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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Mar 26. 2019

우메다

두 번째 오사카

가깝다는 이유로 일본에 자주 갔다. 2010년 히로시마 여행을 시작으로 일본을 10번 이상 왕복하면서도 제2의 도시라는 오사카는 가보지 않았다.

간사이 국제공항 제2터미널, 2019년 3월

오히려 오사카보다 교토를 먼저 갔다. 오사카는 교토 가는 길에 간사이 공항에서 발만 디뎠을 뿐이었다. 대개 오사카 여행 가이드북에는 교토, 고베 등 다른 간사이의 도시들이 함께 소개되는데 오사카는 그들보다 특출 난 매력이 없어 보였다. 나는 놀이기구를 잘 타지 못하기 때문에,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도 매력 있는 선택지가 되지 못했다.

간사이 국제공항 제2터미널, 2019년 3월

오사카는 그저 먹으러 가는 것 외엔 할만한 게 없어 보여서 오랫동안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감바 오사카에서 활동하는 축구선수의 팬이 되는 바람에, 경기를 보러 작년에 처음으로 오사카에 가게 되었다.

오사카시 주오구 센니치마에, 2018년 11월

오사카에 대해 따로 조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도톤보리, 난바, 신사이바시밖에 알지 못했다. 이곳들은 모두 오사카시 주오구로, 대표적인 상업 지구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숙소를 잡기에 딱히 좋은 위치는 아니었다. 난바 근처의 니혼바시 역에 묵었는데, 공항에서 이곳까지 가려면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도톤보리 입구, 2018년 11월

높은 건물 하나 없었고 지하철 역은 낡았다. 중심가인 난바 근처도 높은 건물 하나 없는 지역 중소도시의 중심가로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첫 식사였던 초밥도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맛이 없고 비쌌기 때문에 좋은 첫인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축구경기는 즐거웠기 때문에 나름 성공적인 기억을 남기고 왔다.




나는 성실한 축구팬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즌 개막 후 또다시 오사카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오사카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유니폼은 오사카의 축구 샵이나 홈구장에서 살 수 있기 때문에 간 것이었다. 유니폼을 사러 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원정경기보다 홈구장에서 축구를 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고 덜 서럽긴 하다.


마침 친구 은희가 이번 여행에 동행하겠다고 했다. 내가 워낙 축구를 좋아해서 옆에서 얘기를 듣다 보니 한번 경기를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겸사겸사 오사카의 괜찮은 바들도 방문하기로 했다.

오사카 기타구 소네자키신치

추천받은 바들이 우메다 근처에 밀집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우메다에 숙소를 잡았다. 우메다는 도톤보리, 난바가 있는 주오구보다 북쪽에 있다. 행정구 이름도 북쪽이란 의미의 기타구(北区)이다.

우메다의 풍경

결론적으로, 숙소를 난바가 아닌 우메다에 잡은 건 대성공이었다. 우메다는 난바나 도톤보리와 달리 깔끔하고 세련되며 도회적이었다.

오사카역과 우메다의 고급매장

오사카역을 필두로 높고 큰 빌딩이 많았고, 한큐 백화점을 비롯한 고급 매장들은 도쿄의 긴자를 연상시켰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하는 길, 린쿠타운
하비스 플라자의 리무진 버스정류장과 시간표

무엇보다 간사이 공항과의 접근성도 좋았다. 무거운 짐을 들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서서 가야 했는데, 이번에는 공항에서 우메다의 하비스 플라자까지 리무진 버스로 편안히 왔다.

공항에서 우메다까지 향하는 리무진 버스

하차지에 따라 짐에 번호표를 붙이고, 이에 대응하는 교환권을 주기 때문에 짐 분실 걱정 없이 편히 자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도톤보리 입구 / 오사카 주오구, 2018년 11월

쾌적한 환경 외에도 맛있는 곳이 지천에 널린 것이 큰 장점이었다. 겉모습에서 풍기는 이미지만 봤을 때는 도톤보리에 맛집이 더 많을 것 같았다. 물론 도톤보리에 맛집은 많지만 그만큼 관광객용 바가지 식당 또한 많았다. 무수히 많은 도톤보리의 식당과 선술집 중에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알짜배기 맛집을 골라내기엔 나의 내공은 턱없이 부족했다.

센다이의 규탄(우설 구이)을 먹을 수 있는 리큐 / 우메다, 2019년 3월

반면, 우메다에는 큰 역이 있어서인지 출장이 잦은 비즈니스맨을 위한 합리적인 가격의 식당이 많았다. 맛도 일정 수준 이상 보장되었으며, 시설도 깔끔했다.

타쿠야의 항정살 및 안심 커틀렛 / 오사카 기타구, 2019년 3월

가장 어마어마했던 식사는 히가시 우메다역 동쪽 소네자키 골목에 있는 돈가스를 파는 주점, 타쿠야였다.

타쿠야의 메뉴판

영어가 통하지 않고 (심지어 영어 메뉴도 없다), 음식에 가격표도 달려있지 않으며, 가게가 협소해 예약을 하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검은 빵가루에서 오는 시각적 강렬함과 혀에 닿는 바삭한 촉감, 찹쌀떡 같이 말랑하고 부드러운 육질은 비싼 값을 주더라도 경험해볼 만한 것이었다.

간사이 최고의 바, Bar Beso

운 좋게도 숙소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서울에서 추천받은 바가 있었다. ‘바 베소’라는 곳이었다.

긴자의 하이파이브

가게의 구조 및 영어가 잘 통해 외국인 손님이 상당하다는 것은 긴자의 ‘바 하이파이브’와 닮았고, 과일 칵테일을 전문으로 한다는 건 긴자의 오차드, 믹솔로지 살롱을 연상시켰다.

긴자의 오차드와 믹솔로지 살롱

그러나 그곳엔 없지만 이곳에만 있는 건 친절이었다. 혼자 온 손님이 소외되지는 않을까 여러모로 신경 써주셨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며칠 전에 한국에서 게스트 바텐딩을 했던 얘기며, 한국인 친구들에 대한 얘기도 해주셨다. 간혹 오사카에 혐한 기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곳에서 그런 의혹이 모두 사라졌다.

가장 맛있었던 망고 칵테일

바가 그리 넓지 않아서 직원은 마스터와 매니저님으로 추정되는 분, 2명이었다. 보통 마스터와 직원의 칵테일 맛이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이곳은 매니저님의 칵테일도 정말 맛있었다. 누가 만든 칵테일을 마시더라도 맛의 편차 없이 놀랄 만큼 신선하고 맛있는 칵테일을 마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일본의 클래식 바들은 다양하고 저렴한 위스키 라인업이 있는 반면, 칵테일들은 술맛이 강해 한국인 입맛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 바에 가면 위스키만 마신 적도 많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게 편견이었단 걸 깨달았다.


어쩌면 묵직한 맛보다 상큼함을 좋아하는 나에겐, 도쿄보다 간사이 스타일 칵테일이 잘 맞는지도 모르겠다.


우메다가 아니었다면, 아직까지도 오사카는 나에게 그저 그런 곳, 교토보다 매력 없는 도시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좋은 경험을 간직하게 만든 타쿠야와 바 베소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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