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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Dec 04. 2018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는 방법

나라의 Lamp Bar

엄마는 술을 별로 안 좋아하신다. 아예 안 드시는 건 아니고 와인이나 맥주를 한잔 정도 드시는 주량이지만 좀처럼 드시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 술 마실 때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렇다고 나도 술을 잘 마시는 건 아니다. 소주는 정말 싫어하고 못 마신다. 거의 쥐약 수준이다. 그러나 상큼한 롱드링크 칵테일은 좋아한다. 그래서 칵테일바가 좋다.

2018 아시아 베스트바 45위에 랭크된 나라의 Lamp Bar

칵테일바를 좋아하는 나는, 카페 좋아하는 사람이 여행에 가면 카페 투어를 하듯이, 여행지에서 월드 베스트 바나 아시아 베스트 바에 선정된 곳은 꼭 방문하려 한다. 마침 나라에도 2018년 아시아 베스트 바 50위 안에 든 램프 바란 곳이 있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를 어떻게 설득해서 램프 바에 가는지가 문제였다.

사슴이 뛰노는 나라 공원, 나라 조시초

나라에서 사슴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며 기온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네시 정도밖에 되지 않아 저녁을 먹으러 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라에 있는 전통 찻집에 들렀다가 공원 안에 있는 장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오사카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물론 이 일정에 램프 바는 없었다. 불가능해 보였다.

낙점된 전통 찻집은 카시야라는 곳이었다. 빙수가 유명하다는 곳이었다. 그런데 길을 찾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분명히 구글맵에서 가리키는 곳에 올바르게 찾아갔는데, 사진에 있는 가게와 달랐고 간판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급하게 아무 건물 처마 밑에 들어가 구글맵에 있는 전화번호를 두드렸다. 하지만 나의 짧은 일본어로는 문 열었냐는 질문밖에 하지 못했다.

건물을 도저히 찾을 수 없는데 수화기 건너편의 직원은 영업 중이라 했다. 내가 어디인지 못 찾겠다 하니 주변을 설명해보라 하는데, ‘근처에 찻집이 있다’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긴 침묵이 흐르더니, 직원은 어차피 지금 방문하면 테이크 아웃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폐점시간까지는 한 시간 반 이상 남았는데 벌써 폐점을 준비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말이 안 통하니 이쯤에서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게 모두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포기하고 그 가게에 미련을 버렸는데, 알고 보니 주변을 설명할 때 예로 들었던 찻집이 문제의 그 찻집이었다. 누가 구글맵에 잘못된 사진을 올린 것 같다. 그럼 가게 주인의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 없었을 텐데.

니시노신야초의 카페

불행 중 다행으로 비는 몇 방울 내리다가 그쳤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랬더니 주택가가 등장했다. 전혀 관광지라고는 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깃발을 들고 걸어 다니고 있었다. 엄마가 지치신 것 같아서 나름 평점이 좋은 카페에 들어갔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기에 부담스러워서 그냥 나왔다.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 보니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애초에 카페에 가려던 것도 저녁 먹기 전까지 시간이 뜨기 때문이었다. 카페 다음에 가려고 했던 장어 식당에 가려고 했더니, 지금까지 걸은 길의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였다. 게다가 문은 어찌 빨리 닫는지 일곱 시에 영업 종료라 상당히 촉박해 보였다. 어쩌면 아까의 찻집처럼 손님을 이른 시간부터 미리 안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루사와 연못에서 물을 마시는 사슴

엄마는 장어는 됐다고 하셨다. 어차피 점심을 늦게 먹었기 때문에 배는 안 고프니, 저녁을 미뤘다가 오사카에 돌아가서 먹어도 되겠다고 하셨다. 다만 목이 마르다고 하셨다.

그때 머릿속 램프에 갑자기 불이 들어왔다.
“엄마, 갈증도 나는데 여기서 칵테일 한 잔 마시고 오사카 돌아가는 거 어때요? 여기 엄청 유명한 곳이 있어요.”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술을 싫어하는 엄마가 “그래.”라고 하셨다.

간사이 지역의 유일한 아시아 베스트바, 램프바

램프 바는 간사이에서 배출한 유일한 아시아 베스트 바였다. 긴테츠 나라역에서 3분 내로 갈 수 있는 초역세권이었다. 엄청 가까운 거리와 달리, 좁은 골목길 안에 숨어 있어서 찾기가 어려웠다. 일부러 찾기 어렵게 만든 스피크 이지바 같았다.

Lamp Bar, Nara, November 2018

램프 바는 바의 이름처럼, 전등의 노란 불빛으로만 실내를 밝혔다. 백색광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앤틱 램프와 낡은 수트케이스로 가득한 바

규모는 작았지만 고급스러운 빈티지함이 가득했다. 다양한 등도 아름다웠지만, 슈트케이스 등 소품의 활용도 돋보였다.

Lamp Bar, Nara, November 2018

그런데 메뉴판은 없는 곳이었다. 손님과의 대화를 통해 칵테일 주문을 받는다고 했다. 다행히 베스트 바 사이트에 몇 종류의 추천 칵테일이 있었다. 유자 진토닉, 자카파 럼이 들어간 올드패션드, 김렛이었다.

청량하고 맛있었던 유자 진토닉

갈증 날 땐 롱드링크가 최고다. 내 거도, 엄마 것도 유자 진토닉으로 골랐다. 다만 바텐더에게 엄마는 술이 약하시니 도수를 매우 약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바텐더분은 3도 정도의 도수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다.

10도 중후반의 내 칵테일과 3도짜리 칵테일의 차이는 자몽 리큐르 하나였다. 자몽맛이 나는 리큐르가 도수가 강했는지, 엄마의 유자 진토닉엔 그게 들어가지 않았다. 엄마가 받은 칵테일을 한 입 마셔보니 호로요이나 츄하이를 마시는 듯했다. 전혀 알코올 감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음료수를 마시는 것 같으니 돈이 아깝다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일반 청량음료를 포함해, 그 어떤 유자가 들어간 음료 중에 가장 맛있었다.

오히려 술이 제대로 들어간 일반적인 유자 진토닉보다 엄마가 마시는 도수 약한 쪽이 더 마음에 들어서 정식 메뉴로 등재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국적인 램프바

오픈 시간인 다섯 시에서 10분만 지났을 뿐인데 이미 손님이 있었고, 우리가 앉은 뒤에도 한 팀이 더 왔다. 우리만 동양인이었다. 그들도 여행자일 텐데 아시아 베스트 바 리스트를 보고 온 것 같았다. 바의 램프들이나 분위기가 서양 쪽에 가까웠기 때문에, 일본의 나라보다는 유럽의 어느 도시를 방문한 것 같았다.

Bar High Five, Tokyo, May 2017

월드 베스트 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도쿄의 하이파이브에서 느꼈던 인상과 비슷했다. 그때도 의아했다. 여기가 유럽인지, 일본인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땐 단지 영어가 잘 통할뿐이었지 칵테일 자체에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단 한 잔이었지만 램프 바의 칵테일은 일본에서 마신 칵테일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맛있었다. 시끌벅적하지 않고 조용한고 차분한 분위기는 나라와도 닮았다.

다만, 일본의 바는 일반적으로 금연이 아니라 손님들이 실내에서 담배를 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 잔만 마시고 후다닥 쫓기듯이 가게를 나갔다. 생각보다 오래 머무르지 못해 아쉬웠지만, 찻집의 태업(?)으로 일정에 없던 램프 바를 방문할 수 있게 되어 뜻깊었다. 게다가 엄마와의 첫 칵테일바 방문이어서 더 의미 있었다.

칵테일이 맛있고 분위기도 훌륭하며 오픈 시간도 5시라 일찍 가게를 열기 때문에, 나라를 방문할 계획이 있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여담이지만 이곳은 화장실마저, 별 다섯 개 호텔 저리 가라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고급스러워서 나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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