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끝내 보지 못한 이유

by 도시작가

돌아보면
MBTI N(intuition) 이 매우매우 발달한 나는 순간순간 '직관'으로 일생을 추동해 왔다.
첫 시작은 늘 그렇다.
멍 때리다 머릿속에 번뜩.
이유는 딱히 모르겠는데 한번 꽂히면 헤어 나오지 못함.

인생 통틀어 그런 테마가 몇 개 있는데,
대부분은 가치나 사상, 담론적 차원의 추상적인 것이었고(장애, 도시와 돌봄, 커먼즈, 명상과 수행)

그나마 실체가 있는 게 '아일랜드'라는 국가다.
맞다. 영국 위의 작은 섬나라.

고등학교 때 영화관에서 우연히 본
존 카니 감독의 음악영화 Once가 시발점이었다.
영국 장애학 석사 유학도, 찐으로는 아일랜드 에 가고 싶었으나.. 영국조차 한참 비주류인 학계에서 현실적인 커리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한풀 꺾은 차선책이었다.

영화 속 잿빛인 듯하면서도 쨍한 햇빛이 비치는 더블린의 분위기에 한순간 매료되었다. 외롭고 황량해 보이지만 음악을 통해 피어오른 우정과, 끝내 마침표 찍지 못한 남녀의 사랑이 나를 관통했다.
닮아있다고 생각한 건지, 추구하는 분위기인 건지 모르겠지만 쉬이 안정감을 찾지 못하는 내게,
"아- 여기다" 하는 편안함을 주었다.

작가, 연예인, 소셜테이너 등 외부 인사에 구미가 잘 당기지 않는 내가 이 사람이다 싶어 까보면 어김없이 아일랜드 출신이다. 확실히 취향인 건 맞는 것 같다.



싱어송라이터 호지어, 영화배우 킬리언 머피, 소설가 클레어 키건.
연약한 듯하면서도 강하게,
조용한 것 같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예술가들.



한창 호지어 노래에 빠져 살던 시절,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영화화 소식에 또 한 번 쿵 했다. 클레어 키건 원작에, 킬리언 머피 제작/주연이라니.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이 이 소설과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침묵을 깨는 용기"
"킬리언 머피 연기의 여백이 주는 감동"
분명 내가 지향하며 평생을 쫓은 가치와 방향임에도.

집중해서 활자를 읽고 영상을 시청하기에 앞서
어떤 '피로함'이 자꾸 올라왔다.

이 피로함의 정체를 규명해야 한다는 일종의 소명이 부지불식간 한편에 쭉 남아 있었다. 분명 득달같이 달려가 영화와 소설을 끝 간 데없이 파헤쳐야 하는데..?

도시 서평과 마음챙김 에세이 연재를 시작하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홍보도 하면서 그 피로함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이제야 원인을 알 것 같다.


"내 글이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피로함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노이로제에 가까운 자기 검열이 일상인 내게 이 검열 또한 어느 한구석 차지하며 계속 달라붙어 있겠지만. "아, 글을 쓰는 지금 내 마음이 그렇구나" 알아차리고, 이만큼 드러내 놓을 수 있게 된 것에 또 감사한 마음이다.


유쾌하고 다정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그런 글도 쓸 수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