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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May 26. 2019

세 번째 방문

징크스를 극복하고 단골이 되기

소셜미디어에서 진관동 주택가의 레스토랑 후기를 보았다. 맛있어 보였으나 나는 너무 멀어서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은평구에 사는 D에게 소개해주었다.


D는 그 가게를 마음에 들어했다. 짧은 시간 동안 무려 세 번이나 방문했다. D의 인스타그램에서 이 가게의 메뉴를 모두 정복하겠다는 의지를 엿보았다. 식당을 추천한 나도 뿌듯하고 기뻤다.

그러나 최근에 맥주집에서 만났을 때, D는 세 번째 방문이 마의 시기라고 했다. 두 번째 방문까지는 내가 추천했던 레스토랑을 사랑했지만 세 번째로 방문했을 때 조금 실망했다고 했다. 하필 그날 사장님이 안 계셨는데 리조토가 처음에 먹었을때보다 짜고 평범하다고 했다. 카운터 펀치는 하우스 와인이었다. 하우스 와인이 너무 맛없었던 것이다. 보통 하우스 와인은 레드나 화이트 와인별로 한 가지 종류만 갖추고 있기 때문에, 레스토랑의 취향과 안목을 보여주는 메뉴이기도 하다.


그날의 방문이 D에게는 일종의 분기점이었다. 세 번째 방문까지는 거침이 없었지만, 네 번째 방문은 망설여지는 시점이었다. 단골이 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였다.

비슷한 시점, 나에게도 그런 가게가 있었다. D가 진관동의 식당을 처음 방문할 무렵, 나도 가족과 함께 동네 레스토랑을 첫 방문했다.

처음 갔을 때는 애피타이저에 스테이크며, 파스타 두 종류, 하우스 와인 등 이것저것 주문하는 바람에 10만 원에 가까운 영수증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두 번째 방문 때는 비싼 스테이크와 양이 적은 애피타이저를 빼고, 가성비가 빼어난 그린 샐러드를 추가하는 등 실용적인 메뉴 구성으로 비교적 합리적인 영수증을 받아보았다. 특히 견과류와 홀그레인 머스터드가 혼합된 샐러드의 드레싱이라든가, 크림 파스타에 들깨를 뿌린 레시피는 다른 레스토랑에서 맛보기 힘든 창의적인 방식이었다.

이곳의 새우 토마토 파스타는 평범해 보이는 듯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맛으로 우리 가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통후추를 통째로 넣은 대담함과 통통한 새우를 먹기 좋게 발라서 넣어주신 관대함까지 갖춘 토마토 파스타였다. 사천요리를 능가하는 얼얼한 매콤한 맛은 중독성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우리는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이 새우 토마토 파스타를 빠뜨리지 않고 주문했다.

크랜베리 와인 깜빠뉴와 무염버터, 2019년 5월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세 번째 방문의 징크스가 찾아왔다. 그날따라 운이 안 좋긴 했다. 마치 세 번째 방문 때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악운이 겹쳤던 D의 이야기처럼.

핀란드 페일라거 까르후 / 8,000원

퇴근길 버스를 타고 가게로 오는 길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올림픽 대교를 타고 강을 건너고 말았다. 한참을 뺑뺑 돌아 예상한 시간보다 30분 늦게 식당에 도착했다. 한 것도 없이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시원한 맥주를 한 병 시켰다. 그날따라 매우 더웠다.

백명란과 수란을 얹은 명란 리조토 / 18,000원

이번엔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달의 메뉴인 명란 리조토를 주문했다. 크림 리조토에 백명란과 수란을 얹은 푸짐한 요리였다. 점심을 못 먹는 등 배가 고팠기 때문에 빠르게 접시를 비웠지만, 들깨가루가 들어간 크림 파스타보다 다소 느끼했다. 함께 방문한 어머니도 취향이 아니라며 드시지 않아, 혼자서 그릇을 다 비웠다.

새우 토마토 파스타 / 18,000원

어머니는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대표 메뉴인 새우 토마토 파스타를 드셨는데, 아쉽게도 평소보다 소스가 적었다. 비싸지만 맛있어서 다음 방문을 기약했던 첫 번째 방문, 다른 곳보다 월등히 맛있고 즐거운 식사를 경험해 단골이 되겠다 마음먹었던 두 번째 방문보다 살짝 기대에 못 미쳤던 세 번째 방문이었다.


게다가 식사를 하다가 스마트폰을 떨어뜨리는 등 잘못 탄 버스에 이어 운이 좋지 못한 하루였다. 회사에서도 갑작스러운 업무 할당으로 미리 계획한 휴가가 취소될 위기를 겪는 등 심적으로도 지쳐 있었다. 이렇게 D가 세운 가설인, ‘세 번째 방문’의 법칙이 적용되나 싶을 때였다.

모든 접시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사장님이 잘게 썰은 치즈를 곁들인 토마토를 가지고 오셨다. 얼핏 보면 카프레제 같은 음식이었는데, 카프레제와 달리 꿀이 뿌려져 있었다. 정식으로 등재된 메뉴가 아닌 서비스 메뉴였다. 토마토가 정말 신선했다. 함께 온 어머니도 토마토가 “정말 맛있구나”라고 하셨다.


단순히 서비스로 음식을 주셨기 때문에 고마워서 또 와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서비스로 주신 그 음식이 정말 신선하고 맛있었기 때문에, 그날 먹었던 저녁식사의 전체적인 인상이 바뀌었던 것이다. 결국 ‘세 번째 방문’ 징크스는 재치 있는 토마토 치즈 한 접시로 극복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곳을 다시 찾았지만 아쉽게도 재료가 소진되어 저녁엔 문을 닫아 네 번째 방문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 한번 방문한다면 그땐 영락없는 이 가게의 단골손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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