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동 임바이브
어느새 여덟 번째 방문한 논현동의 임바이브. 명실상부한 단골 바가 되었다. 내가 칵테일바를 다닌 이후 이곳은 나의 네 번째 단골가게이다. 자주 가던 단골가게에 더 이상 가지 않게 된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이 유명한 도입부처럼, 단골가게를 계속 찾는 이유는 비슷하다. 편안해서, 친절해서, 음식이나 음료가 훌륭해서. 전부다 해당된다. 반면 발길이 끊어지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그 이유를 말로 꺼내기는 어렵다. 왜 이제는 오지 않느냐고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아무튼 지금 이 시점, 나는 현실에 충실했다. 현재 단골가게인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칵테일을 먹고 싶었다. 내가 이 가게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칵테일이 맛있기 때문이다. 묵직한 클래식 칵테일보다 상큼하고 새콤한 과일 칵테일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충족하는 곳이기도 하다.
뭘 시키지? 이젠 메뉴판을 보고 주문하지 않는다. 지금 무엇이 마시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때, 갑자기 지난달에 바 베소(Bar Beso)에서 마셨던 패션후르츠 칵테일이 떠올랐다. 마티니 스타일의 패션후르츠 칵테일이었는데, 남은 과육을 떠먹을 수 있게 스푼을 주셨다. 과일 안에 오렌지 리큐르인 코인트로를 무려 두 번이나 부어마시면 더 맛있다.
이 가게엔 패션후르츠 칵테일이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패션후르츠 마티니, 다른 하나는 패션후르츠 모히또이다. 마티니 스타일은 오사카에서 마셔봤으니 모히또를 마셔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은 철이 아니라 실제 과일이 없어서 개구리알 같은 패션후르츠 과육은 없다고 하셨다. 다만 칵테일의 원래 맛은 패션후르츠 시럽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과육이 없더라도 맛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하셨다. 그래서 믿고 마셨다.
빼곡한 민트의 숲. 얼음 위로는 붉은 라즈베리 시럽이 있다. 당도와 산도 모두 높은 패션후르츠는 민트와 잘 어울렸다.
패션후르츠 모히또를 마시다 보니 비슷한 느낌이었던 오사카의 모히또가 생각났다.
나는 민트를 싫어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 모히또를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었다. 허브 칵테일 중 민트보다는 바질 쪽이 내 취향에 가까웠다.
그래서 처음부터 오사카에서 모히또를 마실 생각은 없었다. 자주 마시는 칵테일 중 하나인 보스턴 쿨러를 주문했는데, 베소의 바텐더님은 보스턴 쿨러보다 모히또에 자신이 있으셨던 걸까, 우리 가게는 모히또가 맛있다면서 모히또를 만들어 주셨다. 내가 원했던 칵테일은 아니라 조금 어안이 벙벙했는데 막상 마셔보니 정말 맛있어서 군소리 없이 잔을 비웠다.
신기하게도 내가 아는 일반적인 모히또의 맛이 아니었다. 칵테일을 아무리 살펴봐도 과일이 들어간 것 같지는 않은데 과일의 상큼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모습은 평범한 모히또인데, 맛은 과일 칵테일이다. 그래서 무엇이 들어갔냐고 물었는데 레시피는 너무 평범했다. 민트와 럼, 라임이었다. 물론 라임도 과일이라면 과일이겠지만 평범한 모히또에선 민트향이 그 모든 걸 덮었다. 밸런스가 과일 애호가에게 최적화된 모히또였다.
D가 청량한 칵테일과 잘 어울리는 안주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다. 간사이식 칵테일바답게, 가츠 샌드도 오사카식이다. 도쿄에서 먹었던 가츠 샌드는 식빵이 조리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식빵인데, 이곳의 가츠 샌드는 바삭하게 구워져 있다. 특유의 비밀 소스도 맛있다. 오랜만에 먹으니, 이전과는 달리 먹기 편하게 샌드가 절반으로 잘려있었다.
막잔으로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마셨는데, 잔이 그립감이 좋고 얇아서 더 맛있게 느껴졌다. 체코산 와인글라스였다. 지금 다시 사진을 봐도 청량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