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WANDER WONDER

감시에서 사색으로

인왕산초소책방

by citevoix



도시를 구분 짓는 요소들이 뭐가 있을까? 행정구역처럼 제도화된 구획이 있는가 하면 도로나 철도, 담장 같은 구조물들도 크고 작은 경계를 만들어낸다. 또 암묵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적 경계들도 우리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본능처럼 피하거나 때로는 넘어서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경계들이 언제나 단절이나 금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계는 우리가 미쳐 보지 못했던 풍경을 환기시키고, 익숙함에 가려졌던 세계를 다시 감각하게 해 준다.



서울 인왕산 자락에 올라가면 오래도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던 작은 건물이 하나 있다. 인왕산은 조선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되던 곳이다. 특히 분단 체제와 냉전의 공기가 짙었던 20세기 중반 이후, 이 일대는 군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그곳에 자리한 작은 건물은 원래 군 감시초소였다. 병사들이 교대로 산을 지키고 도시를 관측하던 공간으로 외부를 향한 감시와 통제를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머물 수 있는 열린 장소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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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이 초소를 시민과 함께 다시 쓰는 공공건축 프로젝트로 전환해 되살렸고 운영 주체 또한 시민 공모를 통해 정했다. 그저 남은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과거를 기억하고 새로운 의미를 더하려는 움직은 '초소책방'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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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으로 초소책방은 그 과거를 지우지 않았다. 외관은 기존 초소 구조를 그래도 유지했고 내부 역시 구조를 살리되 최소한의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내부에 들어서서 창밖을 바라보면 인왕산 숲이 마치 액자 속에서 튀어나온 듯 시원한 풍경을 펼친다. 과거 바깥을 감시하던 그 창이 이제는 자연을 품은 창이 되었다. 감시의 시선은 사색의 시선으로 바뀌었고 통제의 구조는 머무는 구조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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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군사적 용도로만 사용되던 공간이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권력의 공간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고, 폐쇄된 공간이 열린 커뮤니티의 거점이 되었다. 이곳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책을 읽고, 창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거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공간에 머무는 시간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며 고밀도의 도시 속에서 공간을 다시 상상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버려진 시설을 새롭게 쓰는 시도는 도시 재생의 좋은 예시가 된다.



뿐만아니라 초소책방은 도시와 자연 사이의 연결점이기도 하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숲의 기운을 그대로 품은 이곳은 도시적인 삶과 자연의 리듬이 얼마나 긴밀하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경계'라 불리던 장소가 오히려 도시와 자연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 것이다.


글, 사진 | cievoix






- 영업시간

매일 08:00-22:00


- 내부 주차장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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