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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Jun 17. 2019

콜라를 부르는 바게트 샌드위치

샤를 드골 공항(CDG)의 폴(Paul) 베이커리

여행의 마지막 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원래는 편안하게 투어 에펠 정류장에서 공항버스인 르 버스(Le Bus)를 타고 한숨 자면서 가려고 했는데, 파업이 염려된다는 숙소 사장님의 조언에 따라 광역급행열차인 RER 공항선을 타고 샤를 드골 공항으로 향했다.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있는걸, 캐리어 기댈 공간도 충분히 없이 좁은 만원 열차에 끼여 가느라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피곤해졌다. 그러나 교통체증을 겪지 않다 보니, 공항버스를 타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사장님께 덕분에 공항에 잘 도착했다고 말씀드리자, 아침을 먹지 않아 배가 고프겠다며 공항에 입점한 폴 빵집에서 식사를 하길 권하셨다.

보안검색까지 마치고 탑승동에 도착해서야 안심하고 식사할 곳을 찾았다. 폴은 우리나라의 파리 바게트만큼 흔한 베이커리였기 때문에, 탑승동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얼른 자리를 잡고,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줄이 꽤 길었는데,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뭘 먹을지 고민했다.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이 3.1유로로 가장 저렴한 가격의 세트메뉴였다. 그런데 ‘크루아상은 집 앞 롤링핀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며, 좀 새로운 걸 먹어보고 싶어 졌다.

그때 눈에 띈 게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이 가득 들어간 바게트 샌드위치였다. 값은 5.6으로 비쌌지만, 양이 많아서 든든해 보였다. 게다가 바게트 빵 밖으로 넘쳐흐르는 모차렐라 치즈가 상당히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에스프레소 1.9유로 / 샤를드골공항, 2019년 6월

결국 난 유혹을 참지 못하고 토마토 모차렐라 바게트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사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정말 마시고 싶었으나 메뉴에 없었고, 일반 아메리카노조차 찾기 어려워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토마토 모차렐라 바게트 샌드위치 5.6유로 / 2019년 6월

종이 포장지 안에 결코 싸지 않은 바게트 샌드위치가 있었다. 한화로 약 7,500원이니 웬만한 식사 한 끼의 가격이었다.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바게트라고 해서 딱딱하지 않았다. 역시 당일 만든 빵이었는지, 민박집에서 매일 아침에 먹던 바게트처럼 쫄깃한 식감이었다.


그런데 내가 기대하던 신선하고 짭조름한 맛이 아니었다. 난 살짝 짠맛을 예상했지만, 실제론 소태처럼 짰다. 그래서 그 짠맛이 토마토와 바질의 신선함을 가려버렸다. 특히 모차렐라 치즈 특유의 코끝을 울리는 싱그러움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절반쯤 먹었을 땐 너무 짜서 미칠 듯이 목이 마르기 시작했는데, 에스프레소로는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이 샌드위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면 꽤 어울릴 수 있었겠지만, 에스프레소와의 조합은 영 아니었다. 에스프레소로는 샌드위치의 짠맛을 상쇄할 수 없었다.


그때 간절히 생각난 게 콜라 한 잔이었다. 근처에 편의점은 없었지만, 아까 빵을 샀던 폴 빵집 냉장고 안에 콜라캔이 있던 게 떠올랐다.

혹시 모를 도난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지갑과 스마트폰, 여권을 모두 가지고 빵집에 줄을 섰다. 아까보다 계산 줄은 더 길어져 있었다. 손님에 비해 직원도 적을뿐더러, 계산을 하는 과정이 비효율적이었다.


보통 계산을 하는 곳과 음식을 받는 곳이 다른데, 이곳은 한 곳에서 계산도 하고 음식도 받았다. 그래서 계산을 마치면 바로 다음 사람 계산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빵을 받을 때까지 아무도 계산을 못했다. 그렇다고 계산을 하는 사람이 빵까지 가져오는 건 아니었다. 빵을 주는 사람은 반대편에 따로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계산대까지 와서 빵을 손님에게 줘야 그제야 한 사람의 계산이 끝났다.


상황이 이러니 콜라 한 캔을 사는데 20분이나 걸렸다. 나는 혹시라도 내 가방을 가져가지는 않을까, 아직 다 먹지 않은 음식을 누가 치우기라도 할까 봐 불안한 눈으로 계속 뒤쪽을 바라봤다.

그렇게 힘들게 산 콜라는 2.5유로였다. 어디에 가격표가 붙어있는 게 아니라서 계산대에 서서 영수증을 받기까지 난 콜라의 가격을 알 수 없었다.


콜라 한 캔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짭짤한 바게트 샌드위치는 콜라와 찰떡궁합이었다. 보기엔 꽤 건강해 보이는 음식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패스트푸드가 되어버렸다. 그러게 애초부터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를 먹었으면 콜라를 마실 일도, 콜라 한 잔 마시려고 20분 동안 줄을 설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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