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WANDER WONDER

노년의 일상을 다시 그리는 공간

신노년세대 복합문화공간 'HAHA센터 해운대구 재송'

by citevoix



고령화 도시의 공공성 재구성과 생활권 기반 실험


현대 도시는 오랫동안 청년층 중심의 경제 및 문화 무대로 인식되어 왔으며 현재도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도시의 인구 구조가 변화하면서 노년층이 단순한 보호 및 돌봄의 대상이 아닌 도시 생활권의 주체적 구성원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베비이붐 세대 이후 등장한 신노년층(active seniors)은 과거의 수동적 노년상과 달리 경제 성장기에 사회적 활동을 주도했던 세대로서 여전히 학습, 소비, 사회적 참여에 대한 욕구가 강한 집단이다. 이들의 삶의 무대 역시 과거의 노인복지관 같은 ‘전용 공간’이 아닌 일상 생활권 내 문화적・사회적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부산형 15분 도시 정책은 생활권 기반으로 공공 서비스를 확장하고자 하였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HAHA센터이다. 이 공간은 단순한 복지시설이 아니라 주거지에서 15분 내 접근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도시계획과 인구정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노년층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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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권 기반 공공 공간의 재구성: 가능성과 한계


15분 도시 정책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근접성(proximity)은 복지, 여가, 건강, 문화 서비스가 특정 거점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권 전반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노년층이 복지관이나 공원 등 한정된 공간에서 활동하였다면 이제는 동네 곳곳에서 일상적 문화 소비와 사회적 관계 형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HAHA센터가 위치한 생활권은 대규모 주거단지, 상업시설, 공공기관이 밀집한 복합 지역으로 이곳에서 노년층과 청년층이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방식은 현대 도시가 추구하는 세대 간 공존(co-existence)의 구조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근 방문한 해운대구 재송동에 위치한 HAHA센터는 이러한 변화를 실험하는 생활권이다. 재송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전통적인 주거지, 첨단 업무지구(센텀시티)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노년층과 청년층, 직장인과 거주민이 일상적으로 뒤섞인 다층적 생활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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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찾는 신노년층은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다. 배움과 취미, 건강 관리를 통해 자신을 확장하고 동네 친구들과 소모임을 만들어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활동하는 고령층(active seniors)이다. 이들은 평생학습 강좌를 통해 디지털 소외를 줄이고, 커뮤니티 라운지에서 다양한 세대와 어울리고, 운동실과 건강 프로그램으로 신체적 활력을 유지하고, 지역 행사나 동호회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 참여자로 살아간다. 이러한 일상적 활동이 모여 근린 공동체(neighborhood community)의 결속을 재형성한다. 과거 동네 사랑방처럼 기능하던 공간이 사라진 현대 도시에 HAHA센터가 새로운 사랑방의 역할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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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공간은 더 이상 단순한 ‘이용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가 발생하는 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HAHA센터는 이러한 측면에서 노년 세대의 사회적 공간으로서 ‘돌봄’의 장소가 아닌 ‘만남’과 ‘확장’의 장소이다. 노년층이 나이 듦을 이유로 특정 공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네 곳곳에서 머물고 걷고 만나는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작은 일상에서 시작된다. 아침에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마주친 이웃과 오후에는 동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에는 문화 활동으로 다시 만나는 흐름은 도시 안에서 노년의 시간이 고립이 아닌 연결의 시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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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HAHA센터의 현재는 아직 이러한 이상적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신노년세대가 바라는 삶의 방식과 공간이 제공하는 콘텐츠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이들은 단순한 여가나 학습뿐만 아니라 경제적 활동, 사회적 역할, 지역 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한다. 그러나 현재 HAHA센터는 기존 노인복지관의 기능과 크게 다르지 않은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의 일상에 실질적인 변화를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아직 HAHA센터의 존재를 모르고 있으며 별도의 공간으로 방문하기보다는 기존 복지관 활동의 연장선으로만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운영 주체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점도 문제이다. 그만큼 ‘동네 안에서 자연스럽게 찾는 생활공간’이라는 정책적 취지와 실제 이용 행태 간의 괴리가 존재한다.



고령화 도시의 공공성 확장과 향후 과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는 지속되어야 한다. 도시는 고령화라는 인구학적 구조 변화 앞에서 노년층이 소외되지 않고 일상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HAHA센터는 아직 완성된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도시에 노년의 삶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려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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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단순한 복지 서비스를 넘어 경제활동과 연계된 프로그램 개발, 지역 상권 및 청년 세대와의 협업을 통한 세대 통합형 일자리 모델, 생화권 내 다양한 커뮤니티 활성화, 지역 거점으로서의 공간 브랜딩 및 접근성 개선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노년의 삶을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도시 생활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HAHA센터는 그 전환 과정을 보여주는 도시적 실험이자 사회적 실천이다. 정책의 완성도를 둘러싼 논란이 존재할지라도 지금 이 시대의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작은 이정표다. 도시의 시간 속에서 노년이 사라지지 않도록, 누구에게나 동네가 삶의 무대가 될 수 있도록 HAHA센터가 품고 있는 질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글, 사진 | citevoix






- 운영시간

평일 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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