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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Nov 01. 2017

신분증의 중요성

뉴욕 차이나타운

해외여행을 하는동안 한 번도 여권 외의 신분증을 챙겨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모든게 여권으로 충분했으니까.

일단 현지 숙소에 도착하면 안전을 위해 금고나 캐리어에 여권을 보관하고, 가방에는 사본만 들고 다녔다.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가져가야겠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신분증에 무심했던 탓에 뉴욕에서 쓴맛을 봤다. 신변에 문제가 생긴건 아니지만 편의 측면에서 피해를 봤다.






뉴욕 현대 미술관 MOMA

MOMA는 유명한 작품이 꽤 많지만, 미술관의 규모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만큼 크지는 않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서너 시간만에 모두 둘러볼 수 있다.

파리의 루브르나 오르셰처럼, 뉴욕의 모마에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고 들어서 꼭 빌려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 독해 실력이 일천하여, 그림 옆에 붙은 설명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입장권을 산 후, 입구 근처에 있는 대여소에 오디오 가이드를 요청했다. 그랬더니 직원이 신분증을 맡겨야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권 사본밖에 없었다. 나는 사본을 흔들며, 그것도 가능한지 물어봤다. 당연히 안된다고 대답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었다.

직원은 슬픈 눈으로 이 종이 쪼가리는 소용 없다고 했다. 나는 다른 날이라도 다시 방문하기를 각오하고, 사본이 아닌 진짜 여권으로 입장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여권도 받지 않았다. 사실 당연하다. 여권을 맡겼다가 분실하면 그건 누구의 책임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술의 전당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때도 주민등록증을 맡겼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줄 때 신분증을 볼모로 잡아두는데, 외국은 다를거라고 생각했던게 경솔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MOMA의 오디오 가이드는 깨끗이 포기했다. 어쩌면 오디오 가이드가 없어서, 편견 없이 그림을 감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냥 자기 합리화일 뿐. 해외에 갈 때도 꼭 여권이 아닌 신분증을 챙겨가자.






앳어보이 Attaboy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스피크이지바, 앳어보이. 월드 베스트바 탑 리스트에 있는 곳이다. 2등이었던가, 아무리 못해도 5등에는 들었을 것이다.



86번가에서 교통이 약간 애매했다. 스프링가에 내려 걸어갔다.



무섭게 날려쓴 글씨가 있는 섬뜩한 지하철역, 머리에 문신을 한 무시무시한 사람을 지나쳤다. 어느 공터를 지날 때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오른쪽을 흘낏 봤더니 흑인 두 명이 (거의)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었다. 당연히 그 사진은 찍지 못했다. 싸우는 장면을 찍었다면 아마 총을 맞았을런지도.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시티 맵퍼가 가리키는 지점이 도착했는데, AB라고 쓰여진 문패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6시 오픈인데, 6시 15분에 도착했더니 이미 만석이었는지 대기가 꽤 있었다.

눈치를 보며 줄을 서있다보니, 저 현관문을 열고 안에서 금발의 직원이 등장했다. 가장 앞에 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페이스북에 예약 시스템이 있는건지, 대화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줄 선 손님 한 명이 직원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를 보여주는게 아닌가.

혼란에 빠진 나는, 내 바로 앞의 흑인 남자에게 줄 서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남자는 그냥 줄만 서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금발여성 한 명이 등장했고, 그는 그녀와 함께 바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여자가 더 먼저 와서 예약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안에 들어가면서 여권을 보여주고 들어가는게 아닌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금방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혼자라서 다른 사람보다 유리했다. 그러나 직원이 물었다. ID 카드를 보여달라고.

나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여권 사본을 꺼냈다. 그는 종이를 들여다보더니 이걸로는 통과가 어렵다고 했다. 자기는 괜찮지만, 아마 바텐더들이 술을 안줄거라고 했다. 국경을 넘는 것도 아니고, 바에 들어가는게 이렇게 힘들줄 몰랐다. 괜히 기다리느라 시간만 낭비했다.

진짜 여권을 들고 오면 들어갈 수 있다고 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안그래도 온갖 험한 풍경을 겪으며 앳어보이까지 왔다. 괜히 바 하나 가자고 여권을 들고 왔다가 소매치기나 강도를 만나는 상상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럴 때, 부담스러운 여권 대신 사용할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날 이후로 뉴욕에 머무르는 동안 스피크이지바에는 절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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