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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Jan 17. 2018

공원에서

우에노 공원 Ueno Park

2017년 5월 2일 화요일,

다이토구 우에노



#1 우에노의 아침


Ueno, Tokyo, May 2017

여행 이틀째. 느지막이 일어났다. 이 여행의 평균 기상 시간은 아홉 시 반. 열 시 반이 넘어서야 하루를 시작했다. 이 모든 건, 여행 일정이 충분히 길어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어디 갈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숙소에서 늦게 나왔다. 국립 서양 미술관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예정대로 가기로 했다.

Ameyoko Market, Tokyo, May 2017

국립 서양 미술관은 우에노 공원 안에 있기 때문에 이틀 연속 우에노 공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공원에 가기 위해 아메요코 시장을 지났다. 아메요코 시장은 우리나라로 치면, 남대문 시장과 가장 비슷한 것 같다.

Ameyoko Market, Tokyo, May 2017

문득 남대문 시장이 그리워졌다. 태평로에 근무할 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주 남대문 시장에 갔었는데. 확실히 지금의 사무실이 있는 강남보단 사람 냄새가 더 많이 나는 곳이었다.

Ueno Park, Tokyo, May 2017

아침에서 낮으로 넘어갈 무렵, 우에노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에 사람이 많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있었다.

Ueno Park, Tokyo, May 2017

공원 곳곳에서 음악가들이 버스킹을 했는데 혼자서 하모니카, 바이올린, 키보드, 드럼을 연주하는 만능 1인 밴드도 있었다.



#2 우에노의 점심


하루를 늦게 시작했더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아직 아침 식사도 못했는데.


Ueno Park, Tokyo, May 2017

공원 안에도 (카페를 포함하여) 식당이 꽤 있다. 국립 서양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기 전에, 배가 고파서 구글에서 인근 식당들의 평점을 모두 조회해봤다. 그랬더니 '이즈에이 우메카와데이'라는 민물장어집 평점이 가장 우수했다. 190년 역사가 빛나며 천황에게 진상했다는 식당이라고 한다. 꽤 비싸겠다 추측했다.

장어요리집 앞에서

유명한 식당이라 무척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11시쯤 도착했더니 대기줄은 없었다. 가게 앞의 메뉴판과 전시된 모형을 기다리고 있으니 배낭을 멘 할머니가 말을 건네셨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이 가게를 알았고, 비싸지만 정말 맛있는 곳이라며 강력 추천하셨다. 정작 할머니는 식당에서 드시지 않고, 자리를 뜨셨다.

식당 2층의 파크뷰

신을 벗고 2층으로 올라갔다. 열두 시가 되기 전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창가 자리가 명당인데 안타깝게도 만석이었다. 우에노 공원의 호수가 보이는 파크뷰 자리였다.

시노바즈 연못

창가에 보이는 호수는 전날 긴자까지 걷다가 우연히 지나쳤던 시노 바즈 연못​인 것 같았다.

장어 찬합 정식은 4,860엔으로 매우 비쌌다. 웬만한 코스요리 수준이었다. 그래도 이건 평상시가 아니라 여행이며, 아침을 안 먹었으니 두 끼 비용을  쓰자고 합리화하며 호사스러운 요리를 시켰다. 금전적 출혈이 있었기 때문에 맥주 같은 건 시키지 않았다. 무료로 내어주는 따뜻한 우롱차로도 충분했다.

장어가 나오기 전, 선어회와 튀김 그리고 계란찜이 나왔다. 계란찜에 들어간 통통한 새우가 감동적이었다. 심지어 새우 안에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게 한 마리도 함께 들어 있었다. 암 새우인지 투명한 껍질에 주홍빛 알이 비쳤다.

그런데 벌써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아직 메인 요리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바로 이것이 비싸고 양 많은 식사의 폐해이다.

드디어 본선이 시작됐다. 장어 찬합과 일본 김치, 장국이 나왔다. 장국은 감칠맛이 남달랐고, 일본 김치는 장어 소스의 달달함을 누르기에 살짝 부족했다. 김치가 그리워졌다.

장어는 정말 살이 야들야들하고 맛있었지만, 생각보다 장어의 양은 적었다. 밥은 많았다. 그래도 밥 자체에도 장어 소스 맛이 배어있어, 밥만 먹어도 행복할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배가 불러 반 공기 정도 남았다.

혹시 이곳을 방문한다면, 그냥 장어 찬합이나 장어덮밥 단품을 주문하시길. 코스로 시키면 양이 많아 정작 장어덮밥은 남기게 된다.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

그러나 한 번쯤 호사를 부려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특히 위장이 큰 사람에게 추천한다) 미식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면, 맛 자체는 훌륭해서 비싼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 후식인 아이스크림까지도 깔끔하게 맛있었다.


#3 국립 서양 미술관


AGFA Vista 200, Natura Classica

우에노 공원 동북쪽에 위치한 국립 서양 미술관에 도착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건물인데, 매우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해서 놀랐다.

AGFA Vista 200, Natura Classica

미술관 정원에는 조각 공원이 있다. 난 원래 조각이나 소조엔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미술관에서는 조각 공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무명 조각가의 작품이 아닌, 로댕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AGFA Vista 200, Natura Classica

이 정원에서 내가 가장 애정 했던 작품, <칼레의 시민>이다. 옆에 가지런히 병기된 한글 작품명에는 <카레의 시민>이라고 되어 있다. 당연히 네이버에 '카레의 시민'이라고 검색하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카레가 먹고 싶어질뿐이다.

인물들의 표정이 꽤 엄숙하고 진지하다. 너 다섯 명의 인물 중,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고뇌하는 남자를 중심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에서는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 그의 얼굴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인 마이클 패스벤더를 닮아 인상적이었다.

지옥의 문은 생각보다 높고 거대했다.

AGFA Vista 200, Natura Classica
AGFA Vista 200, Natura Classica

따사로웠으나 아직 덥진 않았던 5월 2일. 이 작은 정원에서의 시간이 꽤 마음에 들었다. 소장품과 건축물도 훌륭하지만, 이 정원의 존재도 국립 서양 미술관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유일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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