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이와의 첫 만남
6월 12일 금요일
저녁시간에 아빠가 집 밖에서 검은 고양이 네로를 발견하셨다.
네로는 올블랙처럼 보이지만, 턱부터 이어지는 배 전체가 하얗고 흰 양말을 신은 것처럼 발이 하얗다.
사잇길에서는 궁예가 출현했다.
사잇길에 조금 앉아있다가, C동 앞으로 걸어왔다.
궁예는 아파트 현관으로 향하는 길에 엎드려서 졸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두 마리 모두 C동 옆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있었다.
네로는 겁이 많은지 도망가기에 바빴으나,
궁예는 사진을 찍자 뒤로 돌아 포즈를 취해주는 등 모델이 따로 없었다.
그때까지도 이름이 따로 없어서, 우리는 궁예를 점박이라 부르고 있었다. 눈처럼 하얀 털에 강렬한 까만 점이 있고, 수박씨 같은 눈동자는 노란색으로, 참 매력 있게 생긴 고양이였다.
2시간 후쯤, 운동기구가 있는 G동 뒤에서 호랑이를 발견했다.
맞은 편인 F동 뒤뜰에는 호랑이의 벗 덕이가 있었다.
서로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때까지만 해도 덕이의 털이 더러운 것이 비를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땐 덕이의 이름이 따로 없어서 ‘비 맞은 냥이’라고 불렀다. 덕이는 볼 때마다 거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인 성격인 것 같다.
사진을 찍으려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울타리 밖으로 달아났다.
반면, 호랑이는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이때부터 호랑이의 모델 기질이 드러났던 것 같다. 나와 아빠는 호랑이를 가장 예뻐했다.
그날 저녁,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급식소 앞에서 찰리를 만났다.
찰리는 당시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고양이였는데, 코에 점이 있는게 귀엽다고 하셨다.
찰리가 앉아있던 맞은 편의 계곡에는 궁예의 형제로 추정되는 여진이가 있었다. 당시에는 고양이를 잘 구분하지 못해서 궁예겠거니 생각했지만, 머리에 변발이 있어서 ‘여진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흰색 고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