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동 임바이브
3월의 어느 금요일, 처음 방문하는 바에 갔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간사이 스타일의 칵테일을 만드는 곳이다. 마침 일주일 전에 오사카의 칵테일바 두 곳에 갔던 터라 감회가 새로웠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대진을 추첨하는 날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장님은 감사하게도 중계를 보는 것을 허락해주셨다.
많은 리버풀 팬들은 아약스나 포르투가 상대팀으로 배정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마드리드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레알 마드리드를 총스코어에서 역전하며 꺾고 올라온 아약스는 두려움의 상대였다. 제발 포르투가 걸리기를 기도했다.
은근히 피하고 싶었던 아약스의 짝은 유벤투스가 되었다. 다음 공을 뽑자, 내가 응원하는 리버풀의 이름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상대팀의 이름이 적힌 공을 뽑기까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말 만나기 싫은 팀은 메시가 있는 바르샤와, 1조 스쿼드를 가진 맨체스터 시티였다.
다행히 공에서 나온 쪽지에는 수많은 강팀을 비껴나가고 FC 포르투란 글자가 쓰여있었고 나는 만세를 불렀다.
올해 장거리 여행은 축구경기가 열리는 곳으로 갈 참이었는데, 8강 2차전이 열리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는 정말 매력적인 여행지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서 직항은 없지만 물가가 다른 유럽 국가보다 싸고 음식도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고 하며 포트와인의 산지였다.
내가 “포르투 포르투” 노래를 부르자, 사장님께서 깜짝 선물로 포트 와인을 한 잔씩 주셨다. 와인병에 ‘Fonseca Porto Ruby Port’라고 쓰여있었다. 포트와인은 일반적으로 스페인의 셰리와인보다 달다고 했다. 둘 다 주정 강화 와인이지만 셰리와인은 숙성이 끝난 후에 주정을 넣고, 포트와인은 숙성 과정 중간에 주정을 넣는다는 차이가 있다고 하셨다.
포트와인을 마시며 희망에 찬 마음으로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루프트 한자에서 나온 80만 원대 표가 있었다! 그러나 술이 취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비행기표를 구하기 이전에 우선 축구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FC 포르투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그 어떠한 예매 창구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티켓 예매 페이지가 오픈되었지만 이상하게 아무 좌석도 클릭되지 않았다. 오직 ‘Become a member’만 활성화되어 있었다. 결국 멤버십을 가진 사람만 예매를 할 수 있는 걸까. 간단한 정보를 기입해 회원가입 신청을 했지만, 주말이 지난 뒤 처리가 된다는 문구가 보였다. 각종 업무처리가 한국처럼 빠르지 않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내 마음은 서서히 포르투를 떠나고 있었다.
게다가 집에 가서 달력을 보니 경기가 낀 주는 각종 시스템의 이관일이 다 몰린 주였다. 4월 중 가장 바쁜 주였다. 또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부서 워크숍도 빠져야 돼서 부장님의 양해까지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포르투에 잘 다녀오길 바란다며 포트와인까지 한 잔 받았는데, 포르투에 못 가게 됐다. 한국에서 새벽잠을 줄여가며 리버풀을 응원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포르투 예매 때문에 검색을 하던 중,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티켓을 다음 주 금요일로 넘어가는 자정까지 예매 신청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왜 예매 신청이냐면 티켓을 살 수 있는 사람을 추첨을 통해 선정하기 때문이다.
올해 결승전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다. 리버풀이 결승에 올라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챔스 결승 직관은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이벤트이니, 이 당첨 확률에 올해 장거리 여행의 운명을 걸어보기로 했다.
포르투에 못 가는 건 아쉽게 됐지만, 이웃 나라인 스페인도 줄곧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다. 그리고 각종 업무 성수기를 기막히게 피한 6월 2일이란 날짜도 마음에 든다.
포트 와인을 현지에서 못 마시는 건 아쉽지만, 임바이브에서도 포트 와인을 판다는 걸 알게 됐으니 다행이다. 당분간은 포트 와인이 마시고 싶을 땐 논현동을 방문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