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인가, 호랑이인가
6월 13일 토요일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혹시 몰라 밥그릇이 있는 급식소를 살펴보았더니 궁예가 있었다.
그때는 ‘궁예’란 이름 대신에 애꾸, 점박이 등의 임시 이름들로 불리던 고양이였다. 나중에 정식 이름이 된 ‘궁예’란 이름이 너무 강렬해서, 그처럼 꼬리가 까맣고 검은색 포인트가 들어간 흰 고양이들을 ‘궁예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급식소에서 부뚜막을 따라 사잇길 끝까지 걸어가니, 옥탑 위에 호랑이가 있었다.
호랑이는 조금 후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한쪽 앞발을 뻗은 모습이 귀여웠다.
내가 고양이를 발견했다며 사진을 보내자 아빠도 사잇길로 나오셨다. 급식소 쪽을 바라보자, 궁예 옆에 찰리가 합류해 있었다.
나는 당시에 궁예와 찰리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혈통상 궁예가 찰리를 낳을 수 있을지 의아하긴 했다. 찰리는 코숏 중 턱시도 종이 었고, 궁예는 터키시 앙고라 믹스종으로 추정했다.
다시 아까 호랑이가 있던 옥탑에 가보니, 호랑이는 사라지고 덕이가 잠들어 있었다.
호랑이는 어디 있지?
호랑이는 옥탑이 보이는 계곡의 큰 바위에 앉아서 덕이가 잘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부터 호랑이가 덕이의 보호자라고 인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호랑이는 카리스마가 남달랐다. 이날 호랑이가 덕이의 보호자인 것과, 이 동네의 서열 1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랑이는 보스 기질이 넘쳐흘렀으며, 사진을 찍으려 해도 달아나지 않고 렌즈를 비범하게 응시하며 포즈를 취했다.
턱을 아래로 최대한 내리고, 눈을 올려 카메라를 응시하는 호랑이의 사진은 영국의 미아 캐러거를 닮았다.
멀리서 봤을 때는 미아 캐러거인데, 가까이서 찍은 사진을 보면 정글의 왕 호랑이다. 어떤 사진은 예쁘고, 어떤 사진은 정말 서열 1위의 맹수 같다.
얼굴은 무서운 호랑이지만, 발바닥은 귀여운 분홍색 젤리여서 호랑이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꼬리를 보면 롯데월드의 마스코트인 너구리인데,
얼굴을 보면 영락없는 호랑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 아홉 시쯤 다시 돌아왔더니 계곡에서 궁예가 잠을 자고 있었다.
계곡 바닥에는 찰리가 있었다. 찰리는 고양이 사회에서 아랫 서열인지, 계곡 높은 곳에 오르지 않고 항상 바닥에만 머물렀다.
덕이는 수풀 속으로 자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호랑이 혼자 부뚜막에서 식빵 자세를 하며 쉬고 있었다. 내가 부뚜막 아래로 다가가자 호랑이가 “야옹”하고 울었다. 처음으로 들은 호랑이의 목소리였다. ‘나에게 얘기한 건가?’라고 생각이 들어 조금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 뒤에 덕이가 등장해 호랑이 곁에 엎드린 걸 보면, 덕이를 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 몇 개월간 덕이의 보호자인 호랑이가 덕이를 찾느라 애타게 “야옹”하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호랑이와 덕이는 부뚜막에서, 궁예는 계곡 위에서, 찰리는 계곡 아래에서 묵을 모양이었다. 벌레 우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들의 밤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