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뜻밖의 장기투숙객

by 이도시


버지니아울프 시리즈를 작성한 이후

눈 깜짝할 새에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얼마 전에는 이 작은 방에

또 나의 2년을 더 걸어보기로 했다.


도합 6년.

조금만 더 있으면 그렇게 정들었던 신촌만큼이나

이 동네에 오래 살게 되는 것이다.



참 예전에 독립 전에 써놨던 글을 보니

거창하게도 써놨다.


나만의 공간에서

더 창조적인 삶을 살고 싶다나 뭐래나 ㅎ


코로나로 인해 증폭된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정함이 극대화되어

어찌어찌하게 된 독립..


과연 목표하던바를 이루었을까


연장 기념으로 되돌아본다




공간의 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언니라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과 같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시선이 함께 머무는 공간은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1. 식습관


예전에는 요리 공간이 협소했을뿐더러,

요리라는 게 요리 크리에이터가 아닌 이상

이런저런 집기며

재료, 조미료 등등이 필요해서

공간을 깔끔하게 유지하고 싶다면

사실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또 음식의 종류에 따라 요리를 하고 나면

냄새가 옷이나 침구에 배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음식물 쓰레기는 말 그대로

쾌적한 환경을 망치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언니랑 같이 살던 8년간은

요리를 했던 날들이 손에 꼽는다.

언니도 아주 특별하거나 정말 요리를 하고 싶은 날에만 최소한의 가열로 정성스레 요리를 해주곤 했다.


독립을 하고 나서는

조금 더 넓은 조리공간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내 몸에 어떤 음식이 들어가고 나가는지

좀 더 의식을 하게 되었다.


햄과 계란이 두 줄씩 들어간 김밥이나,

계란물을 듬뿍 묻힌 프렌치토스트가 먹고 싶을 땐

그냥 내가 직접 해 먹으면 된다는 걸 깨달은 이후

식습관 약간의 창조성과 자유도가 생겼다.



지금 돌아보면 독립 전에는

제대로 식단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내가 스스로의 몸에 아주 만족하거나

너무 건강해서가 아니라


다이어트를 하면 ‘풀과 고구마, 닭가슴살 위주의

식단을 해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있었고

그런 음식들을 먹고 있으면

아무도 나에게 그러지 않았지만 왠지

“유난 떤다”는 인상을 심어줄까 봐

혼자서도 눈치를 보며 피하게 됐던 것 같다.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있듯

‘무엇을 먹을지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유 자체가 단연코 가장 중요한 자유였던 것 같다.


나의 업데이트된 건강식 (좌) 후무스 플레이트 (우) 고등어구이와 두릅무침


2. 비워내기


학기가 끝날 때마다 책을 한 번씩

비워내는 것 말고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물건을 좀 덜 소유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안했다.

물론 작은 방에 두 명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

그렇게 많지 않아, 그리고 애초에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아무리

조금 소유하는 사람이라도 물건은 불어나는 법.


그 당시에는 한 번 집을 뒤집어엎는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 정도의 난장판을 만드는 것은

동거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공유지의 비극인지, 내 물건이 조금 많아 보여도

여기저기 숨겨 남의 물건과 섞어놓으면

그 애매함 속에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집에서는 주기적으로 50리터 쓰레기봉투나

굿윌스토어 기부봉투를 꽉꽉 채워서 주기적으로

자연스레 불어난 짐을 정리하는 게 일상이 되었고


그렇게 한 번씩 집을 게워낼 때마다 느끼는

물건으로부터의 해방감과

시원함에 이제 중독이 되었다.

난장판....

3. 소비와 착장

이건 나에게도, 그리고 예상컨대

언니에게도 같이 일어난 변화였다.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다면,


특히 그 누군가가 내가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나는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물건을 사는지도 어쩔 수 없이 달라진다.
좋게 말하면 균형, 나쁘게 말하면 눈치.


특히 나는 소비나 착장에 대해 불필요한

코멘트를 듣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쉽게 말하면 튀는 걸 꺼리는 성격이라서

회사에 새 옷을 입고 가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그게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난하고 안전한 선택만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뭔지도,

어떤 옷에 손이 가는지도 잘 모르게 되었다.

처음 독립했을 땐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누구의 시선도 없으니 더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막상 모든 기준이 사라지고 나니 뭘 골라야 할지,

어떤 게 나다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좋아하는 스타일도, 어울리는 색도

애매하게 들쑥날쑥했고,

한철 입고 나면 손이 안 가는 옷들이 쌓여갔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입고 살고 싶은 걸까—

그걸 알아내기까지는 꽤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계절이 몇 번 돌고 나니

이제는 해지면 다시 채워두는 옷들이 생겼고,

계절이 바뀌면 자동으로 손이 가는 옷들도 정해졌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기본값이 생긴 것이다.

고정템 리필하는 날

그리고 이건 단지 옷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비라는 건 결국 내가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채우고,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니까.


오랜만에 방문한 이제는 언니의 공간이 된

신촌 집에서는 그 변화가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내 책상과 침대가 사라진 자리에 더 그럴듯한 배치로 언니의 책상이 옮겨져 있었고,

그 위에는 처음 보는 조명이 켜져 있었으며,

한쪽 구석에는 책장이 들어섰고

그 안에는 수많은 책, 도록,

그리고 위스키가 정갈하게 꽂혀 있었다.




나 역시 턴테이블과 LP, 요가매트,

그리고 책들로 내 공간을 채워간 것처럼


그 집도, 그 사람도, 그동안 나 없이 잘 진화해 왔다는 사실이 묘하게 뭉클했고, 기분 좋게 낯설었다.


.


4. 번외

덤으로, 동네가 바뀌고 나니까
올림픽공원을 밥 먹듯이 돌아다니게 되었고,

그 덕에 수영도 마스터했다.


물론 영법은 다소 이상하지만,

어쨌든 마스터는 마스터다.



지금 사는 곳은 고속도로 바로 옆이라 어딜 가든 대중교통으로는 시간이 꽤 걸리지만,
차로만 움직이면 가까운 이상한 위치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전 스킬도 늘었다.



어때 제법 창조적인가




집에 대한 생각 (update ver.)


= 부담스러움..


4년 전에는 뭐가 그렇게 급해서

집이라는 걸 그렇게 갖고 싶었고

지금은 뭐가 그렇게 모든 게 다 부담스러운지..


도대체 철 언제 들래


사실 이번에도 연장 전에 이젠 나도 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이리저리 찾아봤으나

이 가격에 (위치는 조금 포기) 이 치안/시설?

= 없음...



제 결론은요




STAY....






계속 이렇게 서울 변두리로 밀려나고

언젠가 서울 밖으로 밀려나면

이 위치도 감지덕지일 것 같긴하고

지금 내 공간이 너무 좋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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