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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Aug 25. 2024

내 탓이 아닌 수면장애

그리고 지난 9개월에 대해

어젯밤 가위에 눌렸다. 그러고 보니 가위에 눌릴 때마다 불면일지를 재개하는 느낌...


하여튼

병원을 옮긴 뒤 약이 통째로 바뀐 덕에 한동안 (대략 5개월?) 가위에 눌리지 않았는데 참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버벅댔다. 가위에 깨는 나만의 노하우는 무슨. 가위를 즐기는 방법은 개뿔. 또다시 처음 겪는 양 두려움에 어쩔 줄 몰랐다. 뭐라도 나타날까 벌벌 떨었다. 무섭고 지치는 밤이었다.


마지막 불면일지를 쓴 날이 9개월가량 전이더라. 날짜만 보고 글을 다시 읽지는 못 했다. “나자신아 그때도 이랬니” 하며 서러워질까 봐. 나는 별거 아닌 일에 금세 서러워지곤 하니까.


그러니 9개월 전, 혹은 그 전의 내 마음은 묻어두자. 그보다는 여태 적지 않았던 그 이후 9개월에 관해서만 떠올려보려 한다.


평온하다 못해 심심한 내 일상에도 쫌쫌따리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중에 굳이 꼽자면 크게 두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1. 새로 옮긴 병원과 치료, 그리고 2. 연애

라 할 수 있겠다.


이사한 동네는 예전 살던 곳에 비해 번화가라 뭐든 다 많다. 사람도, 음식점도, 술집도, 인생네컷 부스도, 헬스장도, 그리고 병원도. 그중 '수면클리닉'이라는 간판이 오다가다 유독 눈에 띄었지만 그뿐이었다. 나아질 거다, 나아지고 싶다--라고 수면일지에 매번 적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더 힘들어질까 봐 두려웠고 새로운 시도들에 지쳐 있었다. 무서운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이미 몇 달간 내 몸을 통해 검증된 약에 안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맨날 똑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약 끊고 싶은데.'

'이 정도 수면 질에 만족해야 하나.'

'여전히 낮에 피곤해 죽겠는데.'

‘아 이게 맞나. 어제도 못 잤는데’

그리고 또다시 '약 정말. 끊고 싶은데.'




친구들이 결혼을 넘어 새로운 삶의 챕터—육아로 들어가는 동안 나는 여전히 이 망할 불면증 때문에 같은 자리에 붙잡혀 있었다. 하지만 한때는 짧게 절망한 뒤 금세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는 무언가 노오력하는 걸 반복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면 될줄 알았다.


애당초 잘못된 믿음이었다.


나는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 의지로 충분히 수면장애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실패한다면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 여겼다. 내가 더 열심히 불면증에 대해 공부하고, 치료받고, 병원 가고, 엄격히 지켜야 될 것들을 지키면. 그런다면. 다 가능할 거라고. 너희와 비슷한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거라고. 금방 따라잡고 같이 웃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꿈꿔왔던 커리어. 결혼. 나의 가정. 이에 따른 부모님의 안심과 만족 등 하고 싶은걸 전부 이룰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아, 희망을 놓지 못 했던 그 십여 년 나는 스스로를 얼마나 얄짤없이 채찍질해 왔는지.


어쩌면 통제불가능함은 두려움으로 직결되기에 어찌할 수 없는 신체적 결핍을 본능적으로 덮어둔 걸 지도 모른다. 혹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며 뽕에 차, 그건 뭐 별 문제도 아니라는 듯 치워뒀을 수도 있다. 내가 몸이 계속해서 안 좋은 건 나의 의지보다는 타고난 기질과 생물학적 특성 탓일 수도 있는데, 그런 가능성은 가뿐히 무시했다.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 '이 운명 내가 깨부숴주겠어!' 하며.

혹은 야심 찬 표정으로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며.

심기일전 다시 일어서는 가열찬 내 모습에 때때로 감동하고 흡족해 하며.


그러다 어느 날

불면증을 내 탓으로 돌리는 일이 문득 지겨워졌다. 숱한 실패와 좌절에 지쳐있었고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지내다가는 또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지나친 오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왔다. 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내 한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지속되는 불면증은 내 잘못이 아니고, 내 의지와 노력의 부족과 상관없고, 나는 할 만큼 했고, 충분히 잘해왔고,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건 그냥,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더 이상 과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편안해졌다. 조급함도, 불안함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내 상황에 맞는 꿈을 다시 재정비하기로 했다. 헛된 희망을 버리고 또 한 번 인정하기로 했다. 나의 미래는 어쩌면 친구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누군가에겐 당연하지만 나에겐 큰, 그런 기대들을 하나 둘 내려놓기로 했다.


'포기'라고 하기엔 서글프다.  왜 '나만’이라 외치면 억울해진다. 그래서 일단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보려 한다. 어쩌겠나 이렇게 태어난 것을. 다시 한번, 어쩔 수 없는 건 그냥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이런 인생도 또 저런 인생도 있다. 나는 '나만'의 특별한 행복을 누리면서, 낮의 외로움도 밤의 괴로움도 품으면서, 그렇게 친구들의 '이런 인생'과는 사뭇 다른 '저런 인생' 쪽을 맡으면 그뿐이다.




그런 나에게 '연애'라는 단어는 뭐랄까

'사랑'이라는 단어와 결부되니 더 이상 현실감이 없었다. 어린아이가 산타클로즈를 믿는 것처럼 순진하고 아름다운, 해맑고 터무니없는 판타지 같았다. 가족이 아닌 사람이 이런 나를 사랑해 준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더 이상 그런 욕심을 내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의지가 될 여력도 없는 주제에 이를 상대에게 기대하게 될까봐, 바라면 안 되는 걸 다시 바라게 될까봐 꺼려졌다.


그럼에도 그와 대략 6개월간 만날 수 있었던 건

내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상태를 고백했음에도 괜찮다고,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좋다고 말했던 그 사람 덕이었다. '그래서 더 좋다'라는 말은 지나치게 천진한 거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거짓이더라도 끝까지 속고 싶었다. 내겐 의미가 큰 말이었으니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 주는 걸 넘어 그 모습을 되려 좋게 본다며 <웃음 치료>를 해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어찌 안 사랑할 도리가 있었을까? 용기를 내 봤다. 이런 사람 다신 못 만날 것 같아서. 그런 사랑 받아보고 싶어서. 지금도 후회하진 않는다. 금세 다시 산타클로즈를 믿을 수 없게 되었지만.


서로에 대한 노력과 열정도, 약을 끊고 몸을 낫게 할 혼자만의 의지도 모두 색이 흐려질 때쯤 언니가 한국에 왔다. 1년 만이었다. 그리고 모든 게 바뀌었다. 나는 앞으로도 평생 언니와 함께한 이 여름을 기억하겠지.


그러니까 종국엔 사랑이었다. 사랑 사랑 또 사랑이었다. 무조건적인, 종종거리며 우려할 필요 없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큰 언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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