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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연필 Jul 13. 2016

무표정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엄마

그 어떤 감정도 설거지와 함께 씻어버리리

초등학교 6학년 여름, 하교 시간 직전에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OOO 하고 OOO, 그리고 OOO은 쌀 한 포대씩 지원 나온 거 있으니까 부모님한테 말씀드리고 가져가"


우리 반에는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생활보호 대상자가 있었다. 친구들이 '그게 뭐야?'라는 수군거림에 침묵을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짝꿍이 소곤소곤 추궁하는 것에 지쳐서 말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한테 나라에서 도와주는 거라고. 그 말을 들은 짝꿍은 잠깐 생각하더니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우와. 부럽다"


학교에서 집까지 거리는 얼마 멀지 않았다. 그때의 내 보폭으로 10분이면 도착했다. 하지만 내 몸만한 쌀포대를 들고 가는 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중간중간 혹시나 터질까 하며 바닥에 쌀포대를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렇게 낑낑거리며 집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기 직전부터 엄마한테 칭찬을 받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정말 힘들었지만, 더욱 힘든 연기를 하면서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큰 안방이 보이는데, 거기엔 익숙한 얼굴의 옆집 아줌마와 모르는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놀랐다. 안 그래도 땀이 많은 자식이 유독 더 땀을 흘린 것에 놀란 것인지, 발아래 놓인 쌀포대를 보고 놀란 것인지,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나한테 다가왔다. 엄마랑 나는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이거 무슨 쌀이야?"

"학교에서 생활보호대상자한테 주는 거라고 했어. 그래서 가져왔어."


엄마는 나를 안으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칭찬해줬다. 우리 아들 착하다 하면서. 그런데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안고 있었다. 그리고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엄마의 얼굴이 빨개졌었다. 화난 것도 아니고 기쁜 것도 아닌 무표정으로 큰 방 뒤에 있는 베란다에 쌀을 가져다 놓았다. 내가 원했던 칭찬은 웃으면서 해주는 칭찬이었지만, 그 날 내가 받은 칭찬은 시간이 지난 지금. 잊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픈 칭찬이었다.






우리가 엄마를 볼 때, 대부분 가장 많이 보는 모습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다. 우리 집의 경우 현관에서 큰방까지의 통로가 곧 부엌이었고, 내가 본 엄마의 모습은 설거지를 하는 옆모습이 가장 많았다. 그러다 보니 옆모습으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매번 똑같은 표정이었다. 무표정.


설거지뿐만이 아니라 모든 집안일을 할 때 엄마는 무표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 싶다. 어떤 일을 하는데 특별한 표정을 짓는 것이 더 이상하니까. 하지만, 엄마는 조금 다르다. 적어도 내 엄마는 달랐다. 매번 어떤 힘든 일이나 견디기 힘든 일이 있을 땐, 설거지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쌀 포대를 가져간 날도 똑같았다. 아줌마들이 한 마디씩 칭찬을 하시고 나가셨고,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는 옆모습을 지켜봤었다. 그리고 어렸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양파를 까는 것이 아님에도, 몇 번을 손등으로 눈을 닦았다. 그리고 나한테 씻었냐고 물어보는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우리는 하루를 보내면서 수많은 감정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수 없이 반복되는 감정들은 대부분 내성이 생겨서 매번 반응하지 않고 넘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슬픔이나 아픔과 같은 '고통'에 관련된 감정들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그 시점은 '고통'이란 감정들이 주가 되는 것 같다.


각자 견디기 힘든 감정을 다스리면서 살아간다. 그 방법은 다양하다. 나의 경우는 잠을 자거나 청소를 한다. 사람 없는 곳에서 미친놈처럼 욕설을 하는 친구도 있고, 그 감정에 집중하고 순응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친구도 있다. 이렇게 많은 방법들로 각자의 감정을 다스린다. 그런데 엄마의 그 무표정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은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온몸이 슬픔으로 젖게 된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엄마 집에서 밥을 먹는다. 힘들게 일을 한다고, 성인이 된 지 오래라고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리다가도, 설거지하는 엄마의 모습을 회상하게 되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엄마 집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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