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를 시작했다.
대금을 배운지도 벌써 4년이 다돼가 이젠 제법 소리가 나는 듯해서 자신감이 생겼다.
대금 연습 시간을 조금 줄여도 괜찮을 듯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인지 먼지 속에 나뒹굴고 있던 대나무 단소가 눈에 띄었다.
대금을 구입할 때 사례품으로 딸려온 놈이었다.
언젠가는 시작해야지 했던 이 단소를 선생님께 들고 가 가르쳐 주십사 했다.
단소는 고작 어른 손가락 굵기에 길이가 어른 손 두 뼘이 채 되질 않는데 다루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겠지만 소리가 좀처럼 나지 않아 짜증이 났다.
우선 취구에 입술을 어떻게 맞추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미소 짓듯 입술 모양을 만들어보라는데 도대체 그게 어떤 형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입술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호~하고 김을 불어 보라고 했지만 이해는 되는데 실행이 되질 않았다.
헛바람만 휘휘 내뱉을 뿐 소리다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운지가 도무지 되질 않았다.
손끝으로 막는 지공이라야 앞에 네 개, 뒤에 하나만 뚫렸는데 그걸 제대로 막고 여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 없었다.
어쩌다 나는 소리도 단소 특유의 여리고 소박한 음색이 무색했다.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나다가도 어떨 땐 해소끼 많은 노인네 쉰 소리가 날 뿐이었다.
게다가 두 팔이 지지대 없이 허공에 뜬 채 손가락 끝에만 신경을 쓰니 흔들흔들했다.
손가락을 움직일라치면 떨어뜨릴 듯 불안했다.
소리를 내려고 하면 제 위치를 찾았다 싶었던 입술이 다시 어긋나 소리가 날듯 말 듯했다.
손가락과 입술이 교대로 제 위치를 이탈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이주일 정도 틈날 때마다 이렇게 씨름했더니 겨우 소리라 할만한 음이 나는 듯했다.
간단한 악보를 펼쳤다.
이번엔 순발력 있게 음계를 제대로 짚을 수가 없었다.
중-임-무-황-태
음계(율명)만 연습할 땐 제대로 소리가 났는데 노랫가락에 맞추어 음을 하나하나 내자니 몹시 헷갈렸다.
대금과는 너무나 달랐다.
손을 옆으로 뻗는 대금 자세와 달리 앞으로 잡아 연주하는 단소가 편하기는 했다.
소리 내는 법도 비슷할 거라 여겨서 금방 숙달할 거라 자신했었다.
초등학생이 있던 집엔 대부분 연습용 플라스틱 단소가 하나씩 굴러다니는 대중적(?) 악기여서 손쉽게 배울 수 있리라 착각했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운지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렵다기보다 헷갈리는 점이다.
아예 단소만 처음 접하면 그러려니 배운 대로 숙달시키면 될 터였다.
하지만 전혀 다른 위치의 단소 운지가 대금과 자꾸 혼동이 되었다.
원하는 음이 나지 않을 때마다 원인을 몰라 한참이나 갸우뚱거렸다.
단소에다가 대금 운지를 했으니...
몸의 기억이란 이렇게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
관성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더구나 이제 낯섦을 받아들이기가 갈수록 더뎌지는 중년의 나이다.
숙달이 되려면 얼마나 더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까?
단소를 연주할 때는 대금 연주의 사고방식과 버릇을 벗어나야 한다.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되었을 때 이까짓 것 배워서 뭘 해 하며 그만둘까도 싶었다.
낯선 것을 배울 때마다 제일 먼저 찾아오는 회의이자 포기하게 만드는 유혹이다.
이걸 이겨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좀 흘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단계 올라가 있는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랄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할 때마다 나의 변화는 경사진 능선을 따라 걸어가는 모습이 아니었다.
나의 변화는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많았다.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참을 그대로인 듯하다가 어느 순간 한 단계 성큼 올라있었음을 깨달았다.
평평한 평지를 걷는 동안은 시간이 걸렸다.
개인의 재능과 노력과 환경에 따라 그 시간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 계단 위에 우뚝 있음을 느낀다.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것에만 의지해서 편하게 살고 싶어 진다.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거부반응이 생긴다.
그냥 하던 대로 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를 꺼려하고 보수화된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내 게시판에 특별 명예퇴직을 시행한다고 떴다.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사람이 해당된다.
일반 퇴직보다 조금 더 많은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재취업에 자신 있다면 명예퇴직금만큼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언젠가는 떠날 직장이기에 조건이 더 유리할 때 떠나는 게 나을지 모른다.
언젠가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나가 시행착오를 빨리 겪어야 좋다고도 한다.
매도 먼저 맞으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몇십 년 다니던 엄마 품속 같은 직장을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니 망설여진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보다는 1년이라도 현재 직장에서 버티는 게 속이 편하다.
변화에 적응하는데 지난 날처럼 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명예퇴직이 엄두가 나질 않는다.
몸과 마음이 저물어 가니 다가올 변화와 낯섦이 두렵다.
퇴직을 떠올리면 경제적, 육체적 고달픔보다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 두려움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단소를 배우 듯 새 삶을 시작할 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