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리타와 함께 구아카몰 나초를
파리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 겸 술 한잔 하러 파리 3구 마레 지구에 갔다. 원어로는 ‘르 마레 Le Marais’로 불리는 마레 지구에는 트렌디한 부티크, 갤러리, 레스토랑, 바가 즐비하다.
술과 식사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Candelaria라는 멕시코 스타일의 바를 찾아 나섰다. 월드 베스트 바에도 이름을 올린 곳으로, 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분명히 통유리를 통해 바와 테이블이 보이는데 아무리 찾아도 입구가 없었다. 알고 보니 건물 반대쪽의 허름한 타코 식당이 이 가게의 입구였다. 타코 집에 들어가니 식사를 할 건지 바에 갈 건지 물어본다. 바에 가겠다고 하니, 구석의 문을 안내해줘서 드디어 바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파리에서 처음 발견한 스피크이지 바였다.
자리에 앉으니 단 한 장으로 된 간단한 메뉴가 나왔다. 나는 클래식한 마가리타와 구아카몰 나초를 주문했다. 퀘사디아도 안주 메뉴로 있으며, 타코 등의 다른 음식을 먹으려면 입구 쪽의 타코 가게로 가야 한다. 아마 타코 가게에서도 마가리타 같은 기본적인 칵테일은 마실 수 있는 듯하다.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는 시간이 상당히 어색하고 길게 느껴졌다. 손님이 앉은자리와 바텐더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도 너무 높아서 오래 앉아있기에는 불편할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손님이 많아져 만석이 되자 마치 파티에 온 것처럼 손님들이 서서 술을 마시던데, 스탠딩 바를 겸하기 위해 바를 높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멕시칸 스타일 칵테일바에 왔으니 첫 잔으로는 마가리타를 마셨다. 프로즌 마가리타를 마시고 싶었으나, 바가 아닌 식당(타코 가게)에서만 판다고 했다.
원래 테킬라를 별로 안 좋아해서 테킬라로 만든 칵테일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Candelaria의 마가리타는 맛있었다. 테킬라 특유의 후추향도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마가리타를 마시면 클래식한 칵테일 잔에 나왔던 것 같은데, 여긴 분위기가 캐주얼해서인지 물 잔같이 생긴 굵은 원기둥 잔에 나왔다. 오히려 이 잔에 나오는 편이 분위기와도 어울리고, 마시기에도 편했던 것 같다.
칵테일 잔이 물 잔 같이 생겼고, 진짜 물이 담긴 물 잔은 소스를 담는 종지 같이 높이가 낮았다.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모양이 이뻤다.
이 가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안주이자 식사인 구아카몰 칩이었다. 나초는 한국에서 먹던 옥수수맛 강한 얇은 칩이 아니고, 밀가루를 묻혀 튀겨낸 듯한 살짝 두꺼운 식감이었다. 구아카몰은 아보카도와 토마토가 매우 신선하여 한국에서 먹던 구아카몰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였다. 온 더 보더의 멕시코 음식을 좋아하는 편인데, 온 더 보더의 구아카몰 라이브보다 훨씬 맛있었다. 스몰 플레이트라 온 더 보더보다 가격도 더 저렴하다.
접객 만족도는 보통 수준이었다. 외국인 손님으로서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첫 방문한 외국인 손님에게도 극상의 친절함을 보여주는 해리스 뉴욕 바보다는 손님을 방임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불친절하지는 않다. 오히려 말 거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이 바의 접객 방식이 마음에 들 수도 있다.
두 번째 잔으로는 Candelaria의 인스타에 소개되어 있던 Santa Comparsa를 주문했다.
이 칵테일에는 테킬라가 아니라 럼이 기주로 들어갔다. 셰리 와인도 들어갔기 때문에 체리빛이 돈다. 럼에 셰리 와인까지 포함되어 있어 달달 새콤한 칵테일이었다.
두 잔째 마시기 시작하자 칵테일을 만든 바텐더가 칵테일 맛이 괜찮냐는 등 몇 마디 말을 걸었다. 외부에서 온듯한 남자 바텐더가 혼자 칵테일을 전담해서 만들고, 다른 직원들(모두 여자였다)은 주문을 받거나 재료를 손질하고 잔을 씻었다. 남자 바텐더는 영미권에서 왔는지 불어를 할 줄 모르는 듯 보였다. 그래서 다른 프랑스인 직원들도 그 바텐더와는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프랑스의 일반적인 가게와는 달리, Candelaria에서는 직원 모두 영어가 유창했다. 영어가 잘 통한다는 건 이 가게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이다.
남자 직원분은 은퇴한 축구 선수 페르난도 토레스를, 여자 직원분은 영국의 배우 엠마 왓슨을 닮았던 게 인상 깊었다.
칵테일 두 잔을 다 마셔갈 때쯤 바에 손님이 가득 찼다. 의자가 모자라서 몇몇 사람들은 서서 술을 마셨다.
옆자리를 봤더니 롱드링크 칵테일을 후루룩 마시고 있길래 맛있어 보여 바텐더분에게 이 칵테일은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팔로마’라고 했고, 난 바로 그 칵테일을 주문했다.
팔로마는 클래식 칵테일이지만, 이날 처음으로 이 칵테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마가리타와 마찬가지로 테킬라 베이스 칵테일이고 소금이 리밍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양이 많고 빠른 속도로 마시기 쉬운 롱드링크 스타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바에서 마신 칵테일 중 가장 맛있었다. 물론 마가리타도 맛있었지만, 마가리타보다도 맛있었다. 한국에선 이런 스타일의 마가리타와 팔로마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만약에 나에게 하루 종일 파리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낮에는 낮술이 가능한 해리스 뉴욕 바에서 사이드카를 마시며 핫도그를 먹고, 저녁엔 Candelaria에서 구아카몰 나초에 마가리타를 곁들여 먹고 팔로마로 마무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