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보우하사
카페 보우하사를 처음 찾았던 건 작년 겨울이었다. 차가운 칼바람이 골목을 쓸고 지나가던 날, 따뜻한 온기와 사람들의 말소리로 가득한 한 집을 만났다. 경주의 번화한 관광지에서 차로 10분쯤 떨어진 조용한 동네. 나지막한 담장과 작게 새겨진 이름만이 이곳이 카페임을 겨우 알려줄 뿐이었다.
'이렇게 외진 곳에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이유가 뭘까?' 그 답을 찾는 데는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름처럼 다채로운 커피와 계절 과일로 구성된 디저트 등 메뉴의 구성은 경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겨울 시즌을 한창 준비 중이었는지 내부는 다소 어수선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던 찰나, 바리스타분이 커피 취향을 물었고, 이후 정성껏 커피를 내려주었다. 정신없던 분위기와는 달리 커피 한 잔에 담긴 태도만큼은 분명했다. "다음에 꼭 다시 와야지." 그게 이곳에 대한 첫 방문 기억이다.
그리고 올여름, 다시 이곳을 찾았다. 집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담장을 따라 능소화가 흘러내리고, 작은 정원엔 풀들이 자라 여름의 존재를 말없이 알리고 있었다. 건물 뒤편, 그 사이에 서 있는 안내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알았다. 이 집은 그냥 카페가 아니라, '경주역 관사'라는 이름으로 기억을 품은 건축물이라는 것을.
1929년, 경주역의 확장 이전을 앞두고 이 일대엔 철도 직원들을 위한 관사촌이 조성되었다. 경주는 일제강점기 시절, 경부선과 동해남부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였고, 이 마을은 철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도시의 일상과 긴장을 함께 품고 있었다. 골목을 따라 역장관사, 부역장관사, 합숙소, 이발소, 참기름집 등 같은 생활 시설이 마치 하나의 작은 공동체처럼 배열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 흔적들이 희미해졌지만 당시 관사들은 대부분 한 지붕 아래 두세 대가 함께 사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 집은 예외적으로 단독형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역장의 지위를 상징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원에는 전신주 하나가 남아 있다. 과거 전화기가 귀하던 시절, 역장과 부역장이 직접 통신하던 흔적으로 지금은 그 기능을 잃었지만 이 집이 가진 기능성과 희귀성을 조용히 말해준다.
이 집은 오랫동안 단 한 칸만 사용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슬라브 불법 증축물이 외관을 가리고 있었고, 내부는 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빗물이 새고 창고처럼 변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 방치가 역설적으로 이 집의 원형을 고스란히 지켜낸 이유가 되었다. 대부분의 관사들이 개보수 과정에서 형태를 잃어갔지만, 이 집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채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다 과거 적산가옥에서 살았던 한 사람에 의해 다시 꺼내졌다.
문과 창, 처마, 골조에 남은 세월의 결을 읽어낸 그는 내부의 구조는 거의 그대로 두고 지붕만 동(銅)으로 교체했다. 처음엔 숙박업으로 활용하려 했지만 법적 제약으로 무산되었고 대신, 젊은 운영자와 함께 카페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바로 지금의 카페 '보우하사'다.
'보우하사'라는 이름은 '레인보우'의 보우와 '하사하다'의 하사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자연이 주는 계절의 재료로 만든 커피와 디저트는 이 공간의 가치를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커피를 기다리며 정원을 산책하고 능소화가 흐르는 담장 너머로 오래된 벽을 다시 바라본다.
한 집을 재생한다는 건 단순히 벽돌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 살던 사람들, 지나다닌 시간, 그 공간이 품고 있던 공기의 결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다. 보우하사는 커피라는 언어로 그 일을 해내가며 새로운 기억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자리에 돌아오니 시원한 커피와 디저트가 조용히 놓여 있다. 한 모금 마시고, 한 입 베어문다. 지난겨울보다 더 깊어진 맛이 입 안에 퍼진다.
글, 사진 | citevoix
- 운영시간
수-월 10:00 - 19:00 / 매주 화요일 휴무
- 주차 불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