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티하이커 Aug 24. 2020

석양에 잠든 궁예

Purple Skies

6월 15일 월요일
맑음


오후 서너 시쯤 급식소에 네로​가 등장했다. 급식소 근처 부뚜막에 사는 호랑이​의 눈치를 보다가, 호랑이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밥그릇 옆에 앉아있었다.

우리 동 앞에는 찰리​가 마실을 나와 있었다. 엄마는 찰리가 가장 예쁘다고 하셨지만, 나는 주말에 봤던 호랑이가 좋았다. 당시에는 호랑이가 이 동네의 서열 1위인 것을 알게 된 후에 ‘일진 냥이’라고 불렀다.

급식소에서 저녁을 먹는 궁예

서소문동에서 외근이 있어서 현지 퇴근을 하여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더니, 급식소에서 궁예가 저녁을 먹고 있었다. 까만 꼬리 덕분에 눈에 잘 띈다.

그날따라 저녁노을이 아름다웠다. 온라인에서도 오늘 하늘이 왜 이렇게 예쁘냐고 칭찬 일색이었다.

얼른 밥을 먹고 나가보니, 이미 저녁을 먹은 지 한참 된 궁예가 계곡 위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보라색 하늘과 어우러져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아빠가 나오실 때쯤 궁예가 긴 잠에서 깨어났다.

사잇길에서는 여진이​가 계곡 쪽으로 내려오는 중이었고, 여진이에게 한눈을 판 사이에 궁예 맞은편에 호랑이가 등장했다.

둘이 마주 보고 싸움이라도 하는 건가 걱정스러웠으나, 그저 몸을 단장하는 그루밍 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