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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Nov 15. 2018

기내식이 뭐길래

저가항공의 딜레마

이번 오사카 여행은 내가 모든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효도여행이었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항공권에서 비용을 절약하게 되었다. 사실 혼자 간다 하더라도 요즘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보다 10만원 이상 저렴한 저가항공을 타게 된다.

비즈니스석 무료 업그레이드를 받았던 지난 여행

엄마는 아직 저가항공에 익숙하지 않으셨다. 게다가 첫 해외여행에서 비즈니스석으로 무료 업그레이드를 받으셨다. 지난 제주 여행에서 물만 나오는 비행을 경험하시고 나에게 물으셨다.

“이번에도 제주항공이니?”
“아니요. 이번에는 진에어인데 여긴 저가항공인데도 간단한 기내식이 나와요. 그래서 저가항공 중에서는 제일 나아요.”

엄마는 내 대답에 안도하셨다.

인천 국제공항 1터미널, 2018년 11월

운명의 날이 밝았다. 저가항공의 숙명인 셔틀 트레인을 탔다. 제주항공을 타던 시절 숱하게 겪던 이륙 지연도 없었다. 나는 진에어가 역시 좋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는 제주도에 갈 때보다 의자간 간격이 넓다고 만족해하셨다. 이제 기내식만 나오면 됐다.

Jin Air, December 2016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간이 흘러 안전벨트 표시등도 꺼졌고, 입국카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돈주고 좌석을 지정한 사람들에게 노브랜드 웨이퍼롤 과자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만 있으면 곧 기내식이 나올거라고 했다.

2016년에 홍콩행 진에어에서 먹었던 기내식

2년 전 홍콩에 갈 때 진에어를 탔다. 거창하진 않지만 맛있는 기내식이었다. 주먹밥과 떡갈비, 바질이 들어간 샐러드를 먹었다. 특히 샐러드의 독특한 풍미가 매력적이라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맛있다” “괜찮다”을 연발했다. 돌아올 때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양산형 머핀과 바나나를 먹었다. 하늘에서는 양산품도 맛있었다. 저가항공임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서비스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내식은 나오지 않았다. 승무원 두 명이 카트를 끌고 오길래 기내식인가 했는데 면세품이었다. 실망한 나는 기내식은 언제 나오냐고 물었다. 그러자 승무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저희 비행기에는 기내식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진에어 기내식

“저 예전에 홍콩 갈 때는 기내식을 먹었었는데요.”
“지금은 비행시간 2시간 이내 구간에서는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실망하신 눈치였다. 기내식을 먹을줄 알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옆자리에 앉은 친절하신 지정석 예약자분께서 노브랜드 웨이퍼롤을 절반이나 주셔서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간사이 국제공항 1터미널, 2018년 11월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빈 속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하늘에서 먹는 것은 뭔들 맛있다

겨울 행사상품이라는 호로요이 소다맛을 시켜서 엄마와 나누어 먹으며, 진에어에서 파는 가장 양이 많은 스낵인 자색고구마칩을 시켰다. ‘받은만큼 베풀자’는 신념으로 과자를 통 크게 덜어서 가장 끝 자리의 일본인 승객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기내식이 뭐길래, 먹고 안먹고가 비행의 만족감을 좌지우지하는지. 하늘에서 파는 것은 땅에서 파는 것보다 비싸게 쳐서 받는다. 싸게 비행기표 샀다고 좋아해도 결국 만 원 정도는 항상 더 지출하기 된다. 그렇게 호갱님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데도 비행기에서 매번 새로운 먹거리에 도전하는 것은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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