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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Sep 06. 2024

까짓거 이대로 평생 살지 뭐.

약에 내성이 생겨버렸다


2년 전, 만나면 신세한탄만 하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는 만났던 사람 중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이었다. 7살 차이가 어찌 보면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직 닿지 못 한 마흔 줄에 접어들었기에 마치 '진짜 어른' 마냥 보였다. 그리고 그 역할을 기대했다. 한 번쯤 누군가에게 의지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그는 개인적인 이유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늘상 툴툴거리는 그에게 위로를 해줘야 하는 건 내 몫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일 년 남짓 흐르자 어느 날 문득 현타가 왔다. 나는 매일 아침 응원의 글귀가 담긴 사진을 전송하는 등 사랑과 퍽 가까운 일들을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우리의 관계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나의 노력들이 뿌듯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가 보낸 글귀에 혼자 위로받는 일에 지쳐갔다. 걱정하고 다독이는 일은 사랑하는 상대에겐 관성이나 다름없기에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어느 날 문득 "그럼 내 마음은 누가 챙겨줘?"라는 속 좁은 불만이 떠올랐다. 나는 나에게조차 뒷전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때부터 급속도로 지쳤다. 그리고는 다시 결심했다. 여태 그래온 것처럼 친구나 연인에게 내 고통을 말하지 말자. 굳이 그런 짐을 얹어 소중한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 말자. 차리리 관계에서 청자 역할을 계속해서 맡자. 어쩌면 다음 날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리 변덕스러운 감정 따위 혼자 해결하자. '진짜 어른'처럼.


하지만 각오는 손쉽게 무너져 내렸다. 바로 어제였다. 최근 새로 시도했던 불면증 치료가 또 한 번 효과를 내지 못 하자, 마지막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고 나는 무너졌다.


스스로를 딱하게 여기고 싶지 않은데도 통탄스러워 눈물이 났다. 피로에 찌들어 여태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이 새삼 훅 하고 들어왔다. 찾아갔던 병원들과 시도해 본 약들의 수가 실제보다 더 많게끔 느껴졌다. 애초에 밤과 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뇌로 타고났다는 게 밝혀져 더욱 무기력했다. 낳아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내 삶은 시작부터 내 의지가 아니었다.  


계속 이런, 마치 전 날 밤샌 것만 같은 컨디션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나. 나 사실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모조리 다 해본 것 같은데.


다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강렬히 들었던 어제, 나는 처음으로 구원요청을 했다. 임신한 친구였는데 나와 제일 친하다는 이유로 그에게 연락해 버렸다. 그리고는 대낮부터 울면서 한탄했다. 나 더 이상 못하겠다고. 이내 바로 후회할 거면서 면목없는 짓을 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급했나 보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위로의 글 같은 건 통하지 않았다. 타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어떤 말이 정답일지는 나도 모르겠으니 아는 사람이 있다면 뭐라도 말해줬으면 했다. 그리고 살아야 한다면,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할지 까지도 알려주길 바랐다. 존재 자체만으로 하나의 완전한 우주라는 둥,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라는 둥 달관한 현자의 책 속 글귀들은 더 이상 와닿지가 않으니.


그러니까 또 오랜만에 보고 싶더라. 내게는 그 누구보다 현명했던 그 친구가. 요상해도 듣다 보면 수긍이 가는 답을 내려주곤 했다. 나의 밑도 끝도 없는 파국화에 맞서서 무엇이든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줬다.


개운하게 일어난 아침 같은 사람이었다. 홀로 계속해서 싸우다 안 되겠다 싶어 옆을 보면 당연하다는 듯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친구였다. 이미 한참 전부터 내 옆에 있었다며, 거의 다 이기고 있다며 웃어줄 것만 같았다. 나는 어제 그 친구가 필요했다.


이기적이고 부질없는 마음인걸 안다. 사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공감과 위로를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포부는 오만했다. 이번 글만 해도 신세한탄과 합리화의 장이 되었다가, 종국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혼란스러운 글이 돼버렸다. 그래도 일단 쓰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쓰고 있다. 오늘 조금은 나아졌음에도 어제의 절망감을 제대로 담으려 애쓰고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굳이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안 좋은 글이 되든 누군가 보고 마음이 불편해지든 그냥 써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쓴다. 쓰고, 쓰고, 또 쓰고. 그러다 보면 글의 끝에는 어떤 말이 남을까. 역시 모르겠다.






다시 더 거슬러 올라가, 대략 7년 전. 처방받은 약을 성실하게 복용하고 있었다.


주황색 한 개, 흰색 한 개, 보라색 반 개.


수차례 시도 끝에 그나마 맞는 약을 찾았건만 '그나마'였을 뿐이기에 얕은 수면에 그치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악몽과 가위눌림이 더 잦아지거나 약효가 현저히 떨어질 때면 이사해야 할 타이밍이다. 그렇다고 멀리는 갈 수 없고, 같은 아파트 내 호수만 다른 집으로 옮기는 식이다. 아예 새로운 약을 시도하기엔 부작용에 트라우마가 생긴 나는 같은 약 내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주황색 두 개, 흰색 두 개를 일단 먹어보고.

별로면 보라색과 주황색 약만도 먹어보고.


경우의 수를 꼼꼼이 훑듯 매번 다른 조합을 만들어봤다. 배합이 한계에 왔다 싶은 순간에는 1년 전 다녔던 병원에 다시 찾기도 했다. 그곳에서 처방해 줬던, 약효는 미미했지만 부작용은 없었던 약들이 따로 또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그 안에서 또 다른 경우의 수를 만들다 이마저 다 채우면, 다시 전의 병원으로 복귀했다.


다시 주황색 한 개, 흰색 한 개, 보라색 반 개다.


하지만 이 약들로는 더 이상 개운함을 느낄 수 없었다. 같은 용량으로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일에도 한계가 왔다.


그러니 이번엔, 주황색 두 개, 흰색 두 개, 보라색 한 개.


약이 딱 두 배가 늘어버렸다. 두 배. 그 숫자가 영 찝찝했다. 애써 회피해 왔던, 내성이 생겼다는 사실이 숫자로 확실히 굳어졌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계속 약을 늘리며 살아도 되나? 이런 식이면 나는 훗날 어디까지 복용량을 늘려야 하는 거지?


그 후 단약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애써 희망과 의욕을 갖고 심리치료라도 더 알아보고, 불면증에 좋다는 새로운 지식이 있다면 바로 적용해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약 없이 어떻게든 며칠을 넘겨보려 했다. 아무리 잠을 잘 못 자도 피로가 쌓이고 쌓이면 결국 기절하듯 푹 잘 수 있지 않을까. 당연한 논리였다. 그러니 일단 최대한 버텨보자.


하지만 내게 그 논리는 적용되지 않았다.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해결될 거란 나의 포부를 비웃듯, 누적된 피로는 숙면 대신 가위눌림과 악몽을 불러왔다. 그리고 아무리 피곤해도 깊이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단약을 결심한 지 며칠만 지나면 신경이 곤두서고 너덜너덜해졌다. 결국 나를 위해서, 그리고 주변사람을 위해서 다시 약을 처방받는다. 그러면 조금은 긴 회복기간 끝에 '일상력' 되찾았다. 그제야 '살 거 같다'고 느꼈다.


아, 그러니까

이제야 살 것 같고.


그냥 뭐 약 까짓 거 먹으며

이대로 평생 살아도 될 것 같고.


아니, 사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고.


규칙적인 생활만 유지된다면 이 약, 저 약, 도망치며 평생 이리 살지 뭐, 싶었다. 사실 이때부터는 무한 반복이다. 약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슬며시 떠오르고, 하여 시간이 지나면 단약을 시도하고, 하지만 어김없이 실패하고. 오랜 기간 이 사이클이 되풀이되어 왔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학습된 무력감이 커져 감당할 수 없을 무렵, 나는 더 이상 단약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P언니와 일상 이야기를 하던 중,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화두에 올랐다. 요즘 유독 다큐를 찾아보고 있다는 언니는 내게 두 편의 작품을 추천했는데, 그중 하나가 <테이크 유어 필스, 자낙스의 경고>였다. 그리고 자낙스는 내가 매일 밤 먹고 있던 약과 같은 종류였다.



*글 내 약의 색깔은 임의로 설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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