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와현 우동 맛기행
가가와현은 우동현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만큼 우동집이 많다. 이 지방은 예전에 사누키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우동은 사누키 우동이라고 불린다.
우동집이 맥도날드보다 많은 곳이니, 이곳에서 최대한 우동으로 많은 끼니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5박 6일 일정 중 우동을 4번 먹었다. 가가와현에 머무르는 동안, 내가 만났던 우동 네 그릇을 소개하려고 한다. 가가와의 우동은 정말 눈물날 만큼 맛있으므로, '우동만을 위해' 비행기를 타도 충분하다. 그러나 치명적인 부작용이 하나 있으니, 가가와의 우동을 한 번 먹게 되면 다른 곳의 우동은 비교가 되어 먹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1 사누키 우동과의 첫만남, 계란 우동
다카마츠 공항에서 리무진을 타고 시내에 도착하니 저녁 8시 40분이었다. 시내 중심에는 상당히 긴 아케이드가 있는데, 대부분의 상점이 일찍 문을 닫는다. 다행히 사누키 우동집 하나가 아직 영업중이라 늦은 저녁식사를 하러 들어갔다.
시간이 늦어 손님은 나뿐이었다. 주방은 밖에서 내부를 볼 수 있는 오픈 키친 형태였다.
사누키 우동이 유명한 이유는 국물이 아니라 면발에 있다. 면발의 질감이 매우 부드러워, 심지어 씹지 않고 삼켜도 훌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정도이다.
면의 맛으로 먹는 우동이기 때문에 국물의 간이나 양념, 양 모두가 최소화 되어 있다.
계란 우동을 시켰는데 우동면에 깨와 파, 계란 반숙을 올리고 간장으로 우동 국물을 대신했다. 일반 우동에 비해 양은 좀 적을 수 있다.
난 원래 무엇을 먹든 맵고 짠걸 좋아하는 편이라, 라면이고 우동이고 모두 국물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물 없이도 200% 만족할 수 있는 우동이었다.
#2 면발의 끝판왕, 메리켄야 자루우동
여행 3일차였다. 전날 나오시마에서 하루를 묵었고, 다음날 페리를 타고 다카마츠에 도착하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베네세하우스는 조식 불포함이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상태라 배가 고팠다. 다카마츠역 근처 메리켄야라는 우동집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사누키 우동의 진가인 면발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먹은 우동은 자루우동으로, 국물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마치 판모밀을 먹듯이 판에 잘 삶아진 우동면이 나오고, 거의 간장에 가까운 국물 소스가 나온다. 판모밀을 먹듯이 저 면발을 국물에 담가 먹으면 된다.
이런 류의 우동집은 튀김을 뷔페처럼 고른 후 합산하여 비용을 부과한다. 나는 가지튀김과 유부초밥 한 개를 골랐다. 가지튀김이 별미라 추천 받아 골랐는데, 그야말로 눈물의 맛이었다. 그리고 우동의 맛이란, 지금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신세계였다.
솔직히 첫날 밤에 도착해 사누키 멘교에서 먹었던 계란 우동은 조금 평범한 맛에 가까웠지만, 메리켄야의 우동은 단연 최고였다.
혹시 다카마츠를 방문하게 된다면, 메리켄야의 우동과 가지튀김을 꼭 먹어보기를.
#3 흔들리는 벼를 바라보며, 가모 우동
이날은 아침도 우동, 점심도 우동이었다. 그런데도 질리지 않는게 신기했다.
메리켄야에서 아침을 먹은 뒤, 다카마츠 도큐인에 체크인하고 짐을 맡긴 뒤 다카마츠역으로 달려갔다. 목적지는 다카마츠를 벗어난 사카이데 시에 위치한 가모 우동이었다.
<하루키의 여행법>에 등장한 우동집인데 논 한가운데에서 벼이삭을 보며 먹을 수 있다고 묘사 되어있다. 그만큼 시골에 있는 곳이다. 가가와현에 있는 대다수의 우동 맛집은 이렇게 찾아가기 어려운 시골에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JR 시코쿠선을 타고 가모가와 역에 도착했다. 전형적인 시골 역 풍경이다.
가모가와역, 사누키 후츄역과 야소바역 사이로 은근히 배고파지는 역 이름이었다.
가모가와역까지 오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갈아타는 것도 없고 그냥 쭉 기차만 타고 있으면 되니까. 그런데 가모 우동을 찾는 게 문제다. 가모 우동은 논밭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역세권도 아니다.
어떤 블로그에 가모 우동을 찾아가는 방법을 설명해 놓은 포스트가 있어서 기본적으로 그에 의지해서 가긴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주위 환경이 바껴 쉽지 않았다. 예를 들면 블로그에서는 맥도날드에서 좌회전이라고 했는데 맥도날드가 망해서 없어졌다거나, 세븐일레븐에서 길을 건너라고 했는데 아무 것도 없다거나.
다행히 한 약국이 있어서 약국에 들어가 가모 우동이 어딘지 물어봤다. 결국 물어 물어 가모 우동에 도착했다.
정말 논 한가운데에 있는 시골 우동집으로, 제면소도 겸하는 곳이다. 멀리서 차를 운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대형 주차장이 완비되어 있다. 현대식 주차장은 주변의 논과 상당히 이질감을 자아낸다.
슬슬 태풍이 오기 시작할 시점이라, 우산을 쓰고 찾아간 가모 우동. 다들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우산을 쓰고 우동을 먹으려고 줄을 서 있었다.
시골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식당 건물은 상당히 협소했다. 야외에도 우동을 먹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밖에 있는 돌 위에 앉아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감동의 물결! 드디어 식당 안으로 진입했다. 나는 일반적인 국물이 있는 우동에, 튀김 몇개를 넣어 먹었다. 어묵 튀김이 맛있었다. 큰 테이블에 여럿이 합석하여 한마음으로 우동을 먹는다. 국물 없는 우동을 먹는 사람들을 위해 간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동은 면발이 살아 있다. 사누키 우동은 국물이 아닌, 면맛으로 먹는다는데 여긴 국물도 맛있었다. 어묵 튀김도 최고! 먼 곳에서 찾아와 오랜 시간 기다려 먹을 만하다. 정말 이곳 우동은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간다. 하루키가 칭찬할만한 곳. 게다가 가격은 또 얼마나 착한지. 이렇게 먹어도 4,000원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4 색다른 우동을 원하면, 명란마요우동
여행 5일째, 전날 밤에 비행기를 타고 다카마츠로 날아온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 먹는 다카마츠의 아침 식사는, 역시 우동이었다.
이 날도 역시 가지튀김과 함께였고, 그 외에 고로케랑 어묵 튀김을 골랐다.
상당히 이색적인 우동을 주문했는데, 이 집의 명물인 명란 마요 우동이었다. 강남역 아소산에서 판매하는 샐러드 우동 같은 느낌도 든다. 명란젓과 마요네즈와 우동이라니! 경악스러운 조합이긴 하지만 은근히 맛있었다. 곤피라야를 유명하게 만든 장본 메뉴랄까.
추측하기에 '곤피라야'라는 상호는 다카마츠 남부 고토히라 신사의 별칭인 곤피라상에서 유래한 것 같다. 고토히라구는 바다신을 숭상하는 신사이다.
벌써 가가와를 다녀온지도 5년이 지났지만, 가끔씩 그곳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까닭은 사누키 우동 때문이다. 가끔 다시 가고 싶어지는 이유도 우동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