 시절에 끝내 찾지 못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이 사십이 된 직업인이 됐지만, 사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다만 이제는 꿈이 곧 직업이 아님은 안다.


나도 무수히 많이 등장한 서태지‘들’처럼 ‘미친 마니아’가 되어 ‘밝은 미친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었으나 딱히 그러지는 못했다. 내 인생을 불태울 만한 열정의 매개는 만나지 못한 셈이다. 다만 노래방 18번은 얻었는데, 그것이 바로 ‘교실이데아’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은 그런 나를 섭태지라고 불렀다. 우리 집안의 아들놈들은 ‘섭’자 돌림인 탓이다(최우주는 필명입니다).


그렇게 중졸의 노래에 흠뻑 빠져 살았다.


그런데도

이후 나는 박사과정까지 밟게 된다.


그러니까

정말이지 인생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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