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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Sep 15. 2020

어떤 상사

면도날과 곰 아저씨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각양각색의 상사들을 만났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한참을 생각해야 겨우 떠오르는 사람도 많다. 존경하는 사람도 있었고 잠시나마 경멸의 감정을 느꼈던 사람도 만났다. 나를 한 단계 성숙시킨 사람도 있었지만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은 사람도 있다. 그 모두가 현재의 나를 형성하는 토대이며 지난 내 삶을 보여주는 단층들이다.  


 A 부장은 부임 첫날부터 야근을 했다. 업무파악을 하느라 서류에 머리를 묻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선약이 있던 나는 급히 취소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이 늦게까지 해야 할 일이 없었는데도 눈치를 보느라 자리를 지켰다. A 부장은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연신 메모를 해대었다. 그날 이후로 별도의 지시가 없어도 우린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그는 소문대로 무지하게 깐깐한 사람이었다. 직원들 사이에선 면도날이라 불리던 차도남이었다. 내가 뭘 해도 한두 가지 흠을 꼭 찾아냈다. 심정적으로는 그게 아닌데 하면서도 그의 지적에 늘 속수무책이었다. 빈틈없는 그가 얄밉기도 했다. 그래서 때론 그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일부러 몇 군데 틀린 문장을 슬쩍 끼워 넣는 꼼수를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의 지적들은 고스란히 나의 실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의 밑에서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나를 혹독하게 단련시킨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닮은 차가운 상사로 성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B부장이 부임하던 날 상견례를 하느라 부서 회식을 했다. 제시간에 퇴근을 해본 지가 까마득하여 사무실을 우르르 나설 때는 어색하기도 했다. 몇 순배 술잔이 돈 뒤에 얼근해진 그는 앞으로 사석에선 형님이라 부르라 했다. 그러자 새까만 막내 여사원이 술기운을 구실 삼아 농담을 했다. ‘그럼 전 오라버니라 부를게요.’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곰 아저씨 같은 그는 실적에 연연하지 않았다. 추진력이 없어 보이기도 하였다. 업무지시를 하고 나면 직원들이 보고할 때까지 믿고 기다려 주었다. 차라리 방치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은 표현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의 판단은 늘 정확했다. 난 그의 믿음에 부응하려 애썼다. 모든 일은 내가 책임질 각오로 일했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또 다른 의미에서 나를 단련시킨 과정이었다. 따뜻하게 토닥거려 주던 그가 있었기에 뭐든 해낼 수 있었다. 나도 부장이 되면 곰 아저씨처럼 품이 넉넉한 상사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막 부장이 되고 나서 모든 일에 자신감이 넘쳤다. 매사에 내가 고민해서 구상해둔 바대로 부하직원들을 유도했다. 이의를 제기하면 기분이 무척 상했다. 내 생각이 먼저였고 직원들의 의견은 그저 참고 사항일 뿐이었다. 모든 일을 꼼꼼히 챙기려 애쓰다 보니 야근을 밥 먹듯 하였다. 그렇게 하는 게 후배 직원들에게 귀감이 되고 그들의 성장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믿었다. 까칠한 직원과는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나를 이해하는 날이 오리라  장담했었다. 나는 어설프게 A 부장 같은 냉혈 상사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 해 실적 평가에서 우리 부서의 성적은 하위권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뒤를 돌아보는 법인가? 거듭된 승진 실패로 실의에 빠진 나날을 보낸 적이 있었다. 먼저 승진한 동료들은 능력도 출중했지만, 뒷배가 든든하거나 사내정치에 능한 사람들로 보였다. 등골이 휘도록 일해 봐야 소용없다는 배신감이 들었다. 조직에 대한 염증이 밀려왔다. 일로 승부하려 했던 나는 여기까지다 싶었다.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직원들에게 괜한 고생을 시켰다 싶었다. 면도날 같았던 나의 언행들이 그들의 가슴을 깊이 베었으리라 자책했었다. 앞으론 그렇게 살지 않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몇 해가 흐른 뒤에 비로소 마음을 평화를 찾았다. 우리 부서는 종종 오후에 간식 시간을 갖곤 했다. 직원의 반을 넘는 여성들의 주도로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공교롭게 남성들도 대부분 초식남이었다. 누구와 누구는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라, 연예인 누구와 이혼한 여자는 거액의 위자료를 받았는데 나도 그러고 싶더라, 누구의 루이뷔통 백은 알고 보니 가짜라더라. 이런 시시한 험담이 대부분이었지만 고단한 하루를 잠시 잊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얘들아 이제 그만 일하자. 이러다 야근하겠다.”


 맏언니 격인 C차장이 일어났다. 여직원 대부분이 맞벌이 주부였던 터라 야근은 금기시하던 단어였다. 대신 근무시간 중에 집중해서 일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물론 나는 가장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해 우리 부서 실적평가는 꽤 괜찮았다. 며칠 후 자축 회식을 했다. 막내 직원이 농담처럼 실토했다. 직원들이 나도 몰래 야근을 밥 먹듯 했다고... 술기운 때문이었던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면도날 같던 내 성질은 무뎌졌지만, 그게 지나쳐 미련스러운 곰탱이 아저씨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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