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혀도 일어서기
이틀 전, 그의 본명으로 좋아요가 눌려 있었다. 제일 최신 글이었다. 모든 희망이 좌절됐고, 살기 싫고, 계속 울었고, 내 옆에 없는 누군가가 그리워 죽겠고(당연히 그는 아닌) 하는 구질구질한 글이었다.
그가 내 글을 읽었다는 사실이 내게 위안이 될 거라 생각한 걸까? 헤어진 지 3개월밖에 안된 그는 왜 굳이 본인의 이름으로 좋아요를 눌러야 했을까. 내 불면증을 본인의 '웃음치료'로 해결해 주겠다더니 그렇게 소홀해졌으면서. 이제 자신 없다 말했으면서. 헤어질 때도 나는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혼자가 된 지금도 여전히, 아니 더 심하게 삽질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비참해 죽는 줄 알았다.
그는 사귀고 있을 때에도 내가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을 손쉽게 검색해 찾아내곤 했다. 창피한 처녀작인 내 단편영화까지도 용케 찾아내 굳이 결제해서 봤다. 그리고 내가 잘라서 보내준 브런치 글귀를 따로 검색해 내 브런치 계정마저 알아냈다. 항마력 딸려 나는 그가 봤다는 내 글들을 다시 읽기가 힘들었다. 악의가 없었다는 걸 알기에 당시 나는 "부탁인데 내 브런치 이제 읽지 말아 줘."라고 말했고, 그는 바로 수긍했다. "알겠어." 라며. 그 대답 한 마디를 신뢰했다. 나랑 그렇게 말했으니 정말 안 볼 것 같았다. 사실 믿는 수밖에 더 있나.
그래놓고
그렇게 약속해 놓고 대놓고 '좋아요'를 누르다니, 너무했다.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화나서인지 창피해서인지 바로 눈물이 났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 안 보기로 약속했으면서.
- 하...
- 너무한다 진짜
- 말해놓고 다 까먹나 봐
7분이 지나 온 답장은
- 죄송합니다...
- 유튜브 링크(옛날에 얘기했던 주제인)
- 이게 갑자기 생각이 나서...
- 다신 보지 않을게!
화나기 시작하니까 모든 게 다 빡침 포인트였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 우리가 장난으로 나눴던 유튜브 링크를 보낸 것, 다신 보지 않을게에 붙은 저 명랑한 느낌표까지. 나는 쪽팔려 죽겠는데 너는 이리 태연하구나. 겨우 추스러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 친구 덕분에 다시 엉엉 울고 있었다.
- 나 바닥친거 보니까 좋아?
1분도 되지 않아 이런 카톡을 보내고 있었고 그의 답장은
- 마음이 너무 아프고 슬펐어
그리고 나는
- 오빠가 최악이야
- 비참하게 만든다
다시 그는
- 미안해 그렇지만 난 진짜 언제나 기도하고 잘 되기를 빌게
나를 포기한 네가
멀리서 해주겠다는 기도가
내게 진짜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마음 아프다는 너의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들릴지는 생각 안 해봤는지.
너는 그랬지.
나의 불면증을 딱하게 여기고 최대한 이해하려 했으면서도, 내가 낮의 피로에 잠식되어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까진 이해하지 못했지.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하고 싶었고 잘 해내고 싶었는데 6개월 내내 그건 몰라줬지. 이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룬 그가, 본인의 성실함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그가
“한 번쯤은 진짜 끝까지 노력해보고 싶지 않아?“
라는 말을 했을 때.
그때부터 내가 조금씩 이별을 준비한 건 알고 있는지.
'끝까지 노력한다'는 그의 기준을 누군가는 맞추고 싶어도 못 맞추게끔 태어났다는 걸 지금은 아는지. 그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도.
한 번 쯤이었겠니. 수천번 수만번을 망할 그 노력 다시 해보고 싶었어. 15분 단위로 계획을 쪼개 철썩같이 지키고, 잠이 오면 손목에 걸어둔 노란 고무줄을 세차게 튕겼던, 건강했던 그 시절처럼.
그러니 나는 나를 위해 응원한다는 따뜻한 그의 카톡에조차
-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오빠가 날 불쌍하게 여겨주니 고맙네
- 보든 말든 마음대로 하고 답장하지 말아 줘
라는, 피해의식 가득 찬 답장을 할 수밖에 없었지.
웃기다. 스스로가 우습다. 지난 글에서 이제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해놓고, 다 필요 없고 포기라고 해놓고, 그에게는 아직 지키고 싶은 체면이라도 남아있었던 걸까? 아직 팔릴 쪽이라도 남아있었던 걸까? 다음 날 우리의 카톡을 읽어보니 그의 선의에 나 혼자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분했다. 창피하고 비참했다.
너의 착한 입장 사실 생각하고 싶지 않아. 제일 들키고 싶지 않은걸 제일 들키기 싫은 사람에게 들켜버린 내 입장만 생각하기도 벅차니까. 읽더라도 티 내지 말지 그랬어. 아니면 차라리 읽고 내게 '힘드냐'며 카톡을 보내지. 좋아요는 누르지 말지 그랬어. 나머지 해석을 나더러 어떻게 감당하라고.
브런치는 내 마지막 숨구멍이었는데 그마저 잃었다는 생각에 주말 내내 기운이 빠졌어. 그런데 그냥 쓰려고. 마지막에 너에게 말했듯 이제 누가 보든 말든 생각하지 않고, 쓰고 싶어 질 때마다 뭐든 쓰려고. 참. 그래도 봤다는 티는 안 내줬으면 좋겠네.
어제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나 이제 아무도 신경 안 쓸래. 아니 쓰기 싫어. 딱 두 명만 신경쓸래. 엄마 아빠도 아니고, 나랑 옹심이만( = 고양이 집사로서 최소한의 책임감. 물론 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요 근래 내 상태를 알고 있는 아버지의 숙연한 반응을 예상했건만, 아버지는 되려 웃는다.
"어이고, 다 컸네!"
하며. 예의 그 화통한 웃음소리와 함께.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한참을 흡족한 듯 웃던 아버지가 덧붙인다.
"니가 드디어 정신차렸구나?"
무슨 소린지. 아버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어법인가 추측해볼 뿐이었다. 아버지는 가볍게 이어 말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 전부 신경쓰고 마음 쓰더니. 다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