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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Oct 08. 2017

뉴욕의 옐로캡

공항의 노란 택시


뉴욕에 머무르는 일주일 동안 (우버를 포함해) 택시를 세 번 탔다. 여행 안내서 어디에선가 뉴욕의 택시 기사 중에 백인은 드물고 대개 흑인 혹은 히스패닉이나 아랍인이라 했는데, 그 말이 옳았다. 세 번이 절대 많은 횟수는 아니라 일반화하기엔 성급할 수 있겠으나, 택시를 탄 세 번 모두 흑인이 운전하는 택시였다. 위험에 빠진 적은 전혀 없었으나, 아무래도 조금 무섭긴 했다. 뉴욕의 노란 택시인 옐로캡 운전기사는 덩치가 있고 무표정해 살짝 긴장됐다. 반면, 검은 도요타를 몰던 우버 운전사 두 명은 별점이 매겨져서인지 매우 싱글벙글하여 택시를 타는 동안 전혀 무섭지 않았다.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밝은 노랑빛의 택시를 쉽게 볼 수 있다. 여행책에서도, 블로그에서도, 이런 택시들을 모두 옐로캡으로 불렀다. 시내엔 정말 많은 옐로캡이 거리를 활보했지만, 달리는 옐로캡을 잡아 탄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간혹 그 기사들은 터번을 쓴 중동사람이기도 했다. 요즘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옐로캡보다는 신원 보증이 확실히되는 우버가 마음이 놓였다. 게다가 옐로캡은 도착지를 내가 설명해야했지만, 우버는 미리 앱에 설정해놓으면 돼서 상대적으로 우버가 이용하기 용이했다.

그래도 뉴욕 JFK 공항에서 맨해튼으로 갈 때는 우버보다는 옐로캡이 훨씬 편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11시였고, 모든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올 때는 기껏해야 정오였다. 날이 환했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미지의 세계였던 '뉴욕의 지하철'은 무서웠다. 지하철역의 출발지가 무법 천지라는 퀸스의 자메이카역이라는 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입국 심사 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지하철은 선택지에서 사라졌다.

짐을 찾고 공항 출구로 나오자마자, 우버를 켰다. 출발지는 JFK 터미널 1, 도착지는 내가 묵는 호텔 숙소를 입력했다. 돈을 아끼려고 일반적인 우버X가 아닌, 합승이 가능한 우버풀을 선택했더니 합승지점이 내비게이션에 임의로 표시됐다. 나는 당황했고, 아무리 지도에 표시된 '접선지점'을 찾으려 해도 불가능했다. GPS 상태가 안좋은건지, 당장 내 위치 표시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접선지점을 찾는건 무리였다. 결국 2분 뒤에, 기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맙소사, GPS뿐만 아니라 통화품질도 엉망이었다. 기사가 어디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나는 주변의 표지판을 읽었다. 그 후 정적이 흐르더니, 통화가 끊겼다. 기사가 전화를 끊고, 우버도 취소한 것이다. 다행히 선결제된 우버 요금은 환불됐지만, 미국에서 전화를 수신한덕분에 음성통화 요금 1,093원을 알리는 SMS가 도착했다. 결국 통화요금과 시간만 날렸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지척에 있는 옐로캡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흑인 청년 한 명이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나는 월스트리트라고 얘기했다. 그가 영수증을 끊었다. 내가 신용카드를 제시하니, 그는 웃으며 "그건 택시기사에게 내는 겁니다." 라고 했다.

내 앞에 있던 아시아 승객이 가장 앞줄에 있던 옐로캡을 타고 사라졌다. 그의 영어는 매우 능숙했다. 중형차같이 보이는 노란 택시가 가장 앞줄에 섰다. 앞문이 열리더니, 당장 랩배틀을 할듯한 힙합풍의 티셔츠를 입은 흑인 아저씨가 어디 가냐고 물었다. 나는 영수증을 내며, 호텔 이름을 댔다.



옐로캡을 운전했던 기사 아저씨


차는 출발했다. 미국 택시는 처음이고, 기사 아저씨도 우락부락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열 네 시간의 비행동안 두 시간도 자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피곤했으나, 절대 잠들 수 없었다. 택시는 퀸즈를 지나, 브루클린으로 진입했다. 도로 너머로 그래피티들이 보였다. 잠을 참으려고 눈을 부릅뜨는동안, 나는 또다른 걱정에 휩싸였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월스트리트'였다. 처음 택시를 탈 때 기사 아저씨에게 호텔 이름을 제대로 얘기했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약 두 블럭 너머에 '홀리데이 인 월스트리트'가 있었다. 거의 쌍둥이 같은 이름이었다. '익스프레스'라는 단어 하나를 제외하면. 혹시 기사가 익스프레스가 아닌, 다른 호텔을 가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그냥 홀리데이 인이 아닌,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라고 얘기해야되나 망설였지만, 괜히 그것이 그의 프로의식을 자극할까 염려되어 조용히 있었다. 걱정스럽게 구글맵을 켜고 GPS를 확인할 뿐이었다.

택시는 그 유명한 브루클린 브릿지를 넘어 맨해튼에 진입했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워터 스트리트를 달려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체인의 녹색 깃발 앞에 차를 세웠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무표정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친절히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내주었고 "Have a great day." 라며 인사도 했다. 그가 호텔을 착각할까봐 걱정했던게 미안해졌다. 미안해요, 잠시나마 당신의 전문성을 의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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