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계의 블루오션
나는 비위가 좋은 편은 아니다. 순대는 잘 먹지만, 순대를 사면 서비스로 넣어주시는 간이며 염통 등을 일체 먹지 못하고, 햄이나 소시지 등의 가공육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살라미, 하몽 등의 생햄도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러던 내가 어떻게 소의 혀인 우설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처음 우설을 알게 된 건, 센다이 여행기에서 규탄(일본식 우설 요리)에 대한 글을 읽은 후였다. 그전까지는 소의 혀로 만든 음식이 있다는 건 상상조차 못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처음으로 우설을 먹게 되었다. 어머니와 오사카에 여행을 갔을 때 저녁으로 꼬치구이를 먹으러 갔는데, 메뉴판에 ‘규탄’이 있는 걸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센다이 여행기에서 봤던 말로만 듣던 소의 혀였다. 진짜로 혀처럼 생겼으면 징그러워서 도전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겠지만 양파로 범벅되어있고 짭짤한 양념이 묻어 있으니 괜찮을 듯싶었다. 정말로, 양념 덕분에 규탄이 끼워진 꼬치 하나를 순조롭게 비웠다. 비위가 상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질겼다.
그리고 이듬해에 회식 자리에서 우연히 다시 우설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교대역 근처 서관 면옥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는데, 평양냉면 식당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복쟁반이란 요리가 있었다. 미식가셨던 전무님은 테이블마다 어복쟁반을 시켜주셨다. 나는 그날 어복쟁반을 처음 먹었다. 궁중에서 임금이 먹을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신기한 식재료들이 많았지만, 수육 외에 부속 내장들이 가득해 (심지어 치즈맛이 나는 내장도 있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익힌 야채만 집어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누가 봐도 무엇인가의 혀처럼 생긴 물체가 눈에 띄었다. 이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으려니 옆의 누군가가 우설이라고 했다. 규탄 꼬치를 먹었을 때보다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혀처럼 생긴 모습에 놀라 다들 손을 대지 않았다.
어복쟁반은 4인 1조였는데, 인원의 절반인 2명이 못 먹겠다고 백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와 M 씨는 각자 우설 두 개씩 먹을 수 있었다. 생김새는 조금 징그러웠지만, 규탄보다 훨씬 맛있었다. 불에 굽지 않고 끓여서인지 식감이 부드러웠다. 어느새 이 음식이 소의 어떤 부위인지도 잊어버리는 경지에 올랐다. 그냥 소고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니 평범한 소고기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게다가 우설을 좋아하며, 굳이 찾아먹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여럿이서 이런 요리를 먹을 경우 양은 항상 넉넉했다.
그로부터 3일 후, 주말을 껴서 오사카에 여행을 갔다. 우메다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하다 보니 ‘센다이의 맛’이라는 규탄 전문점 “리큐”가 눈에 띄었다. 다소 값은 나가지만 규탄 요리와 소꼬리탕을 묶어서 세트로 팔고 있었다.
불에 구운 두꺼운 규탄이 네 점이 나왔다. 메뉴에서 사진으로 볼 때는 “겨우 네 개인가”라고 생각했지만, 두께를 보니 양이 꽤 많아 보였다. 게다가 세트로 나온 소꼬리탕도 함께였다.
우설이라기엔 너무 커서 ‘도대체 저 소는 얼마나 큰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비위가 상해)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스테이크라고 생각하고 먹었다.
한국의 가족에게 사진을 보내니 대체 저런 걸 어떻게 먹냐는 반응이었다. 친구도 사진만 보냈을 때는 “맛있겠다 ㅎㅎ”라고 했는데, “사실 이거 소의 혀야.”라고 하자 “그걸 어떻게 먹어? 윽..”이라고 했다. 역시 우설이나 규탄은 등심이나 안심에 비해 블루오션인 것 같다. 소수의 마니아들만 있을 뿐.
의외로 규탄보다 기대했던 소꼬리탕이 더 실망스러웠다. 국물은 맛있었는데 꼬리 고기는 질기고 비릿한 고기 잡내가 나서 거의 남겼다. 반면 네 점의 규탄이 있던 접시는 깨끗이 비워졌다.
이튿날, 축구경기를 보러 교외의 스이타시로 향하던 중 배가 고파져 점심을 먹었다. 경기장 근처라 때때로 선수들이 회식을 하러 찾는다는 ‘이야심보’라는 소고기 구이 전문식당이었다.
관광지가 아닌 주거지의 식당이라 영어 메뉴는 없었다. 힘겹게 가타카나를 읽자 “탄”이라고 읽히는 단어가 있길래, 혹시나 해서 사장님께 규탄이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망설이지 않고 런치세트 B를 시켰다. 일본식 불고기를 1,250엔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쌀밥과 함께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규탄과 다른 이름 모를 부위들의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무엇인지 규탄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것 역시 혀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 종류의 우설 요리를 먹었지만, 이 집의 규탄은 양념이 단연 돋보였다. 고기에 스며든 타레 소스가 감칠맛이 뛰어나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이젠 스이타에 갈 일이 없겠지만, 오사카에 갈 때마다 이야심보의 규탄 요리가 떠오를 것 같다.
우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경쟁은 적지만 그만큼 우설을 파는 곳도 드물어, 오사카 여행이 끝난 후엔 좀처럼 우설을 먹을 일이 없었다. 그로부터 열 달이 넘게 지나서야 도쿄에서 ‘네기탄’이라는 우설 요리를 먹었고, 그것이 내가 먹은 마지막 우설 요리가 되었다.
도쿄 미나토구의 미나미 아오야마 주택가에 숯불 고기점 같이 생긴 아오야마 만푸쿠라는 곳이었다. 네기탄이라니, 파와 우설의 조합인가보다. 1인분은 1,760엔인데 달랑 우설이 네 점 나온다. 우메다의 리큐와는 달리 두께도 얇다. 오사카가 대도시이긴 하지만, 확실히 수도인 도쿄의 물가보다는 저렴했다.
직원분이 네기탄을 먹어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자, 구워 먹는 방법을 아냐고 했다. 아는 척하지 않고 솔직하게 모른다고 했다. 그랬더니 불판에 놓고 몇 초를 세고 한 번 뒤집은 후, 첫 번째 텀보다는 짧은 간격을 기다린 다음에 곧바로 먹으라고 알려줬다.
고기가 너무 얇아서 양은 적었지만, 그만큼 입에서 살살 녹았다. 파와 마늘이 아낌없이 가득한 양념이라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을 것 같다. 소의 혀라는 사실 때문에 거북해서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초심자용 메뉴로 네기탄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