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코리빙하우스 '맹그로브' 청년들

조성익『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2022)』

by 도시작가

나는 '따로 또 같이'의 경계가 참 어려운 사람이다. 같이 있으면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샘솟다가도, 이내 자기만의 방으로 숨어들고 싶어진다. 그 양가감정이 늘 공존한다.


그러니 혼자 사는 건 어쩌면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그런데 막상 혼자 살기 시작하면, 또 다른 질문이 찾아온다. 이 '혼자'를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저 문 닫고 고립되는 삶이 아니라, 필요할 때 기댈 수 있고 원할 때 물러설 수 있는 삶. 그 간격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


2024년 기준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은 36.1%다. 세 집 중 한 집이 혼자 사는 집이다. 20·30대 청년이 그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비혼 증가와 일자리 불안 속에서 이 흐름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어쩔 수 없는 선택만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개인의 자율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지금 세대에게, 혼자 사는 것은 일정 부분 능동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조성익의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오랜 기간 사회의 최소 단위는 가족이었고, 그 가족을 바깥으로부터 격리해 주는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정상적인 집'의 표준처럼 여겨져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흐뭇한 가족 드라마에 시큰둥해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출근 대신 집에서 노트북을 열고, 스테이크를 1인분만 구워 창가에서 사진을 찍고, 갑자기 제주도로 떠나 한 달씩 집을 비우는 사람들.


이들에게 집은 잠자는 곳이 아니라 살고 일하고 노는 기능이 한데 모인 개인 전용 복합 시설에 가깝다. 책의 부제 "어울려 살면서도 간격을 지키는 공간의 발견"은,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을 꿈꾸는 이들에게 집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제안이다.




저자는 건축가다. 1인 거주자를 위한 커뮤니티 주택 '맹그로브 숭인'을 설계해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건축 설계를 통해 떠오른 생각들을 도시와 주거의 문제로 확장해 온 그는, 코리빙하우스 맹그로브 입주자들의 삶을 관찰하며 기록했다.


책은 그 관찰의 기록이다. 건축적 디테일 하나하나가 사람의 감정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적했다. 공간이 개인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그 개인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할 때 어떤 배경이 되는지. 그는 공간을 짓는 일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붙잡았다.


"주거 문제를 단순히 집값을 잡고 공급을 늘리는 문제라고 믿는 사람들 앞에, 개인의 자아가 성장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는 집을 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집이 목적이 아니라 삶이 목적인 집을 짓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맹그로브는 그 질문의 건축적 대답이다. 서울 숭인동에 위치한 이 코리빙하우스는 개인 방과 공용 공간(거실, 주방, 세탁실 등)을 함께 쓰는 점에서 셰어하우스와 비슷하지만, 입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서비스와 커뮤니티 활동에 훨씬 더 무게를 둔다. 카페, 라운지, 운동공간, 루프탑이 갖춰진 공유 시설과 함께, 네트워킹과 커뮤니티 형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읽는 내내 밑줄을 긋게 만든 대목들이 있었다.


커뮤니티 공간뿐 아니라, 그것을 자연스럽게 피해 각자의 방으로 향할 수 있는 우회로를 설계했다는 이야기. 공유를 강제하지 않고, 물러설 수 있는 선택지를 함께 설계해야 오히려 공유가 일어난다는 역설. 분명한 경계선이 공유를 만든다는 교훈을 남긴 냉장고 실험. 커뮤니티 공간임을 티 내지 않고 의도를 숨겨 설계할수록 참여율이 높아지는 사람들의 심리.


이것들이 단지 건축 이야기로 읽히지 않았다. 관계의 이야기였다. 너무 가까우면 숨고 싶어지고, 너무 멀면 외로워지는. 그 간격을 물리적 공간으로 번역해 낸 이야기이다.


2장으로 넘어가면 시선이 공용 공간에서 개인의 방 안으로 좁혀진다. 좁은 공간에서도 자신만의 취향을 충분히 펼칠 수 있게 하는 인테리어의 힘, 꾸밈욕을 채우면서도 가진 물건을 하나씩 의심해 보는 연습, 공간을 넓고 깊게 느끼게 하는 조명의 감각까지.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인 미타임과 함께하는 위타임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일상의 시도들.


근대 건축의 문을 연 르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혼자 사는 기술'도 인상 깊었다. 수도원은 고독과 공동체가 함께 설계된 공간이다. 수사들은 각자의 방에서 깊이 침잠하고, 식당과 예배당에서 함께 모인다. 맹그로브가 현대 도시의 수도원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 대신 취향으로, 서원 대신 계약으로 맺어진, 도시 안의 작은 공동체.


200쪽 남짓한 분량 안에 이 모든 것이 빼곡하다. 예쁜 집 짓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공간의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이 《도시와 돌봄을 읽다》 연재에서 나란히 놓이는 이유가 있다.


맹그로브의 실험은 청년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2040년이면 노인 1인 가구 비율이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혼자 늙어가는 사람들에게도, 따로 또 같이의 공간은 절실하다. 고립을 완화하고 일상을 함께 버텨낼 이웃을 만들어 주는 주거 모델. 세대 혼합형 코리빙, 돌봄과 결합된 커뮤니티 주택, 지원주택 같은 실험들이 맹그로브의 언어와 만나는 지점이 바로 거기다.


공간이 관계를 만들고, 관계가 돌봄을 가능하게 한다. 그 연결이 이 연재가 계속 붙잡고 있는 질문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솔직하게 말한다. 맹그로브 같은 집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한 시기에 잠시 머무는 징검다리 같은 집이라고.


그 솔직함이 오히려 위로가 됐다. 완벽한 공동체, 완벽한 관계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처럼 들렸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 잠시 기댈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혼자 사는 삶은 훨씬 덜 차가워진다.


집과 도시를 둘러싼 이야기가 자산과 집값의 그래프에만 갇혀 있을 때, 집은 쉼터가 아니라 사람을 시험하는 문제처럼 느껴진다. 돈과 소유의 언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계와 돌봄, 취향과 성장의 언어가 더 많이 필요하다.


맹그로브 같은 실험이 곳곳에서 늘어난다는 것은, 그 언어를 실제 공간 속에서 시험해 볼 기회가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뜻한 공간, 다양한 삶의 방식이 응원받고 지지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 역시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그런 사회를 함께 상상해 보자고 요청하고 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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