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식이 생각나지 않았던 9일
나의 지인은 유럽이나 미국 등으로 일주일 이상 장거리 여행을 떠나게 되면 꼭 햇반이나 라면 등을 챙겨간다.
내가 머물렀던 한인민박에도 김과 김치, 장아찌, 햇반 등을 가져와 하루 한 끼는 꼭 한식으로 드시는 분이 계셨다. 그러나 나는 일주일에서 열흘 남짓한 몇 번의 장거리 휴가 중 한 번도 한식을 먹은 적이 없다. 물론 한 달 이상 나가 있으면 한식이 그리워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7박 9일, 9박 11일 정도는 거뜬히 낯선 식문화와의 외도를 즐겼다.
이번 여행에서도 전혀 한식이 그립지 않았다. 라면도, 김치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음식에 모두 도전해보는데 9일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심지어 오고 가는 비행기 기내식에서도 한 번도 한식을 먹지 않고, 모조리 프랑스 음식을 골랐다.
숙소에서도 일반적인 한인 민박과 달리 한식이 아닌 프랑스식 아침식사를 제공했다. 샐러드와 스크램블, 시리얼과 우유, 주스와 커피, 그리고 바게트와 버터, 딸기잼이었다. 때론 이 푸짐한 식사에 요구르트까지 제공됐다.
그런데 한식이 너무 그리워 한인식당에 가더라도, 그 그리움이 해소되진 않았을 것 같다. 파리엔 중국요리풍 한식당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를 들어 제육볶음에 굴소스나 두반장을 넣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다수의 한식당을 중국인이 운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식당의 한국음식에선 중국 향신료의 맛이 느껴지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튼 나는 한국음식을 떠올리지 않은 채로 9일을 보냈다. 내가 한국음식을 그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마저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메뉴카드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러나 나도 파리에서 그리웠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거리를 걸으면 골목마다 한 두 개씩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노천카페나 브라세리에서는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블랙커피를 마시기 위해선 에스프레소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인 폴에서는 아메리카노에 해당하는 따뜻한 블랙커피를 팔긴 했다. 그러나 아무리 메뉴판을 뒤져봐도 아이스커피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파리에 입점된 스타벅스에나 가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다니는 동선엔 스타벅스가 잘 눈에 띄지 않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그나마 숙소 근처인 파씨 플라자에 입점되어 있던 스타벅스도 2년 만에 방문했더니 폐점하고 없었다.
아이스커피에 목말랐던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마치고 위탁 수하물을 찾자마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러 갔다. 거의 열흘만에 처음 마시는 아이스커피,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장거리 비행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결국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먹은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파리에서 가장 그리웠던 것도 얼음 동동 띄운 커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