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원·추혜인『나이 들고 싶은 동네(2025)』
나는 아플 때 가장 먼저 누구에게 연락하는가. 부모님께는 걱정을 끼치기 싫고, 친구에게는 민폐가 되는 것 같고. 어지간한 몸살쯤이야 혼자 누워서 버티는 게 편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왔다. 자발적 아싸의 자존심이랄까, 그냥 혼자 버텨온 관성이랄까.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관성의 이면에는 꽤 큰 불안이 있다. 아주 많이 아파지면 어떡하지. 나이가 들어서 거동이 어려워지면. 그때도 이 '혼자'가 여전히 좋은 선택일 수 있을까.
평생 '같이'를 외치며 사회생활로 강제 인도를 해 준 여동생들이 결혼을 선언한 순간, 그 불안이 처음으로 살갗에 닿았다.
혼자인 건 좋지만 혼자 죽을 가능성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껏 안온한 '혼자'를 누릴 수 있었던 건 사실, 부모님과 동생들에 둘러싸인 울타리 안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비로소 직시한 순간이었다. 내 삶의 경로가 소위 정상가족의 범주 바깥에 놓일 가능성이 가까워진 것. 공동체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유여원·추혜인의 《나이 들고 싶은 동네》는, 그런 질문을 안고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하나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은 서울 은평구에 기반을 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의 13년 일대기다. 여성주의 활동가이자 전무이사인 유여원과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살림의원 원장인 추혜인이 함께 썼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이렇게 나이 들어도 괜찮을까'를 물으며 공동체를 일구기 시작한 이야기부터, 10여 년이 지나 조합원 5천 명을 넘긴 지금까지의 궤적이 담겨 있다.
살림은 단순한 의원이 아니다. 살림의원, 치과, 한의원, 재택의료센터, 요양·돌봄센터, 어린이집, 주민 배움터와 각종 소모임이 한 동네 안에 촘촘히 엮여 있다. 의료와 돌봄과 일상이 분절되지 않고 이어지도록 설계된 동네 단위의 돌봄 생태계다. 2012년 약 300명의 조합원이 1인당 5만 원씩 출자해 시작했다는 사실이, 이 조직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가도 자본도 아닌, 이웃이 서로에게 기댄 자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책에서 가장 오래 머문 파트는 2장 〈돌보는 힘을 키우는 마을〉이었다.
살림에는 '돌봄장(狀)'이라는 것이 있다. 유언장이 내가 죽고 난 뒤를 정리하는 문서라면, 돌봄장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돌봄 받고 싶은지를 적어두는 문서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돌봄을 부탁하고 싶은지. 나는 또 어디까지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는지.
이 단순해 보이는 도구가 꽤 오래 마음에 걸렸다.
아프다는 것,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가. 나는 그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민망한 사람이다. 의존을 부담으로 여기고, 약해지는 것을 숨기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살림은 바로 그 어색함을 공동체 안에서 먼저 연습시킨다. 돌봄은 요청하는 법을 배워야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 돌봄의 관계망은 위기의 순간에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
책은 이렇게 쓴다.
"지금 당장 절실하지 않은 사람은 늘 바쁘다는 이유로 돌봄에 관해 생각하길 미루고, 이미 돌봄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은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돌봄에 쏟느라 돌봄에 대해 이야기할 여유조차 갖기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조금은 간지럽고 민망하더라도 돌봄 이야기를 심상하게 꺼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살림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어쩌면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관계를 미리 만들어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살림의 또 다른 핵심은 왕진이다.
환자가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환자의 집으로 간다. 재택의료의 개념이 아직 낯선 한국 의료 환경에서, 살림은 일찌감치 '병이 아닌 사람을 돌보는 병원'의 모델을 실천해왔다. 몸이 불편한 노인, 거동이 어려운 환자, 병원 문턱이 높은 사람들이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의료와 돌봄의 경계에서 질문하고, 그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이 실천이 지금의 정책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정부는 2019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 시범사업을 추진했고, 2024년에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 통합지원법)》을 제정했다. 병원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생활공간 중심의 돌봄 체계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살림이 13년간 은평구 한 동네에서 해 온 실험이, 이제 국가 정책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는 셈이다.
2025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의 약 25%에 달한다. 1인 가구 비율은 33%를 넘어섰고, 홀로 사는 노인 1인 가구는 2045년이면 전체 노인가구의 절반에 이를 전망이다.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무겁지만, 더 무겁게 다가오는 건 그 숫자가 추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도, 어쩌면 그 절반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혼자 살고 싶다. 그런데 아플 땐 누가 와주지.
이 질문에 살림은 이렇게 답하는 것 같다.
가족이 아니어도 곁이 될 수 있다.
혼자여도 돌봄의 순환 안에 있을 수 있다.
단, 그 순환은 위기의 순간에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조금씩, 이웃과 이야기하고, 돌봄장을 써보고, 서로의 취약함을 미리 연습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나는 여전히 자기만의 방으로 쉽게 숨어드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방의 문을 아주 조금 열어두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누군가가 그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돌봄장을 건네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우리, 각자의 방식으로 같이 늙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