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핑계인 비밀
초등학교 6학년쯤. 토요일 점심. 동생과 나는 엄마가 해주는 특별한 반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따뜻한 밥은 한가득 있었다. 우린 평소보다 얼굴이 밝았다. 그러면서 자꾸 부엌 쪽을 쳐다봤다. 언제쯤 우리한테 저 반찬이 올까. 빨리 왔으면 좋겠다. 동생과 나를 들뜨게 한 반찬은 '스팸'이라 불리는 통조림 햄이었다.
보통은 분홍색 기다란 소시지를 먹곤 했다. 엄마가 기분이 좋을 때 해주는 햄 반찬이었다. 팔뚝 길이만큼 길었던 그 소시지는 가성비가 좋은 반찬이었다. 계란을 풀어서 옷을 입히고 프라이팬에 노릿하게 익힌 그 분홍 소시지. 언제나 최고의 밥도둑. 그런데 스팸은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는 반찬이었다. 밥을 더 많이 먹게 되는 아주 특별한 밥도둑.
그 특별한 반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침이 잔뜩 고인 채로 부엌을 보고 있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한 번 났고, 엄마는 프라이팬에 구운 스팸을 접시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기다리고 있던 우리의 밥상에 그 접시를 내려놓았다.
동생과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눈을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다시 그 접시를 봤다. 우린 이번엔 미소를 띤 채 다시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우린 수군거렸다.
"엄마가 웬일이지?"
"그러니까"
평소에는 3mm 정도로 얇게 썰어서 나왔던 스팸이 1cm에 가까운 두께로 썰려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놀랐다. 그런데 좋았다. 이렇게 두꺼운 스팸을 먹어 볼 수 있다는 기쁨과 함께 수군거리어 버렸다. 그 수군거림을 듣고 엄마는 물었다.
"왜? 햄에 뭐 들어갔어?"
"아니요."
"근데 뭘 그렇게 수근거려"
"엄청 두꺼워서요"
엄마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에 그렇게 얇았냐며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을 하시고는 웃음을 멈추셨다. 그리고 부엌에서 일하는 소리도 멈췄다. 우린 먹기에 바빴다. 엄마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우리 새끼들한테 엄마가 미안하네."
항상 하던 말이지만 우린 그냥 먹는 것에 집중했다. 내 동생은 부엌을 등지고 있었고 나는 고개만 들면 부엌을 볼 수 있었다. 부엌의 소리가 멈춘 것이 이상해서 햄을 문 채로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오른쪽 소매로 눈을 닦고 있었다. 양파를 깔 때나 나오던 뒷모습. 눈물을 훔치는 그 뒷모습. 그 뒷모습으로 엄마는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벽을 보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다시 한번 오른쪽 소매로 눈을 닦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바로 작은방으로 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는데, 내가 자주 봐왔던 자세로 누워 있었다. 벽 쪽으로 돌아서 누워 있었다. 아빠랑 싸운 뒤 마음을 추스를 때, 조용히 소리 없이 울 때, 그럴 때마다 항상 엄마는 벽을 보고 누워있었다.
"엄마 밥 안 먹어?"
"엄만 먹었어. 가서 먹어"
엄만 분명히 밥을 먹지 않았다. 조용히 문을 닫고 큰방으로 갔다. 다시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아침일까 어제일까. 아빠가 또 무슨 말을 한 걸까. 분명 방금까지 기분이 좋으셨는데 이상하다. 이렇게 생각에 빠진 상태로 밥을 먹었다. 평소라면 빨리 먹고 내 동생의 남은 스팸을 뺏어 먹었을 텐데 나는 동생보다 늦게 밥을 먹었다. 뭔가 우리가 잘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라면 심부름을 하러 가던 날. 관심 없던 소시지 가격들을 보게 됐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왜 그 많은 소시지 중에서 분홍 소시지만을 주셨는지. 왜 스팸을 그토록 얇게 썰어서 익혀주셨는지. 왜 그날 작은 방에서 눈물을 흘리셨는지.
"고기 엄청 좋아하면서 어떻게 스팸은 이리 전시만 해놨어?"
"살 빼려고"
누군가 물어본 질문에 살을 빼기 위해 먹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대답했다. 집에 먹을 것이 있으면 하루를 가지 않던 내 공간. 그런 공간에 통조림 햄만큼은 유일하게 생존한다.
나는
혼자 있을 땐 통조림 햄을 굽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