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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Jan 17. 2018

저녁에는 긴자에 가자

커피 바케이 긴자 Coffee Bar K Ginza

2017년 5월 1일 월요일,

다이토구 우에노


Starbucks Ueno Park, Tokyo, May 2017

우에노 공원을 걷다가, 파크 사이드 카페를 바라보며 스타벅스의 유자 아이스티를 마셨다. 그러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시원한 칵테일 생각이 났다. 도쿄에만 오면 저녁이 기다려졌다.

Coffee Bar K, Tokyo, September 2016

1년 전 가츠 샌드의 맛을 잊지 못해 커피 바케이 긴자로 가야겠다 생각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가야지’ 생각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웬만하면 전화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운동할 겸 긴자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는데 혹시 영업을 안 한다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애매한 일본어로 버벅된 후에야 비로소 오후 5시라는 비교적 이른 시간부터 오픈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다이토구의 우에노 공원부터 주오구의 긴자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정해진 길로 걷다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니 연못이 있었다. 시노 바즈라는 연못이었다.

연못이 꽤 커 오리배도 있었다. 하늘은 점차 보랏빛으로 변했다.

공원 둘레에 벤치를 만들어 놓은 건 신의 한 수였다. 다들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우에노부터 긴자까지 걸었다. 걷는 동안 아키하바라, 간다, 도쿄역을 지났다. 온통 고층 빌딩뿐이라 재미는 덜했지만 1년 전의 도쿄 여행과 비교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던 와인바를 발견했는데 안타깝게도 구글맵에 등재되어 있지 않아 따로 기록을 하지 못했다.

간다 강을 지날 때, 하늘에 달이 떴다.

간다 강은 처음이었다. 도쿄엔 스미다강 말고도 여러 강이 있구나.



치요다구 마루노우치


마루노우치를 걸을 때, 1년 전에도​ 흔히 봤던 공사의 현장들을 목격했다.

출발할 때 구글맵으로 검색했을 때는 1시간 7분이라고 했는데 모두 거짓말이었다. 걸으면 남아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잔여 시간은 변함이 없었다. 정말 머나먼 길이었다. 완전히 지쳐버렸다.

긴자로 향하던 중, 교통 카드인 스이카를 만들러 도쿄역에 들렀다. 도쿄 메트로에서는 스이카를 만들 수 없었고, 오직 JR역에서만 스이카를 만들 수 있었다.



주오구 긴자


‘긴자에 도착했는데 오픈 시간 전이면 어떡하지?’ 하는 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80분이나 걸어서 겨우 녹초가 된 상태로 커피 바케이에 도착했다. 도쿄는 정말 넓었다. 북동부에서 중앙으로 치우친 동부는 거리가 꽤 멀었다.


시세이도에서 치약을 사려고 했는데, 젊은 점원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자기네 제품을 끈질기게 권했다. 다이스케는 얼굴을 찌푸리고 가게를 나왔다. 종이봉투를 겨드랑이 사이에 낀 채 긴자의 외곽까지 가서, 거기에서 다이콘가시를 돌아 가지바시로 해서 마루노우치로 향했다. 목적지도 없이 서쪽으로 걸어가면서, 이것도 간단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다가 너무 몸이 지쳐서 인력거 생각이 났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눈에 띄지 않아 다시 전차를 타고 돌아왔다.  - 나츠메 소세키, <그 후> 205p


20세기 초,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의 주인공조차도 긴자에서 마루노우치를 거쳐 집이 있는 다이토 구로 돌아갈 때 전차를 탔었는데, 내가 너무 도쿄 동부지역의 면적을 과소평가했나 보다.

Coffee Bar K, Tokyo, May 2017
Coffee Bar K, Tokyo, May 2017

여름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갈증은 더 심해져 시원한 칵테일 한 잔이 간절해졌다. 물론 뱃가죽도 위장에 달라붙어 배고프다 아우성치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곳에 온 궁극적인 이유였던 가츠 샌드와, 보드카 베이스의 스크루 드라이버를 주문했다.

Screw Driver, Coffee Bar K, Tokyo, May 2017
Coffee Bar K, Tokyo, May 2017

맛은 나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가츠 샌드와 비교하면 확실히 맛있었다. 그러나 배고픈 상태에서 먹었음에도, 1년 전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먹었을 때의 감동보다는 못했다. 혼자 먹기엔 많은 양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국보다 절반 이상 저렴한 히비키 17년

갑자기 바텐더님이 내게 물었다.
“혹시 아까 전화 주신 분인가요?”

어떻게 전화한 사람이 나였는지 알아봤을까? 나의 어눌한 일본어 억양으로 한국사람임을 단번에 알아봤을 수도. 눈치가 정말 빠른 분이었다.

그는 웃으며 아까 전화받은 사람이 본인이라 대답했다.
“정말요? 우와, 반갑습니다.”
“하지메 마시테”라는 말을 정말 오랜만에 입 밖으로 내본 것 같다.

바텐더님에게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고 말했다. 작년에 친구랑 왔는데​ 가츠 샌드를 잊지 못해 또 왔다면서.

애석하게도 예전에 있었던 여자 바텐더님은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소믈리에로 전직했어요."
결국 작년에 이어 또 만난 분들은 이 바텐더님과 헤드 바텐더인 나카무라상이 유일해 보였다.

Moscow Mule, Coffee Bar K, Tokyo, May 2017

"오다이바는 여기서 멀죠?"
"아니요. 별로 안 멀어요. 유리카모메 알죠? 유리카모메 출발지가 신바시 역인데, 신바시 역이 아마 한 정거장 정도밖에 안 걸릴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매우 붐빌 거예요. 보통 일반 전철이 8량이면, 유리카모메는 3량인가 4량 정도밖에 없거든요. 게다가 곧 연휴니까... 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앗, 연휴라고요?"
"네. 모레부터 골든위크인데..."

아뿔싸, 검색해보니 5월 3일은 헌법기념일, 4일은 나무의 날, 5일은 어린이날이었다. 검색을 미리 하지 않고 무작정 여행을 떠난 나의 불찰이었다.

"사실 한국은 오늘이 휴일이거든요. 일본은 오늘 안 쉬어요?"
"네.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닌데요."

일본에는 근로자의 날이 없나 보다. 대신에 휴일 3일을 연달아 붙여놓는 센스가 멋졌다.

커피 바케이 긴자는 공휴일에 쉰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사실 한국의 몰트바들은 공휴일에도 문을 연다. 어떻게 보면, 일본 몰트바들의 근무 조건이 우리나라보다 나은 듯싶었다.

간과할 수 없는 서비스 차지와 커버 차지

계산을 하려고 영수증을 받으니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청구돼 있었다. 알고 보니 커버 차지 1,000엔 외에도 8% 부가세와 10%의 봉사료를 받았다. 결국 메뉴의 가격은 진짜가 아니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바텐더님은 슬픈 얼굴로 사진의 저 문구를 손으로 짚으며,
"그래서 한국분들이 종종 놀라십니다."라고 말했다.

JR Okachimachi, Ueno

돌아갈 때는 긴자역이 아닌 유라쿠초역에서 JR을 타고 오카치마치 역에서 내렸다. 일본의 교통체계는 너무 복잡하다. 사철이 난립하는 곳이다. 그러나 은희는, “넌 5일이나 있으니까 나중엔 현지인처럼 잘 다닐 거야.”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도쿄에 머무른 지 4일쯤엔 관광객 티를 내지 않고 능숙하게 전철을 타고 환승했다.

그렇게 도쿄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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