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말
오사카 여행을 앞두고, 일본 식도락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오사카 편을 봤다. 오사카답게 오코노미야키가 등장한다.
오사카 사람들은 오코노미야키를 반찬으로 먹는다고 한다.
주인공 고로는 오사카 방식대로 오코노미야키를 반찬 삼아 맛있게 먹고 대식가답게 이것저것 추가로 시켜 먹는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갈 때 사장님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는데 일반적인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앞에 “오오키니”라고 덧붙였다. 그 한 마디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처럼 익숙했다.
곧 나는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을 떠올렸다. 2년 전, 교토로 가는 길에서였다. 그 단어는 내가 처음 배운 일본어 사투리였다. 당시 나와 함께 있던 어머니는 그 단어를 듣고 일본어를 기억하시고자 ‘오오키니 - 감사합니다’라고 적으셨었지. 그 기억이 떠올랐다.
2017년 2월 말, 엄마와 나는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행 하루카를 탔다. 공항에서 교토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꽤 멀었다. 공항 고속철도인 하루카를 타고도 80~90여분을 가야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여행박사에서 하루카 2인 왕복 티켓을 샀는데, 그것은 지정석이 아닌 자유석이었다. 자유석 전용 칸에 들어서자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별 수 없이 오랜 시간을 서서 가야 했다.
자리가 없는 자유석 승객들은 떠돌이처럼 연결통로에 등을 기대어 서서 갔다. 여느 고속 철도처럼 검표하는 승무원이 지나갔다. 초고령 사회를 반영하듯 우리의 검표 승무원은 할아버지였다. 승무원 할아버지는 우리가 외국인인 것을 단 번에 알아보고 ‘어디에서 왔느냐, 어디까지 가느냐’ 말을 건네셨다.
조금 얘기를 나누다가 다른 칸으로 떠나셨는데, 몇 십분 후 나를 부르셨다. 중간에 열차가 역에 정차하면서 다른 칸에 빈자리가 생긴 것이었다. 친절한 승무원 할아버지 덕분에 남은 시간을 엄마와 함께 편히 교토역까지 앉아 갈 수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물론 교과서에서 배운 “아리가토 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였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오오키니(おおきに)”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하루카를 탔던 수많은 한국인 덕분에 한국어를 조금 하셨다. 그래서 수수께끼 같은 “오오키니”라는 말이 고맙다는 인사라는 걸 알려주실 수 있었다.
그렇게 기억 속에 가라앉아있던 간사이 사투리가 <고독한 미식가>를 계기로 떠올랐다.
실제로 그 오코노미야키를 먹기 위해 아베노구 비쇼엔에 가봤다.
아마카라야의 오코노미야키는 오사카에서의 첫 식사였다.
좌석 배치며, 가게의 분위기가 드라마에 나온 풍경과 똑같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TV에서는 일본어가 더빙된 기황후가 나왔다.
오코노미야키를 반쯤 먹었을 때 야키소바까지 시켰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씨는 대식가라, 따라가기가 참 버거웠다.
브레이크 타임인 2시를 10분 앞두고, 동네 주민인 듯한 젊은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야키소바를 주문했다. “지금 주문해도 되죠?”라고 말하는 모습이 단골처럼 보였다.
사장님은 브레이크 타임에 개의치 않고 쿨하게 야키소바를 만드셨다. 단골처럼 보이는 여자 손님은 10분도 걸리지 않아 식사를 마쳤다. 나갈 때도 쿨하게 바 위에 돈을 올려놓고 잘 먹었다며 자리를 떴다. 그러자 여자 사장님이 “오오키니”라고 인사했다. 드라마에서 들었던 현지식 인사였다.
안타깝게도 내가 식사를 다 하고 나갈 때에는 “오오키니”가 아닌 표준어로 인사를 하셨다. 내가 외지인인 게 티 나서였겠지. “오오키니”라는 인사로, 아까 그 손님이 현지인이란 추측이 보다 확실해졌다.
우메다에서는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오사카의 인생 가게, ‘바 베소’를 만났다. 사장님과 매니저님이 운영하는 작은 바인데, 두 분 다 영어를 잘하셔서 대화를 꽤 많이 나눌 수 있었다.
사장님께는 센다이 미야기 쿄 증류소 안에 있는 바의 정보를 들었다. 증류소와 개점과 폐점 시간이 비슷하기 때문에, 저녁에 열어 새벽에 닫는 일반 바와 달리, 일찍 열고 저녁이 되기 전에 닫는다는 것이었다.
매니저님은 한신 타이거스의 열렬한 팬으로, 축구를 좋아해 오사카에 온 나만큼이나 야구를 좋아하셨다. 한신 타이거스는 도쿄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라이벌 관계라고 했다. KBO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이 있으신지, 한신 타이거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관계를,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일명 엘 꼴라시코)에 비유했다.
다음 날, 축구 경기장에서 합류한 친구와 함께 바 베소를 다시 방문했다. 토요일에는 복장도 캐주얼했고 영업시간도 평일보다 짧아서, (본 적은 없지만) 마치 주 5일제가 시행되기 이전의 토요일 풍경 같았다.
자정이 되기 전에 라스트 오더를 받으셨다. 구글맵엔 토요일이 영업시간이 짧다는 게 반영이 되지 않아 미처 알지 못해 좀 더 빨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의도하지 않게 우리가 바에서 가장 나중에 떠난 마지막 손님이 되었다. 친절하신 매니저님은 (빨리 퇴근을 하셔야 할 텐데) 백 바와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가라고 하며 사진까지 찍어주셨다.
나는 바의 계단을 올라가며 인사를 했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대신 “오오키니”라고. 나의 인사를 듣고, 두 분은 활짝 웃었다.
처음 교토행 열차에서 “오오키니”를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이 교토의 사투리인 줄 잘못 알았다. 그 여행 자체가 교토 여행이라, 모든 것을 교토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교토 말이 아닌 오사카의 사투리였다. 친절한 승무원 할아버지는 오사카 사람이었다. 그 열차도 오사카에서 출발하는 교토행 고속철이었다.
내가 “오오키니”라는 말을 처음 꺼낼 때 비로소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정이 많고 약간 다혈질이며, 음식에 소스를 많이 뿌리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열정적인 곳. 좋아하는 곳이라 2년 동안 다섯 번이나 방문했던 도쿄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도시.
다음에도 오사카를 방문한다면, 마지막 인사말은 꼭 “오오키니”로 할 것이다. 어디를 방문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