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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Nov 21. 2018

명소는 풍경으로 거들 뿐

오사카성, 나라, 만박기념공원

2박 3일의 짧은 일정

처음에 엄마와 함께 하는 오사카 2박 3일 여행을 계획했을 때 실제로 여행에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뿐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아침 11시라, 8시가 되기 전에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세웠전 여행일정은 많이 변경되었다

이틀째 오후에 축구를 볼 예정이었기 때문에 첫날 오후와 둘째날 오전일정을 채워야 했다. 오사카는 처음이었고 아는 것이라고는 오사카성과 도톤보리, 난바, 신사이바시 정도의 지명밖에 없었다.

오사카 모노레일로 환승했던 미나미 이바라키

축구장은 오사카 외곽의 스이타시에 있었다. 오사카 모노레일을 갈아타고 만박기념공원역에서 내려서 2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만박기념공원은 1970년에 개최한 엑스포를 기념하는 공원이다.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같은 것이다.

태양의 탑, 스이타

이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만화 <20세기 소년>에 등장한 ‘태양의 탑’이다. 올빼미 같이 생긴 얼굴이 인상적인, 과학 공상 미술대회에 나올법한 파빌리온이다.

처음 여행일정을 짤 때는 축구장과 만박기념공원이 가깝기 때문에, 오전에 이 공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원에 대해 조사해보니, 공원이 넓긴 하지만 볼거리는 딱히 없었다. 태양의 탑 하나라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만박기념공원은 굳이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첫째날 가려고 했던 오사카성을 축구장 가기 전에 방문하기로 했다. 첫째날 오후에는 오사카성 대신 나라에 가게 됐다.

나라로 향하는 긴테츠 나라선

처음엔 ‘나라’에 가려는 생각이 없었다. 나라에 가려면 엄청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고, 나라에 볼거리가 많을거라 생각해 적어도 1박 2일은 잡아야 하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착한 첫날 무리하면 엄마가 피곤해하실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체력이 강하셨고 나라에 가고 싶어하셨다. “그래, 도시보다는 사슴이 낫지.” 라며 나라행을 반기셨다. 생각보다 나라는 멀지 않았다. 숙소에서 긴테츠 전철역이 가까운게 다행이었다. 1시간 정도면 나라에 도착했다.

사원, 박물관, 사슴이 있는 나라 공원

나라에서 딱히 대단한걸 하진 않았다. 나라 공원 소개에는 ‘사원, 박물관, 사슴이 있다’고 써있지만 박물관은 패스했고 사원은 도다이지만 들어갔다. 그냥 온종일 사슴만 구경했다.

되새김질하는 모습이 꼭 껌을 씹는 듯한 귀여운 사슴

새벽 네시에 일어나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오가며 피곤한 하루였지만, 나라를 방문한 것은 더없이 훌륭한 선택이었다. 천 마리 이상의 사슴이 돌아다니는 공원에 오니 그제야 일상을 탈출한 느낌이 들었다.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호류지에서 금당벽화를 보지 않아도, 사슴을 배경으로 또는 사슴을 친구삼아 엄마와 사진을 찍다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오사카성, 2018년 11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오사카성에 갔다.

Osaka Castle, Natura Classica, Agfa Vista 200

내가 이전에 봐왔던 목조 천수각과 달리 세련되고 상큼한 민트색의 기와가 아름다웠다.

Osaka Castle, Natura Classica, Agfa Vista 200

성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을만큼 거대한 규모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하루의 모든 일정을 다 쏟을만큼 볼거리가 많거나 할일이 많은 곳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첫째날 오후에 하루종일 여기에 머무는 것보다, 첫째날엔 나라에 가고 둘째날 아침에 오사카성을 잠깐 들렀다가 축구경기장에 가길 잘했다.

만박기념공원, 오사카부 스이타시

만박기념공원의 대관람차나 태양의 탑은 경기장 가는 길에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파나소닉 스타디움 가는 길, 스이타시의 대관람차

심지어 파나소닉 스타디움까지 20분 가까이 걷는 동안 대관람차 옆길을 지나며 아주 가까이에서 올려다볼 수 있었다. 직접 관람차를 탈 생각은 없었다. 엄마께 이따가 경기가 끝나면 탈 의향이 있는지 여쭤봤더니, 저거 한 바퀴 돌려면 한 시간 넘게 걸리겠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여행목적이나 취향에 맞지 않는 관광명소는 지나가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파나소닉 스타디움에서 바라본 야경

경기가 끝난 후 다시 처음에 도착했던 모노레일 정거장을 향해 돌아가는 길, 일본은 해가 일찍 져서 다섯시 반이었는데 여덟시처럼 깜깜했다. 해가 일찍 진 덕분에 만박기념공원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관람차와 ‘태양의 탑’의 그 올빼미 얼굴에 불이 들어왔다. 올빼미의 얼굴이 타오르고 있어서, 정말 그 이름처럼 ‘태양의 탑’이었다.

해가 질 때까지 어딘가에 머무르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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