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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Oct 29. 2017

오스트리아식 카페에서 콜라를 마시다니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

카페 사바스키 Cafe Sabarsky



노이에 갤러리 Neue Galerie


뉴욕 여행의 목적은 미술관이었던만큼 수많은 미술관이 버킷 리스트 안에 들어있었다. 모마에서 몇 시간 동안 그림을 감상하다가 시차의 여파로 서점의 푹신한 의자에서 한 시간 정도 꾸벅꾸벅 졸다가, 버거 조인트에서 또 한 시간을 기다려 아주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미술관을 모두 가려면 하루에 두 군데는 가야 할 것 같아 어찌어찌 센트럴 파크까지 가로질러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뮤지엄 마일까지는 왔으나, 가장 먼저 마주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럼 구겐하임 미술관을 갈까 고민해보았다. 그러나 구겐하임 미술관이 가장 북쪽에 있어서,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마감 시간이 다가와 그림을 미처 다 보지 못하고 나가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구겐하임 미술관보다 살짝 남쪽에 있는 노이에 갤러리로 향했다.


노이에 갤러리, <뉴욕 홀리데이>

<뉴욕 홀리데이>에서도, <언젠가 한 번은 뉴욕 미술관>에서도, 노이에 갤러리를 꽤 매력적인 곳으로 묘사했다. 모마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인근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유명해서 인파도 적고, 클림프의 대작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매달 첫째 주 금요일 저녁 시간이 무료 입장인데, 마지막주라 아쉬운 마음을 품고 고풍스러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라 미술관 내부를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니 보디가드 같은 풍채의 흑인직원 두 분이 가방 검사를 했다. 파리만큼의 강도는 아니었지만, 뉴욕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한해서는 가방 검사를 꼬박꼬박 했다. 흉기보다는 내부 음식물 반입 여부를 검사한다는게 작은 반전이긴 했지만.



검문을 통과한 후, 티켓박스로 가니 여자 직원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빠르게 말하더니 손을 휘휘 저었다. “Pardon?” 이라고 물어봤지만, 다시 한번 얘기해도 완벽한 이해는 어려웠다. 눈치껏, ‘무언가 현재 부족한 상황이라 돈은 받지 않으니 그냥 들어가라’는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료입장의 날은 아니었지만 돈을 내지 않고 입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좋은 상황이라고 할수만은 없었던게, 볼 수 있던 그림의 개수가 너무 적었다. 가이드북에 나와있던 클림트의 <아델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은 다행히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시관이 하나 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그림이 이렇게 적은지 알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뉴욕 미술관>에 실려있던 에곤 쉴레의 그림은 한 점도 없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뉴욕에서 쉴레의 그림은 단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클림트의 대작이라도 충분히 즐기고 나왔어야 하는데, 사진을 찍지 못하니 흥이 안났다. 그리고 수 시간의 미술관 관람과 오랜 점심 대기시간으로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갈증도 심해 집중력이 바닥인 상태였다.

그래, 공짜에는 이유가 있어. 슬픈 깨달음을 얻고 조용히 미술관을 나가려다가,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미술관 지하에 있는 카페였는데 화장실에 가는길에 발견했다.





카페 사바스키 Cafe Sabarsky



카페의 이름은 카페 사바스키.  옆에 흑백사진이 붙어 있는걸 보니 역사 깊은 곳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단순히, 동유럽 계통의 조상님 중 한 명이 이곳의 창업자였구나 라고만 생각했던게 화근이었다.



모체인 미술관만큼이나 상당히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카페였다. 전형적인 웨이터 복장을 한 웨이터와 웨이트리스가 서빙을 하는 모습에서, ‘팁을 많이 받겠군’ 짐작했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단지 마실 것이 필요했다.

무엇을 드시겠냐는 웨이터의 물음에 내가 당장 마시고 싶은 “콜라”를 외쳤다. 웨이터는 살짝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가더니 그게 다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뭐야, 음료만 시키는 사람 처음봐? 여긴 카페인데 꼭 식사를 시켜야 돼? ‘콜라 한 잔만 시키는게 신기한걸까, 우스운걸까.’ 라고 생각하며 기분이 좀 나빴는데, 팁의 단가가 내려가 ‘아, 오늘 운 되게 없네. 저런 손님이 걸렸나.’ 라고 했음이 틀림없었다.



분위기는 좋았다. 미술관의 카페답게 벽 한쪽에 그림이 걸려 있고(모조 그림일지라도 좋다), 창 밖으로는 해가 져서 주황빛으로 바뀌어 가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하늘이 보였다.

내 앞 테이블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튜를 먹고 있었다. 굉장히 헤비해 보였다. 웨이터는 웃음을 머금고 열심히 서빙했다.

나는 내 할일을 마치고 (콜라 한 병을 비우고), 팁을 포함한 계산을 하고 카페를 떠났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론리 플래닛 뉴욕>을 읽는데, 카페 사바스키가 소개되어 있는게 아닌가.


카페 사바스키, <론리 플래닛 뉴욕>

알고보니 그곳은 꽤 유명한 맛집이었다. 내가 식사 시간을 피해갔으니 망정이지, 원래대로라면 줄을 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오스트리아 카페였다. 어쩐지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평범하지 않았다. 사바스키라니.  

앞의 테이블이 먹은 스튜는 굴라시 수프였나보다. 게다가 자허토르테라니. 아티제에서 파는 자허토르테도 상당히 맛있는데, 고향의 맛을 담은 자허토르테는 얼마나 맛있었을까. ‘살구잼을 두른 다크 초콜릿 케이크’ 라는 문구에서 심장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저걸 안 먹고, 고작 코카콜라를 마시다니!

물론 코카콜라도 매우 맛있고 훌륭한 음료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이제서야 깨달았다. 저런 특이하고 이국적인 음식을 파는 맛집에서, 편의점에서 사서 마실 수 있는 콜라를 시켰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특이한 손님 같았을까.

그 때 얘기 좀 해주지 그랬어요. 자허 토르테 한 번 먹어보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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