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EEK STAY

상징성이 가득한 공간에 서서

대전근현대전시관(대전 충청남도청 구 본관)

by citevoix



대전역 광장 앞 가로축을 따라가다 보면 우뚝 솟은 큰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바닥에서 약 30cm 정도 노출된 지대석 위에는 타일이 깔려 있으며 지붕은 간결한 형태의 코니스(cornice)로 마감되어 있다. 이 건물의 중앙 부분은 주변 공간보다 약간 높게 설계되어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출입구 상부의 창문에는 발코니가 있다. 창문의 위치는 현관을 중심으로 외관의 균형과 구조적 내구성을 고려하여 균일한 크기로 배치되어 있다. 얼핏 보면 모더니즘 양식이 충실히 반영된 이 건물은 근대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아치형 천장과 아르데코풍 난간 등 미학적 요소들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대전 충청남도청 구 본관이다.


DSCF1780.jpg
DSCF1783.jpg



01 건축의 장소성


캐빈 린치(Kevin Lynch)는 문화재가 단순한 시각적 랜드마크를 넘어 상징적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와 대표적 건물들은 그 자체가 지닌 전통적인 분위기와 역사성으로 인해 사람의 손길이 닿기 전부터 고유의 상징성과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근대 건축물 또한 시각적이면서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기능할 수 있으며 이때 장소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10년대 말 대전지도. 출처 | 대전의 지도


1910년대 말 대전 지도에서 이 자리에 위치한 건물의 핵심적 결정 기준은 ‘대전역 앞 직선 도로와의 접점’이었다. 이는 대전의 식민지 도시화 과정에서 이 직선 도로가 공간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오늘날까지도 ‘중앙로’라 불리는 이 도로는 대전천 서쪽 은행동과 선화동으로 뻗어나가며 대전 시가지의 형성을 이끈 가로였다. 대전역 앞 시가지의 서쪽으로는 1 정목(현 중동)과 2 정목(현 은행동) 사이를 관통하는 직선 도로가 표시된다. 이 도로는 1912년 10월 대전역에서 공주 도청소재지로 통하는 가도로 개설되었다.


1910년대 대전 중앙로 모습 출처 | 대전시립박물관


대전 시가지는 대전역 주변 원동, 인동, 중동 일대에서 형성되기 시작해 1907년 대전우편국과 대전소방대, 1909년 대전재판소 등 관공서들이 설치되었다. 일제 거류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대전어채시장(현 중앙시장)’은 대전역 앞 시가지가 서쪽으로 확장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1912년 대전교 가설과 함께 공주가도가 개설되면서 대전 시가지는 은행동과 대흥동, 선화동 방면으로 확대되었다. 대전역 앞 직선 도로가 대전 시가지 확장의 기본 축을 형성하며 대전의 상징적인 가로로 부각된 것은 1929년 대전신사가 대흥정에 건립되면서부터였다.


일제는 대전역 개설 이후 1907년 대전역 동편 소제동에 대전신궁을 세웠다. 국권 침탈 이전의 대전신궁은 주로 일인들의 결속과 단결을 위한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했지만 국권 침탈 이후 신사의 의미는 달라지게 된다. 이는 일제의 식민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신사는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황민화 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 식민지 지배의 상징적 기능을 했다.


DSCF1815.jpg
최신대전시가지지도(1933)와 아래 점선으로 표시된 도청사. 출처 | 대전의 지도(왼), 현재의 대전 중알로 모습(우)


대전신사 건립으로 대전역 앞 직선 도로는 단순한 기능적인 가로를 넘어 대전 지역 식민정책 수행과 유지의 척추에 해당하는 핵심 상징 가로가 되었다. 이 상징 가로의 서쪽 구간 도로 끝에는 충남도청사 부지가 위치해 있다. 결과적으로 대전 시가지 공간배치에서 도청사 부지는 배후에 새로 이전한 대전신사를 두고 대전역과 뒤편 솔랑산 옛 대전신궁 자리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소성을 가진다.




02 건물에 남겨진 상징의 흔적들


충남도청사는 일제의 식민정책이 문화정책을 거쳐 병참기지화 및 전시 총동원(1931-1945)으로 변화하는 중요한 전환기에 건립된 건축물 중 하나로 도청사 본관은 원래 벽돌조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로 세워졌다. 그러나 해방 후 1960년에 넓은 창을 지닌 3층으로 증축되었다. 외벽 마감재로 사용된 스크래치 타일은 당대 유행하던 건축양식을 따르며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도쿄제국호텔과 유사한 점이 많다.


SmartSelect_20230120_215024_Chrome.jpg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도쿄제국호텔(1923). 출처 | 구글
DSCF1811.jpg
DSCF1779.jpg
DSCF1821.jpg


건물 중앙은 관공서 건물의 목적에 부합하는 충실한 구조를 보인다. 외관의 구조와 균형에 맞게 수직선상으로 뻗은 현관과 중앙 홀로 올라가는 계단의 정면에 배치된 창문으로 들어오는 채광은 고요함과 함께 중앙으로 시선을 집중하게 한다. 내부에 들어서면 독특한 몰딩의 아치와 두 개의 독립된 기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물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가장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로 그 정교함을 실제로 보면 놀랄 수 밖에 없다.


DSCF1796.jpg
DSCF1805.jpg


긴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안정적인 느낌을 받는다. 창문을 통한 채광이 관청의 무거운 분위기를 밝히고 내부의 구성과 형태가 외부와 거의 동일한 선을 따르기 때문이다.


DSCF1810.jpg
DSCF1806.jpg
DSCF1784.jpg


사실 관공서 건물은 일반 건물보다 그 목적에 더 부합하여 설계될 수밖에 없어 구조적으로 큰 특징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건물의 벽면과 천장, 바닥의 그림이나 문양은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히 미학적 장식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반영한 의미를 지닌다.


DSCF1825.jpg
DSCF1826.jpg


건물의 후면으로 나서면 저층 주택을 연상케하는 붉은 벽돌이 주를 이루고 주변으로 나무와 정원이 배치되어 권위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전면과는 대조되는 모습과 계단실의 입면이 가장 특징적이다. 계단 중간의 입면은 수직으로 긴 3개의 창을 정면처럼 나란히 배치해 벽돌을 조금씩 내어쌓는 방식으로 테두리를 만들었는데 이는 장식성과 주목성을 높이기 위함이며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창호도 정면과 같이 상부를 고정창으로 만들고 화려한 문양을 배치했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문양 없는 불투명 유리로 교체돼 확인이 불가능하다.


DSCF1830.jpg
DSCF1838.jpg


중앙부에는 출입구와 계단이 살짝 튀어나와 있고 계단실 창문 아래로는 발코니를 만들어 단조로운 입면에 입체감을 주었다. 1층 창대 아래에는 이형 타일과 긴 돌림대를 넣어 정교함을 살리고 2층 창 아래에도 동일하게 창대를 만들어 아랫면을 돌출시켰는데 면마다 장식문양을 넣어 정면에 적용된 입면의 특징과 동일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 우리 삶이 몸담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을 때 우리는 자신과 함께 해온 건축물들과 다양한 대화를 시도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우리에게 아픈 장소이자 추억의 장소이자 역사의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


글, 사진 | citevoix






- 운영시간

월 정기휴무(매주 월요일)

화-일 10:00-18:00


- 주차가능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