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이 되는 삶
[음악 에세이] 서태지에 입교하게 된 사연
-간증이 되는 삶
<1> 팬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의 팬이 되고 싶었다. 입학했을 때는 국민학생이라고 했는데, 다니다 보니 초등학생이 되던 1990년대 중순이었다. 같은 방을 썼던 삼촌은 이문세의 팬이었고, 앞집 형은 듀스의 팬이었고, 옆집 누나는 김원준의 팬이었다. 딱지 치던 친구는 김건모의 팬이었고, 그 친구의 누나는 신승훈의 팬이었으며, 그 누나의 절친은 이승환의 팬이었다. 얼마 전 우리 동네로 이사 온 형아는 디제이 디오씨의 광팬이었는데,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이었다.
개중에는 사대주의에 빠져 팝송을 숭상하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들의 경전마저도 그냥 그랬다. “뭔 말인지도 모를 노래를 왜 듣냐?”
당시 나는 누구의 팬은 아니었지만, 모두의 팬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들었다. 모든 인기 노래의 종합선물 세트, ‘최신가요 베스트’!
1990년대에는 길보드차트가 성행했는데, 길거리 구루마(수레)에서 최신 인기가요 곡을 짜깁기한 테이프를 팔았다. 나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이 짝퉁 가요 모음집을 사서 즐겨 들었다. 그뿐 아니라 수요일엔 KBS의 가요톱텐, 토요일엔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일요일엔 SBS 인기가요도 즐겨 봤다. 특히 수요일에는 부모님이 수요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셨기 때문에 매주 놓치지 않고 방송을 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인기 가요를 좋아할 뿐 누군가의 수록곡까지 챙겨 듣는 팬은 아니었다.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우상에 대한 간증을 나누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때때로 종교 갈등이 벌어져 더 위대한 우상을 겨뤘는데, 대개는 쪽수가 많은 쪽이 이겼다. 발린 종교인들은 굴욕감을 달래며 열심히 전도에 나섰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그 노래도 좋고, 이 노래도 좋고, 다 좋은데?”라고 했는데, 담임이 정한 급훈과 같이 무의미한 의견이었다.
언젠가 한 친구에게 팬이 되는 방법을 물었다. 걔는 별 이상한 걸 묻는다는 식으로 나왔는데, 나는 ‘꾀돌이’ 과자 절반을 왼손에 부어주며 되물었다. 친구는 이렇게 물었다.
“요즘 무슨 노래 좋아하냐?”
“글쎄, 유피의 <바다>?”
“그럼, 그 곡이 들어있는 앨범 사서 들어봐.”
그래서 큰 맘 먹고 샀다. 그랬는데 <바다>말고는 좋은 곡이 하나도 없었다. <뿌요뿌요>도 인기를 끌었지만, 나는 별로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 그랬다. 앨범을 비싼 돈 들여 샀기 때문에 더 별로였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아이고, 내 피 같은 돈!’
그 후 나는 누군가의 팬이 되기를 포기했고, ‘최신가요 베스트’를 듣는 삶에 만족하기로 했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은 정말이었고, 종교다원주의자의 넉넉한 품을 얻었다. 그러고 한참을 잘 살았다.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삼국지5>도 하고, 《슬램덩크》도 봤다. 그뿐만 아니라, 탁구도 치고, 볼링도 치고, <스타크래프트>도 하고, 《엔젤전설》도 봤다. 그렇게 잘 살았는데, 졸지에 날벼락을 맞았다. 그러니까 내게도 계시가 내렸다. 사도 바울이 다마섹으로 가는 노상에서 느닷없이 예수를 만났듯, 나도 추석을 쇠러 간 시골에서 벼락을 맞았다. 어린이였던 나는 그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고, 나의 우상은 중졸이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종국에는 중요해진다. 바야흐로 때는 2000년 9월 9일이었다.
<2> 신앙고백이 되는 음악
나에게 2000년 9월 9일은 매년 돌아오는 추석 연휴의 하루였다. 하지만 사촌 형과 누나에게는 손꼽아 기다려 온 날이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날 저녁 서태지 컴백 공연을 MBC에서 방영한다는 것이었다. 1996년에 은퇴했던 서태지가 가요계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나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팬은 아니었기에 맛있는 송편 먹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1980년대 생이면서 서태지 팬이 아닐 수 있단 말인가?!’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어쩌면 나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데뷔했을 때는 국민학생이었고, 그가 은퇴했을 때도 초등학생이었다. 물론 내 또래 아이들 중에도 서태지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많았다. 소풍을 가면 장기자랑 시간에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곡이었다. 하지만 나는 김흥국의 앗싸-<호랑나비>나 <꼬마 자동차 붕붕>을 더 좋아했다. 또래보다 더 작은 아이였던 셈이다.
반면 사촌 형과 누나들은 사춘기 시절에 서태지 음악을 듣고 자랐다. 그들은 X세대였고, 가요계에서 비롯된 혁명이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것에 동참했다. 그 차이가 2000년 9월 9일 저녁의 온도를 결정했다. 시간이 됐고, 새빨간 레게머리를 한 서태지가 등장했다. “아 유 레디?”
?!
!?
공연이 끝났다.
자막이 오른다.
시청을 마친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충격과 공포였다. 듣도 보도 못한 음악의 듣도 보도 못한 공연이었다.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다고? 콘서트를 이런 식으로 해도 된다고?
들뜬 온도에서 시작했던 사촌형누나들도 같은 걸 느꼈다. 하지만 판단은 달랐다.
“아…… 이제 서태지 노래 못 듣겠다. 왜 이렇게 됐냐?”
형누나들은 개탄했지만, 나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 음반 숍으로 뛰어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그 괴상한 음악을 들어야만 하는 몸이 되 버렸다. 형과 누나들은 그제야 송편을 집어먹기 시작했지만, 나는 더 이상 떡을 삼킬 수 없었다.
2000년의 서태지는 누메탈이라는 과격한 음악을 들고 나왔고, 이것은 우리 대중음악의 정서와는 괴리됐다. 서태지는 그 해에 조성모, 지오디와 경쟁했는데, 압도하기는커녕 대중적으로는 도리어 밀리는 형국이었다. 서태지는 매번 생소한 장르를 끌어와 한국 가요계를 혁신했고, 엄청난 인기몰이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렇게 우리 시대의 정서 자체를 바꿨다. 하지만 이제는 21세기다. 그가 통치하던 1990년대가 아니다.
그런 것이었는데,
나로서는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그러니까
서태지는 사촌 형1과 사촌 누나1, 2를 잃었지만, 새 팬을 얻었다.
셋을 잃고 하나를 얻은 서태지는 유감이겠지만,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
팬이 되는 건 참으로 신비롭다. 많은 서태지 팬들이 이 새로운 사운드를 낯설어 하며 떠났다. 그런데 나는 듣기 괴롭다는 이 음악이 왜 좋았을까? 그렇기에 취향은 신앙이 된다. 계시가 모든 걸 결정하기 때문이다. 신실했던 기존의 신자들 중에도 새 음악을 영접하지 못한 영혼이 숱했다. 반면 아무런 의지가 없던 내가 느닷없는 불세례를 받았다.
나는 비로소 짝퉁 테이프와 결별했고 진정한 경전을 얻었다. 경전의 수록곡들은 참기쁨으로 채워진 복음송이었다. 예배에 필요한 음악은 싱글이 아니라 앨범이었고, 앨범만이 경배를 받을 가치가 있었다.
‘음악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런 이야기는 우리 조상이 곰이었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순도 높은 ‘뻥’이었기에 코웃음을 쳐왔는데,
믿게 됐다. 정말 곰이 우리의 조상이었고, 나는 신실한 신자가 되어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달리 말하면, 아무렴 어때, 할 수 없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