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서흥동
첫날 굵직한 일정은 쇠소깍뿐이었으나,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도착하니 매우 지친 상태였다. 차가 없어서 걷기와 시외버스 타기를 반복하다 보니 단 한 곳을 가는 것도 체력이 꽤 소모되는 탓이었다.
저녁 일정을 취소할 수 있는 위기에 처했으나, 한 시간 정도 빈둥대며 체력을 회복하여 서귀포 야경을 만끽할 수 있는 천지연 폭포와 새섬에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천지연 폭포에 가려고 했으나, 그곳에 간다는 시내버스 1번은 타기가 쉽지 않아 택시를 타고 갔다.
이미 어두웠고, 날벌레가 매우 많았다. 인파도 벌레만큼이나 많았다.
불이 커진 폭포는 납량특집, 혹은 귀신의 머리카락을 연상시켰다.
사실 볼거리는 폭포 하나뿐이지만,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세차게 가슴을 때리는 듯한 시원한 폭포 소리 하나로도 이곳을 방문할 이유는 충분했다. 마음을 짓누르는 온갖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폭포수의 모습은 낮에 오면 그 매력이 반감될것 같다.
가장 끝 지점에 도착하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서로 카메라를 교환하며 말을 트는 곳이다.
우리도 폭포에서 사진을 여러 장 찍고, 가까운 곳에 있다는 새연교로 향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주 가깝지는 않았다.
하늘다리 같은 새연교를 건너면 새섬이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보다 새연교의 경사가 심했다. 작은 언덕을 오르는 것에 비견할만하다.
이곳에선 새연교나 새섬보다도 어둠을 삼킨 듯한 먹먹하고 공포스러운 바다가 인상 깊었다. 모든 빛을 흡수하여 남은 것이라곤 어둠밖에 없는 블랙홀이었다.
새섬은 트래킹도 가능하지만, 요즘 세상이 흉흉하여 진정 용기 있는 (아니 요즘 세상엔 용기가 아니라 무모한 것이다) 커플만이 새섬 일주에 도전했다. 우리는 새섬 입구에서 15분 정도 머물고 바다를 구경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가는게 만만치 않았다. 절대 카카오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천지연 폭포 쪽에서도 택시가 잡히지 않아, 이대로 여기 갇히는 것인가 각오할 때쯤 소문으로만 듣던 시내버스 1번이 구세주와 같이 등장했다.
제주은행에서 시외버스로 한 번 더 갈아타고, 또 다시 언덕 아래 정류장에서 하차해 등산을 감행하며 숙소로 올라갔다. 역시 제주도는 차 없이는 쉽지 않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