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동흥동
제주도에 가면 흑돼지만큼은 꼭 챙겨먹어야 한다고 들었던터라, 제주도 첫 정찬은 흑도야지로 정했다. 다른 사람과 여행을 가면 먹는 것은 동행인의 뜻에 따르는 편이라, 친구가 찜해놓은 식당에 가기로 했다. 흑돼지 오겹살과 목살을 먹을 수 있는 올레삼다정이란 곳이었다. 번화하지 않은 주택가 근처에 있다. 낡은 주공아파트가 여럿 있었다.
시간이 일렀다. 배가 고파서 다섯시도 되기 전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으러 온 첫 손님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큰 실수를 범했다. 사이 좋게 오겹살 1인분, 목살 1인분을 시켰으면 좋았을걸, 음식점 직원의 꼬임에 넘어가 3인세트를 시킨 것이다.
사장님이 오시더니 직접 고기를 굽고 잘라 주신다. 고기를 굽는 동안 돼지 고기 강의를 하신다. 예를 들면 사실 흑돼지와 백돼지는 맛의 차이가 거의 없다, 마케팅 같은 거다. 혹은 고기의 질보다는 고기 굽는 기술이 맛을 결정한다던가.
3인분이라 양이 너무 많아 배가 터지는 줄 알았다. 사장님이 모든 고기를 다 구워주시고, 먹기 좋게 앞에 가져다주셔서 마치 손 안 대고 코 푸는 듯한 편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쉴 틈 없는 사장님의 강의에 맞장구를 쳐야 하고, 함께 고기를 먹으러 온 동행과는 전혀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오직 먹는 행위만이 허용될 뿐이다. 게다가 3인 세트를 시킨 것은 돈 낭비, 음식 낭비, 살 찌는 지름길이었다.
우리는 초짜 티를 팍팍 내며 계산을 마치고 부른 배를 이끌고 길 위로 나섰다. 도저히 이렇게 숙소로 돌아가면 죄책감에 견딜 수 없을 듯 싶었다. 그리하여 올레시장까지 걸어갔다.
제주은행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숙소는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상당한 운동 끝에 여독을 풀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