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까지 아직 여유가 있지만 원하는 시기에 딱 맞게 재취업할 수 없으니 기회가 왔을 때 미리 퇴직한 사람들이다.
재취업자는 대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보다는 우선 취업부터 하고 그 일을 하다 보면 적응이 되리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인지 재취업자 중에는 새 직장에 적응이 안 되거나 기대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어 그만둔 사람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럴 바엔 대우가 좀 시원찮더라도 임금피크직 자리에서 정년 때까지 버티며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더구나 요즘처럼 재취업 자체가 힘들고 운 좋게 재취업을 하더라도 대우가 예전에 비해 형편없어졌으니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럼에도 막상 퇴직을 코앞에 두니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재취업 걱정이 편두통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상한 점은 걱정은 하면서도 당장 재취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서지 않는다.
그래서인지아직까지 눈이 높고 더 괜찮은 일자리가 있겠거니 욕심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 아니면 최소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일을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직 정년까지 몇 년 남았고 재취업을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당장은 지장이 없어서 그렇지 싶다.
하지만퇴직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지금의 생활수준보다 저하된 상황이 벌어질게 뻔하다.
궁하면별도리가없겠지만 당분간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다.
직장에서 지원하던 건강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도 보장이 안된다.
나는 아직 아이들이 취업하지 못하고 있고, 조만간 결혼 얘기도 나올 것이다.
연로하신 부모님도 보살펴 드려야 하니 모시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은 해 드려야 한다.
수입은 없는데 이렇게 지출만 더 늘어나니 저축은 못하더라도 이런저런 최소 필요경비만큼은 벌어야 할 형편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 보통의 중년들은 다 그렇다.
세상이 바뀌어서 부모세대와는 달리 나이를 먹어 퇴직을 한다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좋아하는 일을 찾기보다는 최소한의 생활비만 벌 수 있다면 가리지 말고 어느 직장에나 몸을 맡기는 게 맞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생활비를 벌자고 적지 않은 나이에 스트레스를 다시 받아가며 일한다는 것 또한 두렵다.
젊을 때야 육신이 팔팔하니 스트레스를 받아도 버텨 줄 수 있지만, 점점 쇠락해가는 몸으로는 그 스트레스를 해소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나를 받아줄 직장이 얼마나 될까 하는 문제는 다른 차원의 화두다.
이미 한 직장을 정년까지 다닌 사람을 받아 주는 곳이라면 실무 역량보다는 활용가치가 있는 경력과 인맥을 활용하자는 취지가 더 크다.
나는 경력은 어느 정도 쌓였지만 오래 몸담은 직장이라도인적 자산이 풍부하지 못하다.
제법 큰 회사를 다닌 덕에 안팎으로안면이 있는 사람은 많을진 몰라도 내가 필요할 때 흔쾌히 도움을 줄 인맥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나마 있던 인맥도 사회성 부족으로 연락이 두절되거나 내가 의도적으로 피하는 바람에 지금은 서먹서먹해진 상태다.
현업에 있을 때 사내정치가 출중하여 인적 자산을 자랑하던 사람도 막상 퇴직을 하면 사소한 부탁이라도 외면당하기 십상인데 나 같은 '황야의 외로운 이리'는 오죽하겠는가?
현실적으로도 나이 든 사람이 재취업을 하면 영업력을 발휘해야 한다.
실무는 젊은 사람들이 훨씬 더 잘할 수 있으니 일감을 따오거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맥을 동원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나처럼 현직에서도 사내 정치가 서툴고 인적 네트워크가 부실한 사람은 그래서 재취업 시장에서 많이 불리하다.
그런 걸 미리 알고 일찌감치 영업력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준비랍시고 한 게 자격증 취득이다.
내 전문이 아닌데도 다양한 분야의 자격증은 여러 개 취득해 두었다
하지만, 그 분야 사람들도 치열하게 밥그릇 싸움을 하는 판에 자격증 하나 있다고 흔쾌히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자격증이 있다고 실무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젊은 전문가도 많은데 굳이 나이 든 사람을 채용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딱 부러진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세월은 연령대 숫자만큼의 속도로 흐른다고 한다.
요즘은 눈 한번 감았다 뜨면 주말이고, 잠시 쉬었다 싶은데 가을이다.
내 나이 50대 후반이니 아직 시속 50Km이지만 곧 60Km로 바뀔 것이다.
하릴없이 나이만 먹고 있다는 생각에 쓸쓸해진다.
젊은 날 좀 더 치열하게 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딱히 허술하게 산 것 같지도 않은데 지난날만 떠올리면 이래저래 허무하고 우울하다.
다가올 앞날을 생각하면 손에 잡히는 방도는 떠오르지 않고 잡생각만 만연하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넘어갈 무렵이니 불안감이 더욱 크게 엄습해 온다.
그래서 혹자는 과거도 미래도 생각지 말고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라고 했나보다.
* 몇십 년간 직장 생활하면서 이만큼이나 살아왔으니 취업전선에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 앞에 대놓고 말할 처지는 아니다. 더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욕심을 부린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중년에게는 젊은이와 다른 차원의 번민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인생길 고비고비마다 다른 색깔과 모양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며 그 짐은 각각의 시기에 가장 무겁게 여겨진다.