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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 케인 Apr 28. 2021

생명의 형성과 삶의 목적에 대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목적은 무엇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며 답을 찾으려 하지만 찾기가 어렵다. 기존의 종교의 가르침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판타지에 기초한 망상에 불과하다. 인문학적 철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답 또한 한정적이고, 결국은 철학자 개인의 편협한 의견에 불과하다. 때문에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길을 잃고 포기하여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기존의 철학 종교에서 위안을 받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인간이 이러한 고민에서 적절한 답을 얻어낼 수 없었던 이유는 이것이 본질적으로 잘못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이전에 우리는 우리가 속한 생명체라는 존재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생명체이며 세상은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로 가득하기에, 어째서 생명이 존재하는가? 우주는 왜 원소와 분자로만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생명은 필연적인 존재인가? 그렇다면 우주에서 생명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으로부터 인간의 존재 의미를 밝혀나가야 하는 것이다. 생명 전체를 포괄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찾은 다음에야 부분에 대한 답에 의미가 생기기 마련이다.

밀러 실험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무기물의 집합에 에너지가 가해지면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화학반응을 통해 화합물이 만들어지고, 화합물의 수프에서 에너지와 함께 유기물이 탄생한다. 이러한 유기물들은 특정한 과정을 통해(아직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은) 유기체로 합쳐지고, 생명이 탄생한다. 이처럼 모든 생명은 신의 은총과 목적에 따라 개별적으로 탄생한 것이 아닌, 무기화합물에 화학반응이 일어나 이루어진 유기물에서 출발한 동질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과정은 특정한 환경에서 필연적인 것으로, 생명체는 특정 환경에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엔트로피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엔트로피란 에너지의 흐름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자연에서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기 위해서 외부에서의 작용이 필요하다. 이는 우주 전체에서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한 것이다. 하나의 고립계에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것은 외부의 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끓는 물이 식을 수는 있지만, 식은 물이 끓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열을 끌어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명을 바라보면 생명은 각 개체가 하나의 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생명은 자신의 계 내부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기 위해 외부의 에너지를 끌어다 쓴다. 슈뢰딩거는 1944년 발매한 자신의 저서 "What is life?"에서 이러한 현상을 네겐트로피(Negentropy)로 정의하며 생명이란 네겐트로피를 먹고사는 존재라고 하였다. 즉, 생명이란 엔트로피가 무한히 증가해가는 우주 속에서 유일하게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이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계 내의 유용한 에너지가 감소한다는 뜻이다. 반면 계 내에서 엔트로피가 감소한다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가 증가한다는 뜻이다. 생명은 외부의 유용한 에너지를 감소시키며 자신에게 유용한 에너지로 전환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존재가 탄생하는 것은 우주에서 불가피한 과정인 것인가? 어째서 스스로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구조가 탄생하게 된 것인가? 이는 생명체가 탄생하는 환경이 어떤지를 생각해본다면 알 수 있다.

생명체가 탄생하게 되는 환경은 엔트로피가 낮은 계다. 즉 우주와 행성을 구분하는 대기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원시 지구의 대기와 화산 활동, 운석 충돌을 통한 에너지 유입 등을 고려해 볼 때 당시의 지구는 유용한 에너지가 넘쳐나는 계였다. 그리고 이러한 유용한 에너지를 통해 생명체는 탄생하게 된다. 탄생한 원시 생명체는 행성계 내부의 넘쳐나는 에너지를 소모함으로써 계의 엔트로피를 높이지만 스스로의 엔트로피는 낮추게 된다. 생명체는 자신이 획득한 '유용한 에너지'를 스스로를 복제하는데 이용하며 엔트로피의 전환 작용을 촉진하게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명체가 존재하는 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되고, 유용한 에너지는 평형을 이룰 수준으로 감소하게 될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균형을 위해 탄생한 것이며, 이러한 균형 아래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가장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예는 바로 플랑크톤이다. 플랑크톤은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의 하나로써 지구에 존재해왔다. 때문에 생명체의 본질에 무엇보다도 근접해 있는 것이다. 플랑크톤이 생명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 바로 적조와 녹조 현상이다. 영양분이 충분한 상태에서 태양 에너지가 투입될 때 플랑크톤은 급격히 번식하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평형 상태를 찾았을 때 그중 다수는 죽음을 맞이하며 다시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생명의 본질은 유용한 에너지의 소모와 엔트로피의 증가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 목적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번식하며, 엔트로피의 증가를 위해 존재하는 자연의 일부이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보다 다른 점은 인간은 과거에 저장된 에너지까지 사용하며 엔트로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인위적으로 과거의 에너지를 투입하며 평형상태를 깰 수 있게 된 인간은 마치 무더위 속 플랑크톤과 같이 급격하게 번식하며 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은 생명체의 본질적 목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자부한다고 한들 우리는 그저 생명체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 오히려 스스로 파멸할 방법을 획득한 어리석은 종족 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인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자신의 파멸을 방지하고,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의 에너지를 번식에만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생명체들과 많은 차이가 있고, 획득한 '유용한 에너지'를 진정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깨달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끝없이 창조하는 데에서 삶의 목적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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