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현『새파란 돌봄(2022)』
오랜 기간 ‘돌봄(care)’이라는 단어를 따라왔다. 돌봄이야말로 인간, 나아가 모든 생명을 관통하는 유일무이의 지구적 화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미 없이 태어나는 생명은 세상에 없고, 누구나 일정 기간 타인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 점에서 돌봄은 국가도, 세대도, 개인의 경계도 초월하는 인류 보편의 조건이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가.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고 있는가.
어떤 인간도 오롯이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돌봄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깨끗이 청소된 거리, 밤새 환자를 살피는 병동, 차가운 바람 속 최전방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돌봄이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필수적인 자원으로서의 돌봄은 사회적으로 오랫동안 침묵 속에 있었다. 가족 안에서는 여성 혹은 더 약한 구성원에게 전가되어 왔고, 최근에는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임금 희생으로 유지된다. ‘사랑의 노동’이라는 포장 너머에는 분명히 권력의 비대칭과 구조적 불평등이 자리한다.
조기현의 책 《새파란 돌봄》은 그 구조를 정면으로 마주한 기록이다. 저자는 스무 살 무렵, 아버지의 알코올성 치매를 계기로 돌봄의 세계에 들어섰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로 개인의 돌봄 경험을 풀어냈다면, 이번 책에서는 자신과 같은 위치의 ‘영 케어러(Young Carer)’의 목소리를 담았다.
영케어러(Young Carer)는 만성 질환, 장애, 정신질환, 알코올·약물 의존 등을 겪는 가족을 돌보는 18세 미만 아동 혹은 젊은이를 뜻한다. 영국, 일본, 호주에서는 이미 제도적 지원과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단어조차 낯선 개념이다. 가족 안에서 그들의 돌봄은 조용히, 당연하게,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는 1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연령과 성별이 다른 영케어러 일곱 명을 만났다. 뇌출혈, 인지 저하, 조현병, 알코올 의존, 암. 돌봄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가족 구성도 제각각이다. 이들의 돌봄은 신체적 간병에 머물지 않는다. 청소, 요리, 장보기, 병원 동행, 행정 업무, 어린 동생 돌보기까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그리고 그 무게는 학업과 진로, 또래 관계와 정서에 깊이 새겨져, 돌봄을 하지 않는 아이들과의 미래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갈라놓는다.
다섯 자식 누구도 치매 할머니를 돌보지 않아 모든 것을 떠안은 막내 손녀의 이야기. 어머니의 암 투병 후 단란했던 가정이 무너지는 와중에 두려움을 안고 학업과 돌봄을 병행하는 청년의 이야기. 조현병을 앓는 어머니 곁에서 진학도, 취업도, 결혼도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했던 자식들의 이야기. 알코올에 의존하는 동생과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공멸을 걱정하는 젊은이의 이야기.
이들의 사례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비가시화되어 온 돌봄의 치열한 역학관계와, 가족돌봄이라는 한마디로 결코 다 담아낼 수 없는 영케어러의 괴로움, 죄책감, 책임감, 연민, 사랑 등 복합적 감정의 면면을 드러낸다.《새파란 돌봄》은 숨 쉬듯 당연하게 이루어지지만,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돌봄과 케어러를 새롭게 성찰하게 한다. 돌봄제도의 허점을 짚으며, 돌봄을 누구의 몫으로, 사회가 어떻게 함께 짊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책은 묻는다.
“청년의 돌봄은 사회적 손실일까, 아니면 돌봄을 폄하해 온 사회의 문제일까?
돌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좋은가,
아니면 돌봄 해도 불행하지 않은 사회가 좋은가.”
이 질문은 도시와 사회의 구조를 되묻는다. 도시가 경쟁과 생산성의 논리에만 맞춰 설계된다면, 돌봄의 시간과 공간은 늘 주변부로 밀린다. 반면, 돌봄을 중심에 두는 도시—즉 ‘케어 친화적 도시’(care-friendly city)—는 관계망, 휴식, 상호의존을 도시 가치로 재배치한다. ‘도시와 돌봄’의 관점에서 이 책은 개인 서사에 머물지 않고, 제도와 공간을 다시 짜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책 후반부에서 인상 깊은 대목은 ‘언어의 전환’이다.
병원이나 행정에서는 돌보는 이를 위해 반드시 상대의 ‘부족함’을 진단해야 한다. 그러나 청년 케어러 모임에서는 다른 언어를 쓴다. “내가 돌보는 사람은 어떤 점이 뛰어난가?”, “그가 세상에 남긴 의미는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관계 속에서 회복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돌봄을 ‘결핍의 서사’가 아닌 ‘역량의 서사’로 바꾸는 순간이다.
결국 《새파란 돌봄》은 ‘돌봄의 재분배’를 넘어 돌봄의 재정의를 요청한다.
특정인의 희생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사회.
진로, 가족, 생계, 모임이 서로 대립하지 않는 구조.
아픈 이를 무능으로만 설명하지 않는 언어의 혁신.
지금 이 도시에서 우리가 상상해야 할 돌봄의 방향은, 바로 그런 ‘새파란 돌봄’ 일 것이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시대일수록, 서로를 인간답게 돌볼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이 절실하다. 케어러가 존중받고 우대받는 사회를 상상해야 한다. '사랑'이나 '희생'의 언어에만 가두지 않는, 돌봄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새파란 돌봄》은 그 전환을 위한 조용하고 단단한 첫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